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효자아파트에서 전봉준 투쟁단·남태령 책모임 등이 남태령 집회 1주년을 맞아 '남태령 첫돌' 행사를 개최했다. 행사 참여자들이 농민들이 준비해온 팥죽을 나눠먹고 있다. ⓒ 정초하

▲21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효자아파트에서 전봉준 투쟁단·남태령 책모임 등이 남태령 집회 1주년을 맞아 '남태령 첫돌' 행사를 개최했다. ⓒ 정초하

▲'윤석열 체포구속' '사회대개혁' '개방농정 철폐' 등을 요구하며 서울로 향하던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소속 ‘전봉준투쟁단 트랙터 대행진’이 2024년 12월 22일 새벽 서울로 들어서는 서초구 남태령고개 수도방위사령부앞 도로에서 경찰에 막혔다. 농민들이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며 농성하는 가운데, 서울 도심에서 열린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수백명이 합세해 함께 농성하고 있다. ⓒ 권우성
"어디서도 따뜻하게 손 잡아주는 사람이 많이 없었던 우리 농민들에게는 죽어도 잊지 못할 감동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7시 정도 됐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저에게 한 분이 오셔서 '아저씨 왜 이리 막혀있어요?'라고 물어보셔서 제가 그랬습니다. 저희들은 경찰 차벽에 막혀서 꼼짝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분께서 '그러면 안 되잖아요. 제가 함께 해드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 말을 듣고 저는 돌아서서 한참 울었습니다. 저 잘 안 울게 생겼죠? 잘 웁니다. 남태령 얘기만 하면...
- 전주환(경상남도 진주시 농민)
한 해 중 가장 긴 겨울밤, 동짓날에 '동지(同志)'가 된 사람들이 1년 만에 다시 모여 팥죽을 나눠먹었다. 2024년 12월 21일, 남태령 고개에서 서로를 만난 농민과 시민들이다. 전직 대통령 윤석열씨의 퇴진을 요구하며 트랙터를 끌고 상경한 농민단체 연합체 '전봉준 투쟁단'을 가로막았던 경찰 차벽 앞에서, 밤새 연대하며 길을 열어냈던 이들이 1년 전의 기억을 다시 꺼냈다. 21일 전봉준투쟁단·남태령 책모임 등이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서 '남태령 첫돌' 행사를 열었다.
남태령 얘기만 하면 '울보'가 되는 농민, 남태령 이후 '광장 매니아'가 된 청년 기수, 당시 사람들이 올린 SNS 글을 아카이빙해오고 있는 사회운동 연구자까지. <오마이뉴스>는 행사에 참여해 여전히 남태령의 시간에 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팥죽 나누며 떠올린 그날 밤... "'뒤로가기' 있어도 더 나은 사회에 대한 믿음 생겨"
시민과 농민 100여 명이 팥죽을 나눠 먹은 통인동 효자아파트의 풍경은 1년 전 후원 물품과 배달 음식이 쉴 새 없이 쏟아지던 남태령 고개를 떠올리게 했다. 농민들이 준비해 온 팥죽과 고구마, 동치미를 행사 스태프들이 부지런히 나르자, 참가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의자를 식탁 삼아 음식을 나누고 떠먹여주며 서로를 챙겼다. 배경음악으로는 익숙한 민중가요가 흘러나왔고, 벽 한쪽 크리스마스 LED 조명으로 장식된 나무통에는 광장에서 휘날렸던 깃발들이 꽂혀 있었다. 지난 겨울 광장을 수놓았던 '윤석열 파면' 피켓도 벽과 기둥 곳곳에 붙여있었다.
팥죽을 나눠먹던 이들은 자연스럽게 1년 전 그날을 회상했다. "동치미가 끝내준다"고 감탄하던 김소현(여, 30)씨는 "벌써 1년이 지난 게 믿기지 않는다"며 "그날 새벽에 진짜 추웠는데 그래도 지금 웃으면서 따뜻한 공간에서 보니 좋다"고 말하며 웃었다. 옆에서 팥죽을 떠먹던 장인선(남, 32)씨 역시 "그때도 쏟아진 밥차, 간식차 덕분에 잔뜩 맛있게 얻어먹었는데 지금 여기도 또 맛있는 게 있네"라고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21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효자아파트에서 전봉준 투쟁단·남태령 책모임 등이 남태령 집회 1주년을 맞아 '남태령 첫돌' 행사를 개최했다. 행사 도중 농민들이 준비해온 팥죽을 스태프가 행사 참여자에게 나눠주고 있다. ⓒ 정초하

▲전봉준투쟁단이 서울로 향하다가 2024년 12월 21일 남태령고개에서 경찰에 막힌 채, 이날 저녁 농성을 벌이고 있다. ⓒ 전농
이들에게 1년 전 남태령은 쉽게 잊히지 않는 순간이다. 당시 남태령에 있었던 김여진(여, 24)씨는 "차벽이 열리고 전농 선생님들을 배웅할 때 저희를 향해 계속 손을 흔들어주셨는데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고 생생하다"며 "엄청 춥고 힘든 밤을 보냈음에도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보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남태령 이전까지는 세상에 비관적이었는데, 그날 연대를 체감하면서 '뒤로가기'가 잠시 있을지언정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단결투쟁' 머리띠를 두른 게임 캐릭터 키링을 가방에 단 황민수(남, 39)씨는 남태령의 밤을 집에서 지켜봐야 했던 기억을 꺼냈다. 그는 "막차가 끊겨 현장에 갈 수 없었는데, 서 있기조차 힘든 추운 날에 사람들이 떠는 모습을 유튜브로 보며 큰 부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황씨는 "다음 날 아침 첫차를 타고 남태령으로 가서 결합했는데, 끝내 경찰 차벽이 열리면서 햇살이 비치고, 그 사이로 트랙터가 지나가던 장면이 감동적이었다"며 "직접 본 사람이라면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회상했다.
광화문 집회를 마치고 곧바로 남태령으로 향했다는 김동건(남, 24)씨는 "평생 마주칠 일 없을 것 같던 농민들과 만나 민중가요 가사를 한줄씩 배우고, 반대로 청년들은 K팝을 알려주며 서로를 알아갔던 시간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남태령을 다녀오고 나서 내 삶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자들이 함께 모여 강해지는 걸 보며 현장에서 연대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그 이후 작은 집회들도 참가하고 있다"며 "그날의 다짐을 이어가고 잊지 않기 위해 오늘도 이 자리에 왔다"고 전했다.
"각본 없는 드라마, 응원봉과 함께하는 농민운동 그릴 것"…농민들이 기억하는 남태령

▲21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효자아파트에서 전봉준 투쟁단·남태령 책모임 등이 남태령 집회 1주년을 맞아 '남태령 첫돌' 행사를 개최했다. 행사 참여자들이 농민들이 준비해온 팥죽을 나눠먹고 있다. ⓒ 정초하

▲21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효자아파트에서 전봉준 투쟁단·남태령 책모임 등이 남태령 집회 1주년을 맞아 '남태령 첫돌' 행사를 개최했다. ⓒ 정초하

▲2024년 12월 22일 오후 7시 남태령 고개에서 사당역을 거쳐 한강진역에 도착한 트랙터 행렬을 환영하는 사람들. 21일 오후 전국 각지에서 트랙터 행진을 하던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전봉준 투쟁단'이 서울에 들어오려다 경찰에 저지되자,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남태령고개로 달려와 밤샘 시위를 벌였다. ⓒ 권우성
농민들에게도 남태령은 각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경북 청송에서 사과농사를 짓고 있는 김태현(남·62)씨는 남태령을 "각본 없는 드라마"에 비유했다. 그는 "농민운동을 35년째 해오면서 트랙터가 막힐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남태령에서 벌어진 일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손난로와 따뜻한 음료가 끝도 없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너무 감동해 눈물이 났다"며 "밤새 사라지지 않던 응원봉 덕분에 경찰 차벽이 마침내 열렸을 때는 수십 년 만에 체기가 내려가는 느낌이었다"고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이어 "남태령 이후 퀴어나 다른 소수자 문제 등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계들에 눈을 뜨게 됐다"며 "더이상 고립된 농민만의 투쟁이 아니라, 응원봉 물결과 함께하는 농민운동이라는 새로운 상을 그리게 됐다"고 말했다.
정읍에서 쌀농사를 짓고 있는 양옥희(여, 67)씨는 "그동안 농민들의 요구를 귓등으로도 안 듣는 정부만 봐왔기에 패배의식에 젖어있었는데 남태령에서 희망을 봤다"며 "네이버를 뒤져가며 농업 문제를 알아보는 훌륭한 젊은이들의 모습이 생생하기에 이들을 또 한 번 보고 싶어서 일주일 전부터 차표를 예매해가며 이 자리에 오려고 준비했다"고 말했다.
논산에서 쌀농사를 짓고 있는 권태옥(여, 61)씨 역시 "남태령만 생각하면 가슴이 뜨겁다"며 "차벽이 열릴 때 농민들이 뒤따르면서 함께 한 시민 한 명, 한 명에게 하이파이브하면서 가는데 눈물이 안 날 수가 없다. 하룻밤만에 동지애가 생겼는데 이를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해준다는 게 너무 고맙다"고 전했다. 권씨는 "남태령 전과 후에 농민운동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자체가 달라졌다"며 "전에는 시끄럽다고 시민들이 항의하고 농산물보다 '배달음식이나 먹자' 하는 마인드였다면 이제는 농민들이 서울에 시위하러 올라온 이유를 궁금해한다는 점에서 '남태령'은 농민운동사에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21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효자아파트에서 전봉준 투쟁단·남태령 책모임 등이 남태령 집회 1주년을 맞아 '남태령 첫돌' 행사를 개최했다. 행사 참여자들이 '사발통문' 형식으로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 정초하
"남태령 이후 농성과 노숙 배운 우리"... '남태령 아스팔트 동지회' 출범
이날 주최 측은 남태령 집회 1주년을 맞아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남태령 집회 당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옛 트위터)에 올라왔던 게시글들을 모아 되짚는 코너와, 현장에서 인상 깊었던 10가지 장면을 선정해 농민들이 직접 당시의 이야기를 풀어보는 후일담 시간이 이어졌다. 남태령에서의 이야기를 담아 개봉을 앞둔 김현지 감독의 영화 <남태령>의 예고편이 재생되기도 했으며, 시민들에게는 낯선 농업 의제를 주제로 한 퀴즈 프로그램이 진행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프로그램 도중 '남태령에서 누구를 만났는지', '남태령 이후 삶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돌아가며 묻고 답했다. "농성과 노숙을 배웠다", "여기 계신 동지들을 만났다"는 답변이 이어질 때마다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엑스(X) 게시글을 되짚어보는 프로그램 도중 남태령 집회에서 노래 '남행열차'에 맞춰 춤을 추는 시민들과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의 영상이 나오자 객석에서는 "귀엽다"는 말과 함께 폭소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남태령 후일담을 농민들이 풀어주는 코너에서 농민들은 울음을 참아가며 남태령에서의 기억을 회상하기도 했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소속 오순이 농민은 "그날 지하철 막차가 끊길 시간이 됐는데도 자리를 뜨지 않는 시민들, 새벽 첫차가 들어오자 물밀듯이 쏟아지는 시민들을 보면서 이 싸움이 우리가 절대 질 수 없는 싸움이라는 걸 느꼈다"고 전했다.
정영이 전여농 회장 역시 눈물을 흘리며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광장을 채웠던 이들은 스스로를 사회적 약자라고 말하던 청년, 여성, 농민들이었고 우리가 왜 연대해야 하는지를 그 자리에서 함께 배웠다"며 "혐오와 불평등, 차별로 상징되는 현실 앞에서도 우리가 꿈꾸던 세상을 연대의 힘으로 끝내 만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자리였고 남태령의 정신을 그렇게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행사 말미에는 남태령 집회의 의의를 이어가는 연대 네트워크인 '남태령 아스팔트 동지회' 발족식을 진행했다. 아래는 '남태령 아스팔트 동지회'의 선언문이다.
| '남태령 아스팔트 동지회' 발족식 선언문 전문 |
우리는 기억한다.
2024년 12월 21일, 그리고 22일.
농민들과, 농민들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이
살을 에는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울고 웃던 동짓날 밤을.
사람들이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 나오던 역 출구들을.
차벽을 열고 서울 도심을 힘껏 달린 트랙터가 들녘으로 돌아갈 때까지 떼지 못한 그 눈길을.
남태령.
그곳은 평등이 우리의 몸을 통과한 자리였고,
돌봄과 환대가 그 중요성에 걸맞은 위상을 되찾았고,
민주주의가 제도 밖에서 다시 태어난 현장이었으며,
새로운 역사가 현재형으로 발생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그 순간을 우연한 사건으로 남기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그날을 기념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그날을 계속 살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평등을 구호로 소비하지 않는다.
평등은 서로를 동지로 부를 때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누군가의 고통을 구경만 하지 않고, 누군가의 투쟁을 상징으로 축소하지 않으며,
위기의 순간에 한편이 되어 함께 버티고 저항하는.
앞과 뒤, 위와 아래, 시작과 끝이 없는.
차오르고 기울길 반복하는 달과 파도의 변화무쌍함.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평등이고, 이것이 우리의 힘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기술로 축소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논밭에서, 강에서, 산에서, 바다에서, 온 생태계에서,
부엌에서, 책 속에서, 아스팔트 위에서, 우리의 마주치는 눈빛 사이에서 매번 새로 태어난다.
여성과 약자, 소수자의 몸, 농민, 저항과 돌봄의 시간.
보이지 않던 노동과 말해지지 않았던 감정은 이 사회를 지탱해 온 가장 오래된 정치다.
우리는 가장 오래된, 중요한 것들을 차별과 혐오로부터 지켜낼 것이다.
우리의 경험과 우리의 힘을 주변부로 밀어내는 사회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민주주의의 중심으로 다시 일으킬 것이다.
우리는 돌봄을 개인의 미덕이나 희생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돌봄은 연대가 유지되기 위한 필수조건, 투쟁이 지속되기 위한 인프라다.
우리는 지치지 않기 위해 서로를 돌보고, 재우고 깨운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 위해 함께 약해질 수 있는 자리를 만든다.
우리는 다양성을 관리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양성과 함께 산다.
다른 삶의 조건, 다른 언어, 다른 속도는
연대를 위협하는 위험이 아니라 사회를 확장시키고 결속시키는 가능성이며, 숨 쉴 틈새다.
여러 목소리가 함께 울리는 합창 속에서 우리는 화음으로 흐른다.
우리는 역사를 보관하지 않는다.
우리는 역사를 사용한다.
역사와, 아스팔트 위에 남은 발자국을 다음 목적지의 지도로 삼으며 나아간다.
우리의 경로는 다음 걸어갈 사람들을 위해 기록한다.
남태령은 다음 연대를 준비하는 기억이다.
끊임없이 퍼져나가는 동심원.
둥글게 둘러앉은 평등, 결의가 담긴 사발통문.
무수한 '남태령들'의 중첩된 해방공간.
파도처럼 나아가는 군중의 힘찬 목소리.
우리는 우리의 저력으로 결심했고 버텼고 일어섰고 나아간다.
천천히. 당당히. 드넓게. 유연하게.
2025.12.21. 통인동, 풍요와 상생의 공간 '합'에서 |

▲21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효자아파트에서 전봉준 투쟁단·남태령 책모임 등이 남태령 집회 1주년을 맞아 '남태령 첫돌' 행사를 개최했다. ⓒ 정초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