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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조리원에 가지 않겠다고 하니 주변의 반응은 2대 8이었다. 당연히 8할은 우려와 만류였다. 나머지 2할은 격려와 지지였는데, 대부분 한 번쯤은 조리원이 아닌 집에서 시간을 보낸 분이었다. 가장 격렬한 반대는 젊은 층에서 나왔다.
"야. 안돼에. 니가 안 해 봐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산후조리원 나와서도 어차피 충분히 힘들어. 막 태어난 아기가 얼마나 작은 줄 알아? 제대로 들기도 힘들어. 그 작은 애를 씻기고, 먹이고 어휴..."
"진짜요? 아니, 엄마도 그렇게 하겠대요? 이미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있을 텐데 쉬지도 못하고 밤낮없이 아이를 어떻게 봐요. 저는 산후조리원 갔다 와서도 힘들었는데."
더구나 첫 아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시작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부부는 첫 출발부터 모험을 택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산후조리원을 가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심각한 난산으로 산모가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거나, 남편이 아이와 산모를 돌볼 수 없는 처지거나 하는 등의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득과 실의 문제였다. 잃는 것이 없다면 어떠한 조건에서도 굳이 그곳을 마다할 이유가 없겠지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와의 애착이었다. 누군가는 육아라는 전쟁 앞에서 얻는 마지막 쉼이라고 말하지만, 생후 1주일도 안 된 아이를 부모 옆에 두지 않는 것은 너무 큰 손실이라고 생각했다.

▲수술 후 회복 중자연분만을 하고자 하였으나 응급제왕을 하게 된 산모 ⓒ 안사을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모자동실'을 선택하면 어떠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비용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를 산모 옆에서 분리하여 산모가 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산후조리원의 의의가 있는 것인데, 같은(혹은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서 굳이 모자동실을 선택한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아이를 돌보는 것 외에 발생하는 집안일과 어느 정도의 아이 돌봄, 아내를 최대한 쉬게 해주는 것 등을 남편이 감당할 수 있는 처지라면 충분히 집에서도 산후조리를 할 수 있다고 여겼다. 아이와 끈끈한 유대관계도 형성하면서 말이다.
한 집에서 좌충우돌... 지치지만 행복하다

▲생후 2일차신생아실 면회시간에 찍은 사진 ⓒ 안사을
2025년 12월 7일. 현재 우리는 생후 6일째를 맞이하는 아이와 함께 아늑한 우리만의 공간에서 좌충우돌하고 있다. 결코 쉬운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병원에서 돌아온 후 이틀 밤이 지났는데, 부부 모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낮이 따로 없는 신생아의 수면주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앉아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그나마 아이가 낮잠을 자는 동안이다. 빠르게 기록이라도 남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앞으로 이 생활을 며칠 더 유지했을 때 과연 타자를 칠 마음이 남아있을 것인가에 대해 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답할 수 있다. 앞으로의 시간이 더 남았지만, 첫날보다는 둘째 날 더 수월한 걸 보면 우리도, 아이도 급격히 달라진 이 삶에 금세 적응하고 있는 것일 테다.

▲생후 5일차곤히 자고 있는 아이 ⓒ 안사을
지치지만 너무도 행복하다. 아직은 이 아이가 나의 아들인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지에 대해 명확한 느낌이 있지 않다. 다만 이른 아침 커튼을 젖힐 때 아이가 보여주는 표정을 어느새 나도 따라 하고 있을 뿐이다.
0세 인생에서 절대적으로 낯설 만한 눈부신 햇살이 눈두덩을 통과할 때, 이 녀석의 모든 안면 근육은 태양의 파장과 입자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받아내려 한다. 그러다 이내 작은 입술을 열어 지구의 온 기운을 빨아들이려는 듯 큰 숨을 들이쉬고, 온 세계에 닿을 듯 사지를 뻗고 경탄의 의미로 부르르 떤다.
이 모든 과정을 코앞에서 목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간밤의 노고는 사라진다. 아이를 함께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준 후 다시 잠들면 방문을 닫고 거실로 나와 아내를 가만히 불러세워 서로를 안아준다. 참 잘한 선택이었다며 서로를 격려한다.

▲생후 6일차재채기 하기 직전의 표정을 잡았다. ⓒ 안사을
아빠가 육아에 전념할 수 있게,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어쨌든 막상 겪어보니 많은 이들이 산후조리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것은 바로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구조 문제이다. '옛날에는 엄마 혼자서도 다 했어'라는 말은 하나도, 둘도 모른 채 내뱉는 말이다.
어머니 시절만 해도 여러 세대와 친척이 같이 살았다. 엄마 혼자서 다 한 것이 아니라 많은 엄마들이 함께 모여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비단 가족 뿐 아니라 '온 마을이 아이 하나를 키운다'라는 모양새가 있었던 시절에는 엄마 혼자가 혼자가 아니었다.
지금은 대부분 핵가족 형태를 띤다. 당연히 남편이 양육자로서 온전히 함께해야만 하는 구조다. 그런데 산업화 시대의 그늘만이 남아, 대가족은 해체되었으나 남편의 역할은 여전히 바깥에 있으니 외부 업체의 손을 빌리지 않고서는 산후조리와 신생아 육아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우리 부부는 아이 한 명당 3년 이내의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공무원법 및 관련 지침에 따라 보수를 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 개정된 사항에 따르면 한 아이를 대상으로 부부가 둘 다 3개월 이상 휴직하면 한 명은 18개월까지 유급 휴가로 인정된다.
이런 것이야말로 '적극 행정'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지침으로 인해 동반 휴직을 결심하는 아빠들이 내 주변에 제법 있다. 유급 책정 비율도 종전에 비해 높아져서 적어도 지방에서는 알뜰하게 살면 아이 1명당 1년 동안은 큰 부담 없이 동반 휴직 상태에서도 살림을 이어갈 수 있다.
이 시기를 경험해보니 알겠다. 정말로 아이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때 평화로운 애착을 형성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얼마나 다른 자아존중감을 가질지 인류학자가 아니어도 확실히 알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회는 이제 더욱 적극적으로 아빠가 육아에 전념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선택이 아닌 필수로 휴가를 명하고, 적어도 1년은 휴직을 강력히 권장하는 법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대신 가계에 손실이 적도록 아니, 오히려 더 이득이 되도록 제도를 촘촘히 하면 어떨까.
초고령화 시대가 되어가는 지금 세계 최저의 출산율이 문제라고 한다. 우리도 아이를 가질 것인가에 대해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결국 낳기로 결정한 데에는 우리의 유급 휴직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다른 말로 하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제일 확실한 방법은 부부의 동반 휴직을 가능케 하는 제도적 뒷받침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