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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08 13:16최종 업데이트 25.12.08 13:16

무료라서 갔는데 마음이 채워졌다

상효원에서 열린 '제1회 제주 보테니컬 포럼&페스타'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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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입장이라서 가게 된 행사였다. 아이 둘을 데리고 갈 만한 곳이라면 어디든 감사한 요즘, 그저 잠깐 바람이나 쐬자는 마음으로 상효원을 찾았다. 그런데 마시멜로를 굽는 아이의 손끝과 겨울 숲 속에서 뜻밖에 만난 동백꽃이 조용히 마음을 흔들었다. 기대 없이 간 곳에서 오히려 마음이 가득 채워지는 날이 있다. 우리 가족에게는 그날이 바로 그랬다.

제주 상효원에서 열린 제 1회 제주 보테니컬 포럼 & 페스타 행사장 입구. 조용한 숲이 축제를 맞아 문을 열준 행사장 입구(왼쪽).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던 나무 위 오두막(오른쪽). 이번 축제에서도 아이들의 발걸음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곳이다.
제주 상효원에서 열린 제 1회 제주 보테니컬 포럼 & 페스타 행사장 입구.조용한 숲이 축제를 맞아 문을 열준 행사장 입구(왼쪽).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던 나무 위 오두막(오른쪽). 이번 축제에서도 아이들의 발걸음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곳이다. ⓒ 이현숙

겨울 숲에 숨은 동백꽃, 그리고 다시 찾은 길

상효원에서 처음으로 '제 1회 제주 보테니컬 포럼 & 페스타(5일~7일)'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행사 소개도 많지 않았고, 프로그램 안내 페이지도 단촐했다. 그래도 마음은 이미 상효원으로 기울어 있었다. 지난 여름 상효원을 찾았을 때의 기억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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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잔디 너머로 펼쳐진 숲과 나무 위 작은 오두막, 곳곳에 숨어있는 토끼 캐릭터들. 아이들은 이곳을 놀이동산 만큼이나 좋아했고, 나는 어른이면서도 이 공간이 이상하게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무료 개방'이라는 문구는 마지막 확인 버튼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주저 없이 차에 올랐다.

겨울 초입의 상효원은 크게 기대할 꽃이 없다. 잎이 진 자리에 남아 있는 가지들이 겨울의 시작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축제 덕분이었을까. 숲 길을 걷다 보니 빨간 동백이 조용히 피어 있었고, 눈을 조금 더 돌리니 분홍 동백도 숨어 있었다. 깊은 그늘에서는 흰 꽃을 소복하게 달고 선 나무도 있었다. 많지 않은 꽃이었지만, 그래서인지 오히려 더 선명했다.

"엄마, 겨울에도 꽃이 있어!"

아이의 외침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췄다. 4월과 7월이면 상효원의 꽃이 최대치를 맞는다고 한다. 오늘 본 동백만으로도 이 정도인데, 완연한 봄이 되면 얼마나 찬란할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겨울 숲의 담담한 아름다움이 마음에 들어와 오래 머물렀다.

햇빛이 천천히 내려앉는 상효원의 숲길. 축제의 소란도, 겨울의 정적도 함께 담긴 한라산 자락(왼쪽). 겨울 숲에서 만난 빨간 동백(오른쪽).
햇빛이 천천히 내려앉는 상효원의 숲길.축제의 소란도, 겨울의 정적도 함께 담긴 한라산 자락(왼쪽). 겨울 숲에서 만난 빨간 동백(오른쪽). ⓒ 이현숙

본격적인 체험의 시작은 늘 그래 왔듯 '먹는 것'이었다. 3살 꼬마 아이는 탄소중립 체험 부스에서 마시멜로를 굽는 냄새를 맡자마자 폭발적인 스피드로 뛰어갔다. 불 앞에서 조심스럽게 막대를 쥐고 있는 작은 손은 귀여우면서도 이상하게 뭉클했다. 결국 살짝 탄 마시멜로를 손에 들고 세상을 다 얻은 얼굴을 했다.

그 사이, 할아버지는 어느새 한라산 식물 세밀화 그리기 부스에 자리를 잡으셨다. 색연필로 잎맥을 따라가며 한참을 그리는 모습은 아이들보다 더 진지했다. 분명 시작은 6살 꼬마 아이였지만, 누구보다 이 체험을 즐기고 계신 모습에 부스 담당 선생님도 뿌듯한 미소를 지으셨다.

6살 아이는 압화 키링 만들기 부스 앞으로 달려갔다. 이미 진행 중인 다른 친구들의 모습을 눈으로 익히는 듯 고요히 그 모습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시간을 즐겼다. 작은 꽃잎을 고르고 붙이는 그 눈빛은 나뭇잎을 색연필로 색칠할 때와는 다른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꽃과 나무가 아이에게 주는 힘이란 이런 것이겠지 싶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날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손꼽히는 체험은 바로 전기 열차였다. 제주에서는 흔치 않은 기차라는 이유 만으로 아이들은 이미 마음을 빼앗겼고, 어른들 역시 자연스레 탑승했다. 열차는 숲 사이를 천천히 지나며 상효원의 식물들을 설명해주는 가이드의 목소리를 실어 나르는데, 이 설명이 의외로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 곳의 나무와 꽃들이 여기가 한라산 자락임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짧은 문장 하나가 내가 그 울창한 한라산에 발을 딛고 있는 작은 존재임을 다시금 보여주었다. 그런 내 옆에 있는 이 나무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에 함께하는 친구처럼 느껴지게 했다. 숲은 그렇게 조금씩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행사 진행중인 부스 모습. 탄소중립 부스에서 마시멜로를 굽는 아이들. 작은 불 앞에서 더 진지해지는 순간이 있다. (1,2번째 사진). 한라산 식물을 세밀화로 그리는 할아버지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손주(3번째 사진). 풍선마술쇼를 보며 환호하는 아이. 축제에서 가장 큰 웃음이 터졌던 순간(4번째 사진).
행사 진행중인 부스 모습.탄소중립 부스에서 마시멜로를 굽는 아이들. 작은 불 앞에서 더 진지해지는 순간이 있다. (1,2번째 사진). 한라산 식물을 세밀화로 그리는 할아버지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손주(3번째 사진). 풍선마술쇼를 보며 환호하는 아이. 축제에서 가장 큰 웃음이 터졌던 순간(4번째 사진). ⓒ 이현숙

세대가 함께 웃는 공간

축제의 또 다른 주인공은 무대였다. 아이들을 위한 제주어 말하기 공연, 귀여운 어린이 합창단, 중·고등부 밴드의 풋풋한 연주, 아이들의 환성 소리를 들을 수 있던 풍선 아트 쇼까지 진행되었다. 이 축제가 좋았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세대가 섞여 같은 무대를 바라보고, 때로는 함께 올라가는 풍경. 누구 하나 뛰어나지 않아도 좋고, 어설퍼도 따뜻한 무대이다. 그런 무대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특히 풍선 마술쇼는 아이들이 무대 앞을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풍선이 칼이 되었다가 지렁이가 되었다가, 어느 순간 하트가 되어 아이의 품으로 들어가는 순간은 늘 환호성을 불렀다. 3살 둘째 아이는 꿀벌 풍선을 받는 행복을 얻었다.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박수 치던 6세 꼬마 아이는 모두에게 나누어 주는 작은 꽃송이 풍선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오후에는 축제의 하이라이트, 상금 150만 원이 걸린 가요제가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주말은 그 직전에 이미 완성되었다. 아이들의 체력과 집중력은 풍선마술쇼 이후 바닥이 났고, 결국 가요제를 끝까지 보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쉬움이 없었다. 가족 모두가 충분히 웃었고, 충분히 걸었고, 충분히 배운 하루였기 때문이다.

화려하지는 않았다. 대단한 무엇이 준비된 행사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제 1회 제주 보테니컬 포럼 & 페스타'는 우리 가족의 주말을 조용하게, 그러나 빈틈없이 채워주었다.

숲의 색과 아이들의 웃음, 마시멜로와 세밀화, 전기 열차의 느린 속도와 겨울 동백의 진한 색이
한데 어우러져 마음 깊은 곳을 따뜻하게 데웠다. 별 기대 없이 갔던 곳에서 오히려 마음이 채워지는 날. 그런 날이 가끔 인생의 선물이 된다. 상효원의 겨울 숲은 바로 그런 선물을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제 1회 제주 보테니컬 포럼 & 페스타 행사 포스터
제 1회 제주 보테니컬 포럼 & 페스타 행사 포스터 ⓒ 상효원


#제주살이#상효원#가족나들이#제주행사#보테니컬페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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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로 이주해 두 아이를 키우며 삶을 기록하는 엄마입니다. 도시 부모들의 로망과 현실, 육아와 배움의 이야기를 글로 전합니다. 생활 속에서 찾은 진짜 경험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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