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이와 세종이로 불리는 한 쌍의 흑두루미가 올해도 장남평야로 돌아왔다. 대전환경운동연합은 24일 새끼를 데려온 흑두루미를 확인했다.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적인데, 이번에는 새끼 한 마리까지 데려왔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소식은 곧바로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세종시가 이들의 서식지인 장남평야를 공원으로 개발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강의 생태 네트워크를 위한 96번도로 철거가 아니라 존치와 보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를 배경으로 생명을 품어낸 이 공간은 지금 지켜야 할 것과 파괴되어선 안 될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묻고 있다.
흑두루미 부부의 첫 '불시착'은 2015년 11월 24일이었다. 뜻밖의 착지였지만 그날 이후 장남평야에는 10년의 생명사가 쓰였다. 우리는 그들의 겨울을 지켜보며 울었고 웃었고 바랐고 미안해했다. 불시착은 재두루미 다섯 마리가 이들과 함께였지만 재두루미는 떠났고, 흑두루미 부부는 남았다. 우여곡절을 거쳐 월동을 시작한 이들은 장남평야를 겨울 보금자리로 선택했고, 지난 10년 동안 그 선택을 변함없이 지켜왔다.

▲흑두루미 3개체가 비행하는 모습 ⓒ 이경호
2018년과 2021년, 이들은 새끼를 데리고 장남평야에 도착했다. 도시 위를 가로지르며 겨우내 농경지에 내려앉아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장남평야를 지켜야 할 이유가 너무도 명확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장남들보전시민모임은 이들을 위해 먹이를 준비했고, 혹시 더 많은 개체가 찾아오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했다.
이런 노력 속에서 희소한 생명의 기적 같은 장면들도 펼쳐졌다. 2018년 겨울, 이들은 자신의 새끼뿐 아니라 검은목두루미 한 마리까지 돌보며 함께 월동했다. 검은목두루미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으로 더더욱 보기 어려운 종이다. 흑두루미 부부는 이 귀한 존재를 겨우내 살뜰히 돌봐 무사히 북상하도록 도왔다(관련 기사 :
한 가족이 되어 찾아온 기특한 흑두루미).
하지만 그 후로 검은목두루미는 다시 오지 않았다. 새끼도 데려오지 않은 해가 많았다. 햇수는 쌓이고 부부의 깃털은 조금씩 옅어졌다. 그 사이 사람들은 이 두 마리를 '세종이'와 '장남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비록 이름을 가진 생명이라고 해서 특별해지는 건 아니지만, 매년 다시 돌아오는 그들에게 사람들은 자연스레 애정을 쏟았다. 도시 한복판의 작은 농경지가 일으킨 기적 같은 만남이었다.
장남평야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흑두루미만이 아니다. 이들은 큰고니와도 함께 겨울을 보낸다. 온몸이 하얀 큰고니와 검은빛을 띤 흑두루미가 같은 식사 장소, 같은 목욕 장소를 공유한다. 서로 갈등도 없이 조용하고 평화롭다. 자연이 그려낸 한 폭의 겨울 풍경 같은 이 장면은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삶의 조각이다.

▲붉은색 원이 올해 태어난 새끼 흑두루미이다. ⓒ 이경호
그리고 올해, 세종이와 장남이가 드디어 다시 새끼를 다시 데려왔다. 장남평야의 작은 기적이 다시 피어난 것이다. 꾸준한 먹이 공급과 서식지 보전을 위한 시민들의 노력이 비로소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하니 이보다 더 간절한 기쁨이 또 있을까. 도심을 배경으로 위태로운 비행을 이어온 흑두루미에게서 새 생명이 자라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감사해야 한다. 필자는 그 새끼에게 '희망'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 하지만 이 희망을 위협하는 현실도 분명히 존재한다.
세종시는 멸종위기 Ⅱ급 생물의 서식지를 보호해야 할 책무를 외면한 채, 장남평야의 일부를 공원으로 개발하려 하고 있다. 장남평야는 원래 대부분 농경지였다. 하지만 80~90%가 이미 중앙호수공원 택지, 국립수목원 등으로 개발되어 사라졌다. 남겨진 공간은 습지와 농경지로 보전하기로 약속된 곳이다. 그런데 이제 그 작은 땅마저 공원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도심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인공 공원 하나를 더 만들기 위해 수십 년간 유지된 생명의 터전을 없애겠다는 뜻이다. 도시의 균형을 위한 공원이라 하지만, 이 계획 어디에서도 장남평야를 찾아드는 생명들의 자리는 없다.

▲흑두루미 어미(우)와 새끼(좌) 큰고니와 함게 서식하는 모습 ⓒ 이경호
이 결정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종묘 문제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종묘는 지켜야 할 역사이고 세종은 지켜야할 역사와 생태라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져가는 것은 전국 어디에나 존재하며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구조는 같다. 1970년대식 개발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미 존재하는 생명의 공간을 인공의 공간으로 대체하는 방식은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
세종시가 완성이되면 철거하기로 했던 임시 도로인 96번 도로가 여전히 차량 통행을 허용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철거 대신 존치와 확대를 추진하는 세종시를 보면 답답하다. 세종보 재가동 논란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중단됐지만, 생태계 건강과 멸종위기종을 고려하지 않은 의사결정이 얼마나 생명에게 위협이 되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장남평야와 금강은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생태 네트워크다. 강과 습지, 농경지가 이어지며 흑두루미뿐 아니라 다양한 겨울 철새들의 생태적 회랑 역할을 한다. 이곳을 개발로 끊어내는 순간, 단지 한 종의 문제가 아니라 생태계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환경부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멸종위기종 보호를 관장하는 부처임에도 장남평야의 생태적 중요성에 대한 평가나 조치가 전무하다. 중요 서식처 발굴과 보호는 분명 환경부의 책무지만, 장남평야는 아직 어떤 보호지역으로도 지정되어 있지 않다. 매년 귀한 생명이 찾아와 월동하는 이곳을 적절히 조사하고, 보호지역으로 신속히 지정하는 일은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
지금은 대멸종의 시대이자 기후위기의 시대다. 우리의 정치와 행정이 따라가야 할 가치는 개발이 아니라 생명이다. 물질주의적 성과는 잠깐 남지만, 생명의 가치는 세대를 잇는다. 자연을 파괴하는 개발로 자리를 채우는 정치가 아니라, 제도와 관행을 바꾸어 생명 중심의 사회를 만드는 정치가 필요하다. 장남평야는 그 변화가 왜 필요한지 가장 현실적이고 생생한 사례다.
장남평야를 지키는 일은 단지 흑두루미 부부를 위한 일이 아니다. 이는 우리가 어떤 도시,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다. 자연과 생명이 비집고 들어올 틈조차 남기지 않는 개발이 시대정신이었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새로 짓는 구조물이 아니라, 남아 있는 생명의 자리다. 장남평야를 지켜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살아남는다.

▲장남평야와 세종시의 모습 그리고 비행하는 멸종위기야생생물 큰기러기 ⓒ 이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