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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06 17:40최종 업데이트 25.12.06 17:40

여성이지만 움츠리지 않은 예술가를 찾아서

힐마 아프 클린트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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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여성이라는 건 당신과 당신이 하는 일이 자동적으로 무시당하고 하찮은 취급을 받고 평가절하를 당한다는 뜻이다. 그렇지는 않더라도 남성이나 남성이 하는 일보다 덜 진지하게 취급받는다."
_밸러리 영, <우리는 왜 성공할수록 불안해할까> 중

<우리는 왜 성공할수록 불안해 할까>란 책을 읽다보니 떠오르는 여성 작가가 있다. 그녀는 힐마 아프 클린트라는 화가다. 지난 10월 25일, 부산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힐마 아프 클린트 : 적절환 소환> 전시회에 다녀왔다. 전시회가 끝나기 하루 전에 그녀를 만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추상화의 선구자였지만, 여성이라는 제약 때문이었는지 자신이 죽고 20년이 지난 시점에 그림을 공개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아마도 스무 해가 지난 후에는 그녀를 이해하고 인정해줄 사람이 많아질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선형 무늬들
나선형 무늬들 ⓒ 윤한나

그녀는 부유한 아버지의 지원으로 스톡홀름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했고, 자연과학과 신지학 같은 분야에서 영적 깊이를 채우며 그림을 그려갔다. 다른 여성들보다는 가정 환경이 좋아서 남성 못지않게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학생이 많이 없던 학교에서 두 살 많은 선배, 안나 카셀과 친근하게 지내며 서로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준다.

큐레이터의 설명에 따르면 그녀는 돈이 많았기 때문에 물감에 달걀 노른자를 섞는 '템페라(Tempera)' 기법을 써서 그녀의 그림은 색채가 선명하고 보존성이 좋다고 한다. 이 기법은 안료에 달걀 노른자와 물을 섞어 만드는 고대 회화 방식인데, 그녀가 자신의 그림에 대한 애정으로 이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영원한 세계를 찾아서
영원한 세계를 찾아서 ⓒ 윤한나

전시회는 연대기별로 그녀의 작품을 배치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기획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남성들과 동일하게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고, 죽을 때까지 그림을 손에 놓지 않은 그녀였지만, 세상에 자신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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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칸딘스키나 몬드리안보다 앞서 색과 형식에서 강렬한 인상을 준 추상화를 그린 선구자였다. 본명 대신 남성 이름으로 활동했던 몇몇 여성 작가처럼 그녀 또한 타고난 예술성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데 움츠린 기색이 보인다. 하지만 기죽지 않고 끝까지 자신만의 예술성과 지향점을 화폭에 담아 우리에게 남긴 힐마 아프 클린트가 존경스럽다.

내가 어릴 때 "고추 달고 나오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성차별적인 말을 친할머니께 듣고 울었다는 이야기를 어머니가 전해주셨다. 아무것도 모를 때였지만, 본능적으로 고유한 나를 누군가 지적하고 못마땅해한 것을 어린 영혼은 느낀 듯 하다. 아무튼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여전히 취업이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여성들이 상당할 거라는 의심은 지울 수 없다.

지인은 서류 전형과 필기, 실기 시험에서 당당하게 합격하고 최종 면접도 무난하게 잘 봤지만, 어느 해 여성은 뽑지 말라는 회사 내부 사정에 의해 아쉽게 떨어진 경험을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가부장적 잔재와 유교에 오래 물든 사회 구조로 인한 움츠러든 여성들은 비단 예술계뿐만 아니라 가정과 직장, 학교 내에서도 남모를 고민과 속앓이를 하기 쉽다.

경제적 이유로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청년들도 있지만, 양성 평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맞벌이에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듯 떠맡아 신음하는 현실 속에 결혼과 출산을 조금씩 미루며 자신을 실현시키기 위해 애쓰는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힐마 아프 클린트도 미혼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 기사를 쓰는 나도 미혼이다. 초고령, 저출산 시대에 뜨끔하지만, 이런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면 제도적인 뒷받침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도 변혁에 가까울 정도로 새로워져야 자연스럽게 가정을 이루고 보람을 느끼며 양육하는 여성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첫눈이 내리고,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든 요즈음, 움츠러든 이웃은 없는지, 온기 담긴 따뜻한 정서가 충만한 계절이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와 블로그에 실릴 수 있습니다.


#여성#예술#자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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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무명 작가. 집에서는 느림보 거북이. 나만의 속도로 꿈을 향해 나아가는 돈키호테. 학원과 주일학교에서 십대들과 함께 하는 사람. 꽃과 책과 글쓰기를 벗 삼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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