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흰색의 날개의 모습을 보이는 검독수리 어린새 ⓒ 이경호
인연이 없었다. 1996년 탐조 활동을 시작한 이후, 검독수리를 야생에서 만나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과거 야장을 다시 펼쳐보면 첫 기록은 2000년 3월, 흑산도에서 확인한 1개체다. 먼 거리에서 비행하던 어린 새였다.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도 흐릿해졌을 법한데, 이상하게도 그 장면은 아직 남아 있다.
두 번째 만남은 2006년 합강리였다. 그날은 참수리, 흰꼬리수리, 검독수리, 이 세 종을 한 자리에서 마주했다. 모두 멸종위기야생생물 Ⅰ급으로 지정돼 보호받는 종들이다. 지금 생각해도 비현실적인 조합이다. 이후로는 다시 긴 공백이었다. 동물원이나 생태원 철창 안에서의 모습은 가끔 보았지만, 새를 보는 사람에게 그것은 만남이라 부르기 어렵다. 야생의 검독수리는 늘 '소식'으로만 존재했다.

▲과거 합강리에서 확인했던 검독수리의 모습 ⓒ 이경호
그러던 중 지난 14일, 충남 서산 천수만 간월호 인근 농경지에서 검독수리 1개체를 확인했다. 검독수리는 역시나 하는 말이 절로 나오는 보통의 새는 아니다. 비행하며 이동할 때마다 기러기와 오리류 들이 일제히 흩어졌다. 위용 때문이었을 것이다. 검독수리가 하늘에 뜨는 순간, 공간의 질서가 달라지는 것은 기분때문일 것이다.
검독수리(Aquila chrysaetos)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넓은 분포를 가진 맹금류 중 하나다. 유라시아 대륙 전역과 북미, 북아프리카 일부 지역까지 분포한다. 사냥 능력 면에서는 최상위에 속한다. 토끼나 조류는 물론, 국내에서는 고라니 같은 중형 포유류를 사냥하는 사례도 보고돼 있다. 해외에서는 여우, 어린 사슴, 산양 새끼를 포획한 기록도 확인된다.

▲검독수리의 비행모습 ⓒ 이경호
이러한 능력 때문에 검독수리는 오랜 시간 인간과 복잡한 관계를 맺어왔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전통 매사냥에 활용됐고, 몽골과 카자흐스탄에서는 지금도 문화적 상징으로 남아 있다. 동시에 가축 피해를 이유로 박해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검독수리는 '최상위 포식자'다. 이들의 존재는 단순히 한 종의 생존 여부를 넘어, 해당 지역 생태계가 아직 기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충분한 먹이원과 넓은 서식 공간이 유지되지 않으면 머무를 수 없는 종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검독수리는 텃새가 아니라 겨울철 드물게 관찰되는 나그네새 혹은 월동 개체로 기록된다. 개체 수는 매우 적고, 해마다 관찰 여부도 불규칙하다. 환경부의 겨울철새 동시센서스에 따르면 10개체 이내가 월동하는 것으로만 조사된다. 천수만, 합강리, DMZ 인근, 일부 내륙 산악지대가 주요 관찰지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제주 한라산 일대에서 번식이 확인돼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탐조인으로서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번식지로서의 기능이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검독수리 월동변화 모습 ⓒ 조류정보시스템 갈무리
천수만은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경로(EAAF)의 핵심 지역이다. 수많은 물새와 맹금류가 중간 기착지로 이용한다. 이번 검독수리 관찰 역시 단순한 우연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농경지와 간척지, 습지와 산지가 맞물린 공간 구조, 그리고 아직 유지되고 있는 먹이망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러나 이 지역은 동시에 개발 압력의 중심에 놓여 있다. 간척지 확장, 농업의 집약화, 태양광 시설 설치, 산업단지 조성 계획 등은 검독수리와 같은 대형 맹금류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검독수리는 현재 IUCN 적색목록에서 '관심대상(LC)'으로 분류돼 있다. 분포 범위가 넓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는 지역별 감소 추세를 평균값으로 덮은 결과에 가깝다. 유럽 일부 지역과 동아시아에서는 서식지 감소, 먹이원 고갈, 풍력발전기 및 송전선로 충돌, 밀렵과 독살로 인한 개체 수 감소가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특히 풍력발전 시설과 송전선로에 의한 충돌 사고는 전 세계적으로 검독수리 보전의 주요 과제로 지적된다. 인간이 만든 '친환경' 구조물이, 역설적으로 최상위 포식자에게는 치명적인 장애물이 되는 상황이다. 대규모 송전선로가 검독수리에게는 위협이된다. 최근 에너지고속도로 추진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송전설로 건설에 신중할 필요를 보여주는 종이기도 하다.
검독수리를 만났다는 사실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앞으로도 이 종을 만날 수 있느냐 이다. 이번 조우는 행운이었을지 모르지만, 다음 만남을 우연에만 맡길 수는 없다. 보자마자 하루를 감싸던 묘한 감정, 흔히 '조복'이라 부르는 그 기분은 개인적 감상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이 땅의 생태계가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는 신호이자, 동시에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다. 풍요로운 겨울을 보내고 다시 북상할 수 있기를 바라고 희망한다. 그리고 다음 겨울, 또 다른 누군가가 같은 하늘 아래서 검독수리를 기록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