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21일 오전 부산 북구 SW·AI 교육거점센터에서 열린 'AI 디지털교과서 상설 전시회’에서 교원, 학생 등이 AI 디지털교과서를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질문조차 새삼스럽지 않지만, AI가 바꿀 세상을 당최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반복적인 단순노동의 경우 조만간 완벽하게 AI로 대체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글 쓰는 작가와 기자, 창의적 활동을 하는 예술가도 직업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분석한다. 전문직의 최고봉이라는 변호사와 의사조차 안심할 단계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AI가 몰고 올 사회 변화에 대한 초기의 핑크빛 전망은 시나브로 잿빛으로 변해가는 모양새다. AI가 무제한으로 학습하는 데이터에 대한 지식 재산권 문제로부터 불법적 활용과 관련 법 조항 미비 등의 한계가 국내를 넘어 전 세계가 고민하는 화두가 됐다. 산업을 혁신하는 '게임 체인저'가 아니라 인간의 지성과 사회적 윤리를 파괴하는 '흉기'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시선을 학교 교육으로 좁혀 보자. AI의 시대를 선도한다거나 맞춤형 인재를 양성한다는 등 대학의 홍보 문구에 AI는 이미 전가의 보도다. 언뜻 전공을 불문하고 커리큘럼과 교육의 목표를 넘어 건학 이념조차 AI로 대체되고 있는 느낌이다. AI를 내걸지 않고선 신입생 유치가 어렵고, AI가 아니고선 대학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과정'은 없고 '결과'만 있는 교육?
대학의 변화에 고등학교 또한 장단을 맞출 수밖에 없다. 지난 정부에서 국책 사업처럼 추진했던 디지털교과서 도입은 막대한 세금만 낭비한 채 사실상 실패로 끝났지만, 교육과정에서 AI 활용 교육은 나날이 강조되고 있다. 지역 교육청에서도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AI 활용과 관련된 다양한 연수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이수를 의무화하는 추세다.
학교에서 AI가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인 건 맞다. 수업 교재로 활용하는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거나 각종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의 작업에 큰 도움이 된다. 교과별 회의록을 준비하고 가정통신문을 학부모에게 보내는 일도 불과 몇 분이면 뚝딱 해치울 수 있다. 듣자니까,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일까지 AI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고 한다.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학교생활기록부도 AI의 손에 넘어갔다. 불과 한두 해 전까지만 해도 AI로 학교생활기록부를 쓰는 교사들을 향해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분위기였지만, 이젠 AI를 활용하지 않는 교사를 되레 무능하다고 혀를 끌끌 차는 상황이다. 아예 학교에서 예산을 책정해 상위 버전의 AI 프로그램을 구매해 쓰라고 권장할 정도다.
과거 스마트기기가 그랬듯, AI에 대한 아이들의 '감수성'과 '숙련도'는 늘 학교와 교사보다 한발 앞서 있다. AI 덕분에 개인별 과제물과 모둠별 활동 보고서는 그들에게 가장 쉬운 숙제가 됐다. 만약 그걸 기준으로 점수와 등급을 매긴다면, 아이들의 노력 여하가 아니라 각자 활용한 AI의 버전에 따라 나뉘게 될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이제 집에서 해오는 숙제는 모든 학교에서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모가 자녀의 숙제를 대신 해주는 게 문제가 됐는데, 그조차 옛말이 됐다. 교육적 견지에서 보면, 적어도 부모와 자녀가 숙제의 내용을 공유하기라도 했던 그때가 AI에게 모든 걸 맡기는 지금보다 더 나았던 듯도 싶다.
분명 AI로 인해 교사들의 업무 처리 속도는 빨라졌고, 아이들의 학교생활은 여유롭고 편해졌다. 그렇듯 '생산성'은 높아졌는데, 그걸 '교육력의 향상'으로 볼 수 있는지에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그만큼 교사들의 교육적 열정이 높아졌는지, 또 아이들이 지적, 윤리적으로 성숙해졌고 학교생활이 행복해졌는지 모두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른바 '생산성의 함정'이다. AI는 교육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는 탁월성을 발휘하지만, 그 '결과물'을 만들어내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선 무감각하다. 숙고와 판단, 협업과 성찰 등의 정서적 활동에 관한 한 AI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가 될 뿐이다. AI에 대한 과의존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인식을 확산시킬 우려가 크다.
모름지기 교육은 결과보다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 '결과만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은 적어도 교육에서는 통용될 수 없다. 과정을 무시하고 만들어진 결과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이대로 방치했다간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돌발상황에 직면했을 때, AI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좀비'가 될지도 모른다. 그저 기우이면 좋겠다.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AI 활용능력'이 아니다

▲지난 23일에 열었던 학교 축제의 모습. 강당에 전교생이 모여 서로의 끼와 재능을 발산하는 모습을 통해 교육의 본령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행사를 주관한 학생자치회에서 사전에 자발적으로 스마트폰을 수거하였다. ⓒ 서부원
어느새 스마트기기 안의 AI가 교실로 들어왔고, 아이들의 일상마저 지배해 가고 있다. 그들의 학교 밖 여가 생활까지도 AI가 좌지우지하는 형국이다.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교사를 찾아오는 경우는 아예 없다. 인터넷 포털과 유튜브를 검색하던 시절도 이미 지났다. 이제 모든 걸 AI에 묻고, AI의 답변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당장 학교 교육에 AI가 몰고 온 변화의 요체는 '단절'이다. 교사들도 아이들도 더는 서로 대화하고 토론하고 협력하지 않는다. 그들 중에 AI보다 더 똑똑하고 민첩하고, 게다가 친절하기까지 한 상대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교사의 교과협의회도, 아이들의 모둠활동도 껍데기만 남았다. 법적으로 필요한 서류가 있다면 AI에 맡기면 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교육 관료와 전문가들이 대책이랍시고 내놓는 건,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AI 활용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강화'. 단언컨대, 이를 실효적인 방안이라고 여기는 교사는 단 한 명도 없다. 어쩔 도리가 없다는 좌절감만 묻어나는 면피용 대책이라는 건 그들 스스로 잘 알 것이다.
AI 활용을 '고정 상수'로 두고 학교 교육을 설계하는 건 섣부르다. 지금 미래세대 아이들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건 지식 정보의 창의적 활용 능력이 아니라 타인과 소통하고 협력하며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는 역량이다. 사회적 윤리 의식을 고양할 소통과 협업 능력은 AI 활용 능력과 정비례해 향상되는 문제가 아니다.
우선 학교는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고 아이들끼리 어우러지며 즐거움을 만끽하는 '아날로그형' 학습과 체험 기회를 늘려야 한다. 지금 학교는 일과 중 스마트폰 사용 제한이 인권 침해라며 논쟁을 벌일 만큼 한가하지 않다. 아이들은 스마트폰 화면 대신 친구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생활해야 한다. 스마트폰만 손에 쥐면 교실이 적막강산으로 변하는 현실이 정상일 리는 없다.
요컨대, 대통령조차 "AI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강조하는 AI의 시대에 학교 교육의 역할은 재고돼야 한다. AI의 시대에 '맞춤형 인재' 육성을 한국형 AI를 개발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로 한정해선 곤란하다. 적어도 초중고 교육과정에서는 사회적 윤리 의식의 함양이 선행돼야 한다.
사족. 현행 2022 개정 교육과정의 6대 핵심 역량을 잠깐 소개한다. 자기 관리 역량과 정보 처리 역량, 창의적 사고 역량, 심미적 감성 역량, 협력적 소통 역량, 마지막으로 공동체 역량까지.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자기 주도적 인재를 양성한다는 취지다. 정녕 AI로 포박당한 학교 교육을 통해 이렇듯 '완벽한' 인재가 길러지리라 보는지 교육 관료와 정책 전문가들에게 묻고 싶다. 하나 마나 한 '말 잔치'는 그만둘 때도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