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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기의 실수는 성장기의 흔적 소년원에서의 기록은 소년의 미래를 위해 보호되어야 한다. 소년원의 생활은 미래를 위한 희망의 준비이다. 소년의 형상과 창살 너머의 무지개, 그리고 서류파일의 잠긴 자물쇠는 소년보호에 대한 희망의 가능성을 나타냄.
소년기의 실수는 성장기의 흔적소년원에서의 기록은 소년의 미래를 위해 보호되어야 한다. 소년원의 생활은 미래를 위한 희망의 준비이다. 소년의 형상과 창살 너머의 무지개, 그리고 서류파일의 잠긴 자물쇠는 소년보호에 대한 희망의 가능성을 나타냄. ⓒ AI

연예인의 과거를 파헤치는 기사가 또다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다. 본인의 현재 삶과 성취와는 무관한 소년원 전력이 대중매체의 조명 아래 다시 끌려나와 '사회적 사형선고'처럼 반복 집행된다. 마치 잘 살아보려고 애써온 시간 전체가 하나의 꼬리표에 의해 무효가 되는 것처럼, 정보발신자들은 과거의 그림자를 현재의 죄처럼 다시 집행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가십이 아니다. 소년보호에 관한 법률의 정신을 정면으로 배반하는 폭력이며, 교정과 교화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위험한 흐름이다.

소년보호법은 "낙인을 남기지 말라"는 사회적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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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보호법은 분명히 말한다. 소년은 미성숙하고, 변화 가능성이 크며, 무엇보다 과거 행위가 평생을 구속하는 낙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년보호처분 기록은 비공개이며, 장래에 불이익이 되지 않도록 열람·조회·발급이 엄격히 제한된다.

"과거보다 미래의 가능성을 본다." 이것이 소년의 미래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약속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합의가 흔들리고 있다. 소년기의 실수를 현재의 인격 결함으로 왜곡하고, 과거를 끌어올려 다시 심판하려는 보도가 늘어나고 있다. '한 번의 잘못이 곧 그 사람 전체'라는 낙인화 사고가 대중 속에서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교도관으로 30여 년간 근무하며 수많은 소년 수형자들을 만났다. 눈빛이 겁에 질린 아이들, 가정에서 돌봄을 받지 못해 길거리로 떠밀린 아이들, 폭력과 가난 속에서 생존을 배운 아이들. 그 아이들은 '범죄자'라는 정체성보다 상처받은 미성년자, 누군가의 보호를 기다리는 존재였다. 소년교도소에서 교정교화를 위해 애쓰던 시절, 아이들에게 늘 들려주던 말이 있다.

"네가 지나온 길이 곧 네 미래는 아니다."

실수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실수만으로 미래를 재단하지 말자는 것이 우리 교정인의 신념이었다. 한순간의 미숙함을 그 사람의 본질로 규정하는 이분법적·본질주의적 사고는 변화하려는 노력을 보지 못한 채 과거의 잘못만 확대한다.

그 결과, 성장의 가능성은 지워지고 '과거=정체성'이라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새겨진다. 이것이 낙인화 사고가 만들어내는 가장 잔혹한 현실이다.

교정의 본질은 '기회를 다시 주는 일'이다

요즘의 일부 언론은 소년기 전력을 '공익'이라는 허울로 공개하고,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공개될 수 없는 기록을 세상에 퍼뜨리고 있다. 이러한 정보 확산 주체들은 한 개인의 사회적 회복을 심각하게 방해한다. 더 나아가 청소년들에게는 "소년원에 다녀오면 인생이 끝난다", "아무리 노력해도 과거는 지워지지 않는다"는 절망적 메시지를 남긴다.

교정교화를 위해 어렵게 쌓아 올린 회복의 사다리를 낙인화 여론이 걷어차는 셈이다. 기회는 사라지고, 출발선조차 밟기 어려운 사회가 된다.

비행을 넘어 범죄까지 저지른 소년수형자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그들과 부대끼며 희망과 미래의 방향을 일러주던 교도관 시절, 나는 수많은 아이들이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눌하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이제 다시는 안 들어올게요"라고 말하던 그 아이들. 그 말 속에는 두려움과 함께 '사람답게 인정받고 싶다'는 절박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 아이들이 사회에서 일하고 가정을 이루며 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바른 어른의 역할과 따뜻한 관심이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지 절감해 왔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그 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과거의 실수로 사람을 규정하고, 이미 끝난 과거를 다시 끌어와 현재를 처벌하려는 분위기가 점점 더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회복과 교정의 길로 돌아가야 한다

사회는 어린 시절의 실수에 대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줄 때 성숙해진다. 소년보호법이 지향한 사회 역시, 과거의 잘못보다 앞으로의 가능성에 더 큰 무게를 두는 공동체였다. 그러나 지금의 여론 공간은 기회를 주는 대신, '한 번의 과거가 평생을 결정하는 사회'를 만들고 있다.

소년원을 거쳐 소년교도소에서 만났던 아이들을 보며 늘 다짐하던 말이 있다. "소년기의 실수는 성장기의 흔적일 뿐이다. 실수는 고칠 기회를 주어야 하고, 그 기회는 낙인이 없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미숙했던 시절의 과오가 성인이 된 오늘의 삶을 단죄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다시 회복과 교정의 길로 돌아가야 한다. 소년의 상처 위에 혐오를 덧씌우지 말고, 변화의 가능성을 믿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과거의 소년수형자들을 위해 애써 온 교정인의 최소한의 바람이며, 지금 우리 사회가 반드시 마주해야 할 거울이다.

#소년보호법#비밀보호법#아동권침해#소년사법기록#회복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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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에서 30여년 공직생활 후 퇴직, 법무연수원 교수, 경주교도소장 등 역임, 현, 연세중독심리교육원 원장. 현, 마약사범 메타인지 상담 전문가로 활동 현. 범죄심리전문가(한국심리학회), 중독심리전문가(한국심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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