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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였던 지난 25일의 저녁 7시였다. 요즘은 오후 5시만 넘어도 주위가 금세 깜깜해지는 터라 주위는 이미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부천의 날씨는 꽤 매서웠다. 바람도 강했고, 날씨 애플리케이션에 표시된 체감온도는 영하 21도였다. 그날의 공기는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코끝이 얼얼해질 만큼 차가웠다.
저녁을 먹고 난 그릇을 정리하고 있는데,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올 사람이 없었기에 잠시 망설이다가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지난 23일, 문풍지를 붙여주었던 어느 집에서 나를 보며 "산타할아버지 같아요"라고 웃던 아이와 아이의 할머니가 서 있었다(관련 기사 :
말문이 턱, 겨울밤 '산타아줌마'가 된 사연).
할머니는 몸이 좋지 않아 제대로 인사도 못 한 채 빈손으로 돌려보내게 된 것이 마음에 걸렸다며 하얀 비닐봉지 하나를 내미셨다. 그 안에는 갓 튀겨낸 꽈배기 몇 개가 들어 있었다. 깜짝 놀라 추우니 어서 들어오시라고 했지만, 아이와 함께 얼른 돌아가야 한다며 고개를 가로 저으셨다. 아이는 내게 꾸벅 인사를 하더니,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날 내가 만난 산타

▲꽈배기저녁을 먹은 이후였지만 그럼에도 맛있게 먹었다. ⓒ 유수영
"안녕히 계세요. 아줌마. 아니, 산타할아버지."
그리고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은 채 뒤돌아섰다. 추운 날씨에 그대로 보내기가 마음에 걸려 팔을 붙잡으며 몇 번이나 들어오시라고 권했지만, 할머니는 한사코 괜찮다며 오히려 나를 집 안으로 밀어 넣듯 떠미셨다. 그러면서 짧게 이야기를 건네셨다.
"내가 올해로 일흔이에요. 손녀를 키우는 게 힘에 부칠 때도 많았는데 집 안으로 찬바람이 안 들어오니까, 몸이 좀 녹더라고. 그때서야 정신이 바짝 차려지지 뭐야."

▲아이에게 건넸던 인형통통한 볼을 달고 웃는 모습이 어딘가 아이와 닮아 있어 귀엽다. ⓒ 유수영
그 말을 들으니 점점 코끝이 찡해졌다.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내게 인사를 하고는 골목 끝으로 천천히 걸어갔고, 나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문 앞에 서서 바라봤다. 아이의 등에는 며칠 전 내가 건네준 인형이 매달려 있었다.
가방처럼 끈이 달려있었는데, 몹시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아이가 걸을 때마다 인형의 팔다리가 덩달아 흔들렸다. 그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이 보였다. 그 작은 등이 골목 쪽으로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이상하게도 그때의 찬바람은 그다지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이미 배가 부른 상태였지만, 봉지 안에서 꽈배기 두 개를 꺼냈다. 한 입 베어 무니 어릴 적 장날에 엄마가 사주던 꽈배기의 기억이 떠올랐다.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어느 고급 제과점의 빵이 이보다는 맛있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나를 산타할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날 저녁, 문 앞에 서 있던 모습은 오히려 할머니와 아이가 산타와 루돌프처럼 보였다. 누군가에게 받은 것을, 다시 건네기 위해 가장 추운 날 저녁에 빨개진 코를 가지고 길을 나선 사람들이었으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