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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드디어 끝났다. 에고, 삭신이야."

지난 21일, 올겨울 밥상을 책임질 김장을 마쳤다. 겨울을 앞두고 치르는 일종의 연말 의식 같은 행사.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해마다 처가 식구들이 모두 모여 한 해의 마지막 큰일을 함께한다. 힘든 노동이지만, 종일 추위 속에서 고군분투한 뒤 먹는 갓 담근 김치와 따끈한 수육은 그 어떤 보양식보다 피로를 확 씻어준다.

결혼 후 줄곧 처가에서 김치를 받아 먹다 보니 김장 참여는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됐다. 하지만 예전의 나는 회사 일, 아이들 문제를 핑계로 늘 아내만 보냈다. 그러다 장인 어른이 돌아가시고, 아내가 "이제 당신도 같이 가야지"라고 조심스레 말하던 지난해, 처음으로 김장 현장에 함께했다. 처음 해보는 김장은 생각보다 훨씬 고되고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20년 넘게 매년 이 일을 묵묵히 해온 장모님과 아내, 처가 식구들을 떠올리니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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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했네. 내년에도 오게."

장모님의 짧은 한마디는 그간의 회피를 돌아보게 한 울림이었다. 그래서 올해는 전역한 아들까지 모두 참석해 집안이 어느 해보다 북적였다. 분주한 손길, 연신 웃음이 새어 나오는 부엌, 오랜 시간 푹 삶은 수육의 향, 굴김치의 톡 쏘는 신선함이 뒤섞인 그 공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축제였다. 집으로 보낼 20kg 김치 박스 세 개를 포장하며 문득 무게를 실감했다. 그건 단순한 60kg이 아니라, 20년 넘게 누적된 장모님의 마음과 손맛, 가족의 시간이 축적된 무게였다.

한국인은 대부분 김치를 먹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치가 계절과 공동체 문화를 배경으로 한 김장과 결합해 2013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등재 명칭 :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으로 등재되기까지 했다. 김장이 단지 겨울 대비 음식 저장이 아닌, 공동체가 함께 모여 나누는 전통문화로 인정받은 것이다.

'힘들다'는 말 절로 나오지만...

김장의 시간 3대가 모여서 김장하는 모습을 AI로 구성해 봤습니다.
김장의 시간3대가 모여서 김장하는 모습을 AI로 구성해 봤습니다. ⓒ AI생성이미지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의 '2025년 소비자 김장 의향 및 주요 채소류 공급 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 4인 가족 평균 김장 배추량은 18.3포기로 조사됐다. 김장을 직접 할 의향이 있는 사람의 비율은 68.7%에 이른다. 나머지 30%도 대부분 구매, 대행, 지인 나눔으로 김치를 마련한다고 한다. 즉, 김치는 형태만 다를 뿐 한국인의 식탁에서 빠지기 어려운 필수 식재료라는 의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자료에 따르면 4인 가족 기준 김장 비용은 약 21만 3천 원(20포기 기준). 적지 않은 비용이지만, 김치는 1년 내내 두고두고 먹으며 온갖 요리에 활용할 수 있으니, 따지고 보면 오히려 경제적인 셈이다. 최근에는 김치를 즐겨 먹지 않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가까운 후배들도 "김장은 부모님 세대의 문화일 뿐, 필요하면 사 먹으면 된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김장이 단순한 음식 준비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 말이 쉽게 와 닿지 않는다. 김장은 뿔뿔이 흩어져 지내던 가족이 한데 모여 손을 맞잡는 공동체의 경험이다. 머리로는 귀찮고 고되지만, 막상 그 자리에 서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시간이다.

"여보, 언젠가 장모님이 김장을 못하시게 되더라도 우린 계속 처가에서 김장해요. 절인배추를 사서라도 형제들 다 모여서 같이 김장하고, 수육 삶아 먹고, 그게 가족 행사잖아요."

매년 돌아오는 김장철이면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우리는 결국 또다시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 고된 몸짓 하나하나에 우리 가족의 안부가 스며들고, 오가는 대화 속에 깊은 정이 깃들기 때문이다. 아마 내년에도, 그리고 먼 훗날에도 이 '힘든 일'을 멈추지 않을 듯하다. 이것은 일 년 치 식량을 준비하는 일을 넘어, 흩어진 마음들을 한데 모아 다시 '우리'라는 이름으로 엮어내는 소중한 의식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개인 브런치(일부)에도 실립니다.


#김장#가족#행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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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일상과 행복한 생각을 글에 담고 있어요. 제 글이 누군가에겐 용기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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