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의 잔재이자 헌법과 충돌하는 비영리 설립 허가제, 이제는 폐지하고 새로운 제도로 전환해야 할 때 ⓒ 사단법인 시민
영리는 자유, 비영리는 허가: 불균형의 기원
뉴스를 보다 보면 우리나라에 다양한 허가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재판 중계 허가,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토지거래허가제 등. 특별히 고민해보지 않더라도 허가가 어떤 것인지는 이해할 수 있다. 권한이 있는 기관이 허용해야만 특정한 행위를 할 수 있다는 뜻이며,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은 기본적으로는 금지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비영리법인 설립허가 절차에 대한 안내 ⓒ 경기도청
비영리법인은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만 설립할 수 있다. 원래는 설립이 법률로 금지되어 있다는 뜻이다. 왜일까? 1957년 민법안 심의록 상권 28쪽에 등장하는 당시 입법자들의 생각은 이렇다. "공익법인 설립에 있어서는 허가주의와 준칙주의, 자유방임주의 등이 있는바 공익사업을 표방하면서 실은 악질행위를 감행하는 실례가 허다한 한국의 현실로 보아서는 허가주의를 채택한 초안의 태도가 타당하다." 간단히 말하면 나쁜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다.
대한제국의 수립 무렵 태어나 식민지 시대를 살아온 입법자들에게는 국가중심·민간통제의 관점이 익숙했을 것이다. 민간 비영리활동을 잠재적 사기 또는 국가질서 문란행위로 보는 법의 정신은, 비영리법인을 감독할 권한을 누리고 필요에 따라 동원하거나 통제하기를 원하는 행정, 자극적 소재를 찾는 언론, 비영리에 무관심한 국회와 세간의 막연한 인식 속에 유구히 이어져 내려왔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주식회사는 누구라도 언제든 세울 수 있었다. 회사는 허가받을 필요 없이 법이 요구하는 요건과 절차를 갖춰 등기를 하면 설립된다. 서류상 회사를 만드는 게 워낙 쉽다 보니 '유령회사', '페이퍼컴퍼니'라는 말도 일상에서 흔히 사용된다. 투명하게 운영되며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고 일자리를 제공하는 회사들도 있지만, 횡령, 사기, 탈세, 책임회피의 수단으로만 회사가 활용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래도 대개는 그런 일을 한 사람 개인을 탓하지, '주식회사 제도가 문제'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기준 없는 재량이 만든 비영리 설립의 장벽
설립 허가주의는 급속도로 발전한 민간단체의 결사와 활동에 대해, 주무관청 담당 공무원이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제한을 할 수 있는 근거로 작동하고 있다. 주무관청 담당자가 보기에 목적사업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민원이 들어왔거나 들어올 수도 있어서, 우리 부서에서 담당하는 일인지 애매해서, 관리해야 할 법인이 많아지는 게 부담스러워서, 관청 내에 "법인 설립을 최대한 해주지 말라"는 분위기가 있어서, 담당자 개인이 비영리활동에 안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어서, 내가 설립을 허가해준 법인이 나중에 문제를 일으킬까봐서 등 설립을 허가해주지 않을 현실적 이유는 너무나 많다.
하지만 법에는 법인 설립에 관한 구체적인 요건이 전혀 없으므로 주무관청이 재량에 따라 결정한다. 그러므로 기준은 주무관청에 따라, 부서에 따라, 담당자의 경력과 성향에 따라, 동일한 담당자라도 시기별 정책이나 부서 분위기에 따라 달라진다. 게다가 대법원은 그간 판례를 통해 주무관청의 재량을 사실상 무한정 허용해왔기 때문에, 허가를 하지 않는다는 결론은 내려놓고 기본재산 액수, 회원 수, 사무실 위치, 목적사업, 예산 등 여러 요소 중 적당히 문제 삼을 명분을 만드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법무부는 성소수자의 인권증진을 위해 활동하려는 비온뒤무지개재단의 법인 설립허가 신청을 '주무관청이 아니다'는 사유로 거부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해당 거부처분의 취소소송에서 법원은 "원고의 활동이 차별로 침해받는 개인의 권리에 관한 문제로서 인권옹호와 관련돼 있으므로, 원고는 법무부가 주무관청인 인권옹호 단체의 범주에 속한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인용했다. 해당 단체는 법무부 이전에 서울특별시에도 설립허가신청을 하였지만 '미풍양속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거부를 당했다고 밝혔다. 허가 기한도 정해져 있지 않으니 어느 쪽으로든 결정을 내리기 곤란하면 일단 묻어두는 일도 가능하다. 최근에도 국가인권위원회가 변희수재단의 설립을 무작정 미루고 있다.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법인 설립허가 지연에 따라 대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
허가제가 낳은 역설: 비법인단체의 양산
이런 사례들은 모두 허가제가 얼마나 자의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그 결과, 법인 설립이 수개월에서 수년간 지연되거나 아예 설립을 하지 못하게 된다. 불허가처분에 대한 다툼은 사실상 봉쇄된다. 법인을 설립하기로 한 여러 사람들의 뜻, 계획, 재산이 제자리에 묶여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몇 년이 걸릴지 모르고 가능성도 희박한 행정심판과 소송에 시간과 돈을 쏟을 수는 없는 일이다.
설립만이 문제가 아니다. 정관변경과 기본재산 처분까지 모두 주무관청 허가 대상으로, 새로운 사업과 조직개편이 가로막힌다. 이제는 주무관청의 허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 되어서, 비영리법인들이 알아서 허가를 받을 일이 없도록 자가 검열과 통제를 하는 지경이다.
설립 허가주의의 목적이 민간활동의 순치(馴致)였다면 아주 잘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지자체에 정치적으로든 행정적으로든 부담이 되는 법인은 태어나지도 못하고, 번창하기도, 살아남기도 어렵다. 그 대신 한국 사회에는 법인 아닌 단체(법적으로는 비법인재단, 비법인사단이라고 부른다)가 양산되었고, 관련 법리가 발달했다. 법인이 아닌데도 법인처럼 재산도 소유하고 계약도 체결할 수 있게, 법률의 해석을 적극적으로 한다.
헌법과 충돌하는 일제 식민잔재, 비영리 설립 허가제
대한민국 헌법은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명시한다(제21조 제2항). 설립허가주의는 이 헌법 규정에 정면으로 반한다. 허가제가 운영되는 실태 역시 엉망이니, 위헌성이 더욱 명백하다.
헌법상 결사의 자유에 더하여 우리 민법은 '사적자치의 원칙'을 근간에 둔다. 사인 간의 법률관계는 자유로운 의사합치에 의하여 결정하고, 국가가 개입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비영리법인에 대해서는 유독 사적자치를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현재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비영리법인의 설립을 국가가 나서서 통제하고 있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민간의 결사는 자율에 맡겨두는 관점이 영리와 비영리를 구별하지 않고 일관되게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영리 설립 허가주의는 일제의 식민잔재다. 조선인이 자유롭게 결성한 공동체는 법적 단체가 아니고, 일제에 도전하지 않는 한에서만 존속을 보장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어 저항세력을 해체하고, 공동체가 재산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여 착취를 원활히 하려는 수단으로 허가주의가 조선에 도입되었다는 학계의 비판도 있다.
시대가 변해도 국가 통제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비영리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국회는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난 이후 자진해서 더 강력한 규제를 택했다. 공익법인을 넘어 비영리법인까지 허가를 받도록 하는 폭넓은 규제는 당시 만주국 민법에서 가져온 것이다. 일본제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새로운 민법을 마련하면서도, 유독 비영리법인에 대해서만큼은 일본제국이 만주 지역을 점령하여 세운 식민국가의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 뒤로 수십 년이 지났다. PC와 인터넷, 스마트폰과 AI가 인간의 생활부터 인식까지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고, 기업 논리가 배가된 사회적 가치 운동은 활발해졌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민관협력, 사회적경제 정책도 일상어가 되었다. 하지만 비영리를 보는 우리 법제의 근본적 관점은 시대가 얼마나 변했든, 식민지배자든 군사정권이든 문민정부든 달라진 적이 없다. 일제의 침탈은 80년 전 끝났지만, 비영리 영역은 여전히 국가의 통제 아래 식민지배 상태에 머물러 있다.
법인격에서 배제된 비영리, 제도 밖으로 밀려난 이등 시민
최근 비영리법인 허가제도와 관련해 정부 측 주장을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법인 설립 허가를 거부하더라도 단체를 결성하여 활동하는 건 가능하므로, 허가주의가 결사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 애당초 법인 제도를 왜 둔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법인은 법적 지위를 획득한 단체라는 공신력과 거래의 안정성을 부여하는 효과가 있다. 법인의 소재, 기관이나 자산규모 등 내부관계를 알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등기하고, 이를 통해 신뢰를 확보한다. 그런데 비영리 단체로 활동하면 되지 굳이 법인을 설립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것은, 비영리에게는 이런 제도적 혜택을 전면 금지하더라도, 법적인 권리·의무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기본권 침해가 아니라는 말과 논리적으로 같다. 정부는 영리법인에 대해서도 이런 취급을 할 수 있을까.
허가제 폐지와 비영리 설립 제도의 전환
비영리법인의 설립 허가주의는 당장 폐지되어야 한다. 허가제를 인가제로 바꾼다고 해서 주무관청의 임의적 통제가 사라지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허가와 인가의 이론적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기부금품 모집을 위한 등록제도마저도 사실상 허가제처럼 운영되어 왔던 것이 현실이다.
영리법인과의 형평을 고려해서 법률상 요건을 갖춘 후 등기하면 설립하는 것으로 하고, 주무관청을 없애야 한다. 그러면 비영리 활동을 누가 감시하느냐는 우려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회사제도와 같이 내부통제 제도와 공개를 통한 민간 차원의 감시를 바탕으로 하면서, 필요한 경우 소송과 법원의 개입을 통한 규제가 이루어지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지난 3월 국무총리 규제혁신추진단은 '민법상 비영리법인 설립 및 운영 규제혁신'을 개선과제로 선정 ⓒ 국무조정실
여전히 옛 입법자들과 뜻을 같이 해서 "공익사업을 표방하여 악질행위를 감행할 것"이 우려된다면, 국가는 비영리법인이 아닌 '공익법인'을 별도로 선별하고 관리하면 된다. 이미 우리나라에는 미국, 영국, 일본 등 국외의 제도와 유사하게 비영리법인이 공익활동을 하면 '공익법인'으로 지정을 받아 국세청의 관리감독을 받고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존재한다. 통합된 주무관청으로서 공익위원회를 도입하여 전문성과 규제의 일관성을 높이자는 논의도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현재 법무부 민법개정위원회가 활동 중이다. 부디 비영리 종사자들을 오래된 식민지로부터 구해내는 가장 중요하고 담대한 첫 걸음을 곧 뗄 수 있기를 바란다.
황인형
사단법인 시민 정책위원 (
재단법인 동천 상근변호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사단법인 시민(www.simin.or.kr)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