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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나를 이끌고, 다독이고, 나아가게 한 문장을 새겨봅니다. 2026년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일으킨 말들을 나눕니다.
한때 창작은 선택받은 소수의 영역이었습니다. 지금은 인스타그램, 유튜브, 브런치, 블로그... 대부분 하나씩은 계정을 가진 시대, 그야말로 모두가 크리에이터인 시대입니다. '등단'이란 바늘구멍을 뚫지 않아도 작가가 될 수 있고, 일반 시민이 기사를 쓸 수도 있고, 방송사 PD가 아니어도 영상을 제작할 수 있으며, 평범한 사람도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리고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릴 수 있는 시대입니다.

많은 사람이 콘텐츠 소비자에서 콘텐츠 생산자로의 변화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소비자에서 생산자가 되는 그 '결정적 순간'은 저에게도 찾아왔습니다. 등단하지 않아도, 교수가 아니어도, 전문가가 아니어도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이 제 서가를 점유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글쓰기는 더 이상 몇몇에게 허락된 영역이 아니라, 누구나 쌓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독서도, 미술관도 더 이상 저를 깨우지 못하던 시기에, 그 공허한 틈을 채운 것은 '쓰기'라는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감히'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플랫폼에서 글을 쓴 지 2년 동안, 두 권의 책 릭 루빈의 <창조적 행위>, 그리고 아니 에르노의 <진정한 장소>가 그 시작을 흔들림 없이 지지해 주었습니다. 루빈은 예술을 특별한 영감의 발현이 아닌 "습관의 결과"라고 말했고, 에르노는 글쓰기를 "삶의 모든 장소가 응축된 비물질적 공간"으로 정의했습니다.

"좋은 습관이 좋은 예술을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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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습관이 좋은 예술을 창조한다. 습관 하나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목표는 예술에 이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프로듀서인 릭 루빈은 <창조적 행위>에서 대단한 영감이나 재능 대신 "좋은 습관"을 말합니다.

소비자로 살아가다, 생산자로 변모하는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기준은 너무 높았고, 필요한 에너지도 충분치 않았고, 목표는 높은 데다, 게으르기까지 했습니다. 자료 조사가 충분히 되지 않아서, 지금은 "써야 할 타이밍"이 아니어서 등등... 글쓰기를 습관으로 만들지 못한 변명은 차고 넘쳤습니다.

루빈은 그 모든 변명을 예술의 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먼저 '예술에 이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장비보다 습관, 재능보다 지속성, 영감보다 꾸준함을 우선하라고. 매일, 조금씩,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비로소 자기만의 세계가 구축된다고 말입니다.

 정독 도서관 노벨문학상 라운지에 마련된 아니 에르노 섹션(2022년 수상)
정독 도서관 노벨문학상 라운지에 마련된 아니 에르노 섹션(2022년 수상) ⓒ 전사랑

"글쓰기는 진정한 나만의 장소"

아니 에르노는 <진정한 장소>에서 말합니다.

글쓰기는 진정한 나만의 장소다... 그곳은 내가 자리한 모든 장소들 중에서 유일하게 비물질적인 장소이며, 어느 곳이라고 지정할 수 없지만, 나는 어쨌든 그곳에 그 모든 장소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아니 에르노가 말하는 '진정한 장소'는 자신이 살아온 모든 장소와 시간이 응축된 곳입니다. 그곳에서 에르노는 자신을 다시 쓰고, 독자는 그 장소를 잠시 빌려 머뭅니다. 릭 루빈도 창조를 '나만의 장소 만들기'로 비유합니다.

영원히 산꼭대기에서 혼자 산다고 상상해 보자. 당신은 그곳에 집을 짓는다. 찾아오는 이 하나 없겠지만 자신이 하루를 보낼 공간을 만드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취향에 맞게 고른 원목도 접시도 베개도 다 훌륭하다. 이것이 위대한 예술의 본질이다... 우리는 우리가 그 안에 살기 위해 예술을 창조한다.

특히 릭 루빈은 그 창조의 장소를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씁니다. 비평가, 편집자, 관객, 독자, 상업적 성공에 대한 의식이 아닌, "단 한 명의 관객" 즉 나 자기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에 먼저 집중하라고요.

진정한 성공은 "영혼의 사적 공간"에서 일어나고, 성공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작품의 가장 큰 잠재력을 끌어냈을 때" 또 "만족스러움과 함께 작품을 내보낼 준비가 되었을 때" 이미 일어나는 것이라고요.

2010년대만 하더라도 인공지능이 대체하지 못하는 직업으로 작가나 화가, 배우 등 이런 창조적인 일들이 꼽히다가 생성형 인공지능이 나온 이후로는 화가와 작가도 대체 가능한 직업이 된다는 말이 나오곤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본능적으로 사람 냄새, 진솔한 이야기에 끌리게 마련입니다. 게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인공지능이 한강 작가의 문장들처럼 가슴 울리는 글들을 써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 전사랑

요약, 정리, 리포트 형식의 글이나 기사는 인공지능이 쓸 수 있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만큼 더 마음을 울리는 글을, 사람 냄새 풍기는 글을, 온기를 찾듯 찾아가지 않을까요. ​더 불완전하지만 살아있는 감정들, 더 진솔한 이야기를요.

오히려 기술적 부분을 인공지능에 맡김으로써, 인간은 더 창조적인 감각과 관점을 살릴 수 있는 시대가 열린 셈입니다. 그리고 '감히' 권합니다. 당신도 일상 속에서 창조적인 무언가를 꺼내 보라고요. 비록 오늘의 문장이 미완성일지라도, 사진 한 장이 어설플지라도, 그 순간 시작될 창조적 삶의 여정은 그 무엇보다 삶의 풍요를 가져다줄 겁니다.

2026년에도 이어갈 습관

저는 <오마이뉴스>에 미술 관련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전시 보러 갈래?(https://omn.kr/2bmo6)'라는 연재로 좋은 전시를 소개하고 리뷰합니다. 말하자면 창조력이 뛰어난 미술 작가들의 힘을 빌리고, 거장들의 창조성에 기대어 글을 쓰고 있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미술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미술관 관람은 저에게 아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이 되었습니다. 작가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까지 자료 조사를 하고, 관람객의 반응을 살피고, 기사에 도움이 될지 모르는, 작품 하나하나가 주는 감정들을 세밀하게 기록합니다.

눈으로만 훑던 작품들을 나만의 언어로 해석해야, 그제야 보이고 이해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쌓인 하나하나의 글들은 저의 성장의 기록이자, 천천히 쌓아 올린 장소가 되어 갑니다. 삶에 작지만 거대한 균열을 만들어 준 글쓰기를 2026년에는 습관처럼 이어가고자 합니다. <진정한 장소>에서 아니 에르노의 말처럼요.

"무엇인가에 대해 쓰지 않으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참고>
아니 에르노, <진정한 장소>, 1984 Books, 2019.
릭 루빈, <창조적 행위>, 코쿤북스, 2023.


#릭루빈#아니에르노#올해의한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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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을 공부하러 영국에 갔다 미술에 빠져서 돌아왔다. 이후 미술사를 전공하고 미술에 관련한 글을 쓰고 있다. srjun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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