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여주시 연양동 남한강에서 열린 한미연합 제병협동 도하훈련에서 주한미군 스트라이커 장갑차와 한국군 K200 장갑차가 부교 도하를 하고 있다. 2025.8.27 ⓒ 연합뉴스
미 하원이 2026 회계연도 미국 국방수권법(NDAA)에 대해 상·하원 군사위원회가 마련한 타협안을 통과시키면서, 한국에 주둔한 미군 병력을 현재 수준인 2만 8500명 아래로 줄이는 데 이 법안으로 승인된 예산을 쓸 수 없도록 하는 조항이 다시 살아났다. 같은 안에는 한미가 합의한 계획을 벗어난 방식으로 연합사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군 주도 지휘구조로 넘기는 데에도 국방 예산을 사용할 수 없도록 막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 법안은 상원 표결과 대통령 서명을 거쳐 효력을 갖게 된다.
단기적으로 보자면 우리 안보에 적지 않은 이익이 될 수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다른 지역의 위협을 이유로 유럽과 아시아 주둔 미군을 재배치하거나 줄이려 할 수 있다는 우려는 워싱턴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번 국방수권법안은 최소한 한국과 유럽에서 행정부가 의회와 동맹과의 충분한 논의 없이 병력을 빼는 것을 어렵게 하는 장치를 담고 있다. 실제로 발효된다면 주한미군이 갑자기 정치적 흥정 카드로 쓰일 위험을 낮추고,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기반한 억제력과 확장억제 공약에 대한 신뢰를 일정 부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언제든 다른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는 장치
그렇다고 이 조치를 한반도 안보의 영구 보증서로 볼 수는 없다. 주한미군 규모와 전작권 전환 조건을 결정적으로 쥔 주체가 한국이 아니라 미국 의회라는 구조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국방수권법은 매년 새로 제정되는 권한법이고, 이번 안에도 미 국방장관(전쟁장관)이 해당 감축이나 지휘구조 변경이 미국의 국가안보 이익에 부합하고 동맹과 충분히 협의됐다고 판단해 관련 보고서를 내면,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는 예산 제한을 풀 수 있는 예외가 열려 있다. 지금은 주한미군 돌발 감축을 막는 보루처럼 보이지만, 미국 국내 정치 지형이 달라지면 언제든 다른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는 장치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전작권 전환과 관련된 메시지도 가볍지 않다. 한미는 2015년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 계획(COTP)에 합의해, 한국군이 연합 방위를 주도할 능력과 대량살상무기 대응 능력, 전환에 적합한 역내 안보 환경을 갖출 것을 전환의 전제 조건으로 못 박았다. 최근에도 양국은 안보협의회의 공동성명에서 이러한 조건기반 전환 계획에 따라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하면서, 필요한 능력을 계속 갖춰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미 의회의 국방수권법안은 여기에 더해, 한미가 합의한 계획을 벗어나는 방식으로 전작권을 넘기거나 한반도에서 미군 태세를 바꾸려면 그 조치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국방장관의 인증과 별도의 위험 평가 보고서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의회의 개입을 넓혀 놓았다.
이 구조는 우리에게 불편하지만 현실이다. 전작권 전환이 동맹 이탈이나 미군 철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군이 더 큰 책임을 지고 미군과 함께 연합 지휘를 수행하는 체제로 연합사를 고도화하는 과정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동시에, 미 의회가 전작권 전환과 주한미군 태세 조정에 사실상 추가적인 '제동 장치'를 갖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전작권 논의를 정치 일정에 맞춰 서두르거나, 반대로 국내 논란을 피하려고 무기한 뒤로 미루는 선택은 모두 설득력이 떨어진다. 필요한 것은 조건기반 전환이라는 틀을 전제로, 어떤 지휘 구조와 어떤 능력을 언제까지 갖출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는 일이다.
결국 관건은 우리가 우리 몫의 보루를 어떻게 쌓느냐다. 미 의회의 국방수권법안이 외부에서 주한미군 감축과 전작권 전환에 일정한 안전장치를 거는 역할을 한다면, 한국은 그 사이에 실제 전력을 채워 넣어야 한다. 조건기반 전작권 전환이 요구하는 것처럼, 한국군이 연합 방위를 주도할 수 있을 만큼의 지휘 통제 능력, 감시정찰과 미사일 방어 능력, 해공군 전력과 대량살상무기 대응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핵심이다. 동시에, 미 의회와 정부, 싱크탱크를 상대로 한국의 계획과 능력을 투명하게 설명하고 검증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 자체가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동맹의 신뢰를 유지하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 우리 지키는 힘 키워야
국방수권법안은 외부의 보루를 어느 정도 보강해 주지만, 그 보루의 위치는 워싱턴이다.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을 줄이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우리를 지킬 수 있는 내부의 보루는 결국 우리가 쌓아야 한다. 주한미군 감축 제한과 전작권 전환 조건을 둘러싼 미 의회의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이를 명분 삼아 전작권 논의를 미루거나 자주적 방위력 강화를 늦추는 것은 책임 있는 선택이 아니다.
여야 모두 정쟁을 넘어, 국방수권법안이 만든 새로운 환경 속에서 한미동맹 구조와 우리 군의 능력을 어떻게 재설계할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 위에서만 한미동맹은 외부의 보루이자, 대한민국 스스로 키워 온 내부의 보루와 맞물려 한반도 평화와 주권을 지키는 틀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