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산에 있는 아들 집에 머문 지도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다. 멀지 않은 곳에 공주 마곡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하루 시간을 내어 찾아 나섰다. 이름은 익숙했지만, 그저 유명한 사찰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터였다. 막상 발길을 옮겨보니 마곡사는 통일 신라 말에 창건된, 천 년 세월을 품은 고찰이었다.
마곡사는 충남 공주시 사곡면 태화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사찰 음식집과 작은 식당들, 계절에 따라 어울릴 듯한 카페들이 띄엄띄엄 이어진다. 곧장 절로 오르기보다 잠시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계곡을 따라 이어진 데크 길이 첫 인상부터 마음을 끌었다.
길을 오르는 동안 법구경 구절들이 간간이 눈에 들어온다. 계곡물 소리와 바람 소리, 맑은 공기가 한데 어우러지며 마치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기 전 마음을 씻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아들과 일부러 월요일, 조용한 시간을 골라 찾은 덕에 풍경은 더욱 고요했다. 걷는 내내 하루 운동량도 자연스레 채워지는 듯해 몸과 마음이 가벼웠다.

▲마곡사 입구계곡길에 법구경 ⓒ 김성례

▲마곡사입구글씨와 해탈문 ⓒ 김성례
중간 쯤에서는 추운 날씨에도 더덕을 파는 분을 만났다. 값을 묻자 말없이 하나를 깎아 내민다. 한입 베어 무는 순간, 더덕이 이렇게 달았나 싶어 잠시 멈춰 섰다. 내려오는 길에 꼭 사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은 지켰다.
마곡사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일대에 삼을 많이 재배해 '삼골'이라 불렸던 것이 한자로 옮겨져 '마곡(麻谷)'이 되었다는 설, 또 하나는 유명한 스님의 설법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삼밭의 삼대처럼 빽빽이 모여들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다. 어느 쪽이든, 사람과 이야기가 모이던 골짜기였음은 분명해 보였다.

▲마곡사 천왕문유머스런 사천왕상 ⓒ 김성례
절 마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오층 석탑이다. 14세기에 세워진 이 탑은 티베트식 상륜부를 갖춘 독특한 형태로, 보물 제 799호다. 2단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올리고 청동으로 만든 머리 장식을 얹었는데, 원나라 라마탑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고려가 원과 활발히 교류하던 시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마곡사오층석탑과 대광보전 ⓒ 김성례
탑 왼편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머물렀던 백범당이 있다.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 장교를 처단한 뒤 인천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탈옥한 김구는 1898년 이곳에 이르러 삭발하고 법명 원종(圓宗)을 얻었다. 그러나 출가보다 독립 운동의 길을 선택하며 마곡사를 떠난다. 해방 후인 1946년, 다시 찾은 마곡사에서 대광보전 기둥의 주련 "돌아와 세상을 보니 꿈속 일과 같구나"를 읽고 감회에 젖어 심은 향나무가 지금도 그 자리에 남아 있다.

▲공주 마곡사백범당과 김구선생 심으신 향나무 ⓒ 김성례
그 향나무 옆길을 따라 내려가면 마곡천이 흐르고, 조금 더 가면 김구 선생의 삭발터가 나온다. 그는 <백범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냇가로 나가 삭발 진언을 쏭알쏭알 하더니 내 상투가 모래 위로 툭 떨어졌다. 이미 결심은 하였지만, 머리털과 같이 눈물이 뚝 떨어졌다."
글을 읽는 순간, 계곡의 공기마저 묵직하게 가라앉는 듯했다. 해탈 문과 천왕 문을 지나 일직 선상에 놓여 있어 대웅전으로 착각하고 삼배를 올린 곳은 대광보전이었다. 이곳은 마곡사의 중심 법당으로, 불에 소실된 뒤 조선 순조 13년(1813)에 다시 지어졌다. 현판은 단원 김홍도의 스승으로 알려진 표암 강세황의 글씨라 전해진다.
대웅보전으로 오르는 길 곳곳에는 자갈을 쌓아 만든 작은 돌탑들이 눈에 띈다. 누군가의 소원이었고, 또 누군가의 마음이 이어져 쌓였을 것이다. 경내 질서를 해친다는 시선도 있지만, 그 돌탑들 속에서 사람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게 된다.

▲마곡사 대웅보전올라가는 길과 작은 돌탑들 ⓒ 김성례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법당으로, 조선 후기 각순 대사가 중창한 건물이다. 마곡사에는 영산전, 대웅보전, 대광 보전, 오층 석탑을 비롯해 여러 전각과 문들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절 전체가 하나의 살아 있는 박물관처럼 느껴진다.
절 입구의 영산전 현판은 조선 세조의 글씨다. 세조는 매월당 김시습을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았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고, 대신 현판과 자신이 타고 온 가마를 남겼다고 한다. 왕위 찬탈에 저항하던 시인을 향한 세조의 복잡한 마음이 전해지는 대목이다.
절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주차장 쪽으로 내려와 산채비빔밥과 정식을 먹었다. 향긋한 나물 향에 공주 막걸리를 곁들이니 목 넘김이 부드러웠다.

▲마곡사입구산채정식과 비빔밥 ⓒ 김성례
마곡사는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으면서도, 굳이 많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절이었다. 조용히 걷고, 잠시 머물다 돌아오기만 해도 충분한 곳. 태화산 자락에서 만난 그 편안함은 돌아오는 길 내내 오래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