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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실 자료사진.
교실 자료사진. ⓒ 연합뉴스=OGQ

"엄마한테 승낙을 얻어야 해요."

아이들에게 야간자율학습(야자) 신청 의사를 물으면, 자기 생각을 말하기에 앞서 부모님부터 찾는 경우가 태반이다. "엄마가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안 한다"는 이야기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건네는 아이도 있다. 야자를 할지 말지를 부모님께 정해달라고 등 떠미는 셈이다.

부모님이 대신 공부해 주지 않는다고 핀잔을 줘도 막무가내다. 비단 야자뿐 아니다. 어떤 방과 후 수업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부모님께 묻는가 하면, 몸이 아파 조퇴해도 되는지 승낙을 얻기 위해 부모를 찾는다. 그럴 때면, 이곳이 유치원인지 고등학교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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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업 시간에 때 아닌 '마마보이 탈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반마다 진도와 상관없이 오프닝 삼아 "부모님의 말씀을 맹목적으로 따르지는 말라"는 조언으로 수업을 시작한다. 오해할까 싶어 부모님의 말씀을 무조건 거역하라는 게 아니라는 식의 장광설도 늘어놓는다.

"이게 다 너 잘 돼라고 하는 일"이라는 말에 휘둘려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할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취지다. 부모님이 살아온 시대와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는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다. 구세대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 미래 사회의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일 수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하면, 아이들은 대체로 수긍한다. 그런다고 바로 실천으로 옮겨지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를테면, 보릿고개를 겪던 시절이면 모를까, "한창 클 나이니 많이 먹으라"는 부모님의 입버릇 같은 덕담도 요즘의 세태에 맞게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식이다.

먹을 게 지천인 지금 그 말은 뭐든 많이 먹으라는 게 아니라,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먹으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게 맞다. 육식과 패스트푸드에 길들어진 요즘 아이들의 식습관은 사회적 이슈가 될 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최근 10대 비만율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이 쏟아지는 마당이다.

섣부르지만, 수업 시간에 단 10분도 집중하지 못하고 책상에 쓰러지는 아이들이 나날이 느는 현실도 10대 비만율의 폭증과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다. 약간의 허기도 못 견뎌 하며 수업 중에도 주전부리를 우걱대는 아이도 드물지 않다. 포만감은 공부와는 상극이다.

기실 이 캠페인은 삶의 지혜인 양 건네는 부모님의 말씀이 늘 옳지만은 않다는 점을 일깨워주려는 취지다. 때로는 부모님의 말씀조차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도발적인 화두까지 던졌다. 부모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따를 게 아니라, 행동하기 전에 곰곰이 생각해 보라는 거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소홀히 해서 지방대나 가게 되면 남들이 다 무시한다.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공부 열심히 해서 무조건 서울로 가야 한다. 공부가 쉽진 않겠지만 너만 힘든 것도 아니고, 옛말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다. 고등학교 3년이 평생을 좌우한다."

한 아이가 등하굣길 자동차 안에서 부모님이 매일 건네는 '격려'라며 들려주었다. 주위 친구들도 부모님에게서 같은 이야기를 듣는지, 지방대생을 '낙오자'로 여긴다고 했다. 그의 공책과 필통 등에는 명문대의 엠블럼 스티커가 붙어 있다. 그의 '소박한' 장래 희망은 '인 서울'이다.

캠페인에 맞춤한 사례였다. 아이들은 이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이야기여서다. 화두 삼아, 지역과 서열화한 학벌에 따른 차별을 공공연히 부추기는 고약한 언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권 의식'과 '열패감'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요즘 아이들은 한술 더 떠 '아니꼬우면 명문대에 진학하라'는 모진 말을 친구들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해댄다. 강퍅한 서열 의식이 보편화하면서, 이른바 '시험 능력주의'가 공정함의 외피를 두르고 세상을 호령하는 참담한 상황이 됐다. 물론, 그들에게만 책임을 묻긴 어렵다.

명문대를 다니든 지방대를 다니든, 그 누구든 남을 무시할 권리는 없다. 공부를 잘한다는 건, 수많은 재능 중의 하나일 뿐, 그것이 사람을 재단하고 평가하는 잣대여서는 안 된다. 명문대생이 지방대생을 대놓고 무시하고 조롱하는 곳이라면, 약육강식의 정글과 다를 바 없다.

"역사를 전공해서 어디에 쓰려고? 대졸자의 태반이 백수인 세상에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의치대를 못 갈 바에야, 졸업 후 취업을 생각한다면 무조건 이공계가 답이야."

이 또한 모든 부모님이 자녀에게 건네는 전가의 보도 같은 조언이다. 최근 수능에서 '사탐런(수능 응시자의 사회탐구영역 쏠림 현상)'이 화제가 되었지만, 응시 과목만 사회탐구 영역일 뿐 희망하는 전공은 죄다 이공계다. 하긴 대학에서 인문학의 위기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AI가 머지않아 인간의 뇌까지 지배하게 될 거라며 호들갑 떠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부모님은 자녀의 적성과 특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자녀가 뭘 잘할 수 있느냐보다 졸업 후 어떤 전공이 더 취업률이 높은가에만 시선이 쏠린다. 나이를 먹어가다 보면 적성도 바뀌게 된다면서.

부모님이 건넨 '삶의 지혜'로 인해 학교에서의 진학 지도는 무용지물이 됐다. 적성이 아닌 성적에 따라 전공이 결정되면서, 전국의 최상위 3천 명은 의치대, 다음은 이공대 순으로 한 줄로 서열화한다. 전공을 재조정할 수 있는 건, 오로지 'SKY'로 시작되는 학벌 서열뿐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공부 잘하는 최상위권 10명은 의치대를 지망했다. 그들의 적성이 모두 동일하지는 않을 텐데도 성적에 따른 전공 선택은 불문율이 됐다. 인문 사회계열은 올해도 '하위권의 집합소'다. 그중에도 사학과에 원서를 낸 아이는 290명 중 1명이다. 눈물겨울 지경이다.

"부모님 '패드립' 아닌가요?"

아이들이 전한 부모님의 발언들을 조목조목 비판했더니, 몇몇 아이들이 반항하듯 목청을 높였다. 사과보다는 반론이 필요했다. 기성세대는 결자해지 차원에서 미래 세대를 위해 왜곡된 사회 현실을 바루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며 토론을 끌고 갔다.

내친김에 더욱 날을 세웠다. 성인의 어록조차 절대불변의 진리는 아니라고 했다. 무조건 믿고 따르기보다 계속 따져보고, 질문하고, 토론하고, 판단하고, 성찰하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도 나이 든 이들의 건강을 뽐내는 표현이 아니라, 계속 공부하고 성찰하지 않으면 성숙한 어른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부언했다.

"두려워 말고, 기성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물구나무선 가치관과 맞서 싸워라. 질문을 던지고, 토론하고, 수용하고, 설득하라. 일말의 의문이라도 남아있다면 계속 묻고 따져야 한다. 기성세대는 어디까지나 도우미 역할일 뿐, 미래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온전히 너희들의 몫이다."

매번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낸다'는 말로 캠페인을 매조지게 된다. 자신의 삶을 기성세대의 처세술과 조언에 의탁할 것이 아니라, 각자의 냉철한 머리와 가슴 뛰는 심장을 믿고 당당하게 헤쳐 나가라는 뜻이다. 비록 지금은 '콩나물시루에 물 주는' 격이라고 해도 '가랑비에 옷 젖는' 때가 오리라 확신한다.

#마마보이#학벌구조#지방대차별#사탐런#인문학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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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나의 스승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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