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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 chadmadden on Unsplash

크리스마스에 교회를 떠난 친구가 있다. 존재 자체로 번뜩이는 고등학생 때였다. 내가 속한 세계는 일 년 중 가장 큰 축제 준비로 바빴다.

한 명이라도 그 축제에 더 데리고 오는 것에 혈안이 되었다. 그때는 그렇게 행동하는 것 이상으로 옳은 일이란 없었다. 소질이 있었나 무려 8명이나 되는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 데 성공했다.

당시 교회를 상징하는 물건 중 하나는 기다란 장의자였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토록 밀착해서 앉았던 것일까 싶다. 3명이 앉으면 적절한 거리가 나오고, 4명은 조금의 여백의 미가, 5명은 과분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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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이나 되는 친구들을 앞에 5명, 뒤에 나 포함 4명, 이렇게 장의자 두 개를 가득 채웠을 때의 뿌듯함은 치기 어린 마음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당시 나도 그렇고 내가 속해 있던 교회는 보수적이고, 근본적이었다. 성경의 맥락보다는 문자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 본질 자체보다는 본질적이라는 형용사 혹은 구호에 집착했다. 부르짖던 거룩이라 하는 것은 모 아니면 도여서 얼마나 날이 서 있었는지 모른다.

한참 성탄 행사가 무르익을 무렵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어떤 말을 시작했다. 성탄의 주인은 산타가 아니고 예수님이라는 맥락이었다. 설교 순서도 아니었으며, 기도회도 아니었는데, 산타에 대한 비판은 15분 이상 이어졌다. 참고로 사회자는 고등부 총무이자, 담임목사님의 아들이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예나 지금이나 빛을 증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란 어둠을 명시하는 일이었다. 딱히 큰 어둠이 아니어도, 어쩌면 그게 진짜 어둠이 아니어도, 뭐든 어둠으로 상징하는 순간 빛은 더 우렁차졌다.

그때는 그 말들에 동조했다. 틀린 말이 아니지 않는가. 성탄이라는 말 자체가 가르치듯 산타가 주인공인 양 사람들이 믿어 재끼는 것은 분명 잘못된 행보였다. 성탄의 의미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아지는 것이 옳았다.

찬물을 끼얹은 건지, 활활 타는 불을 던진 건지 헷갈리는 상태로 행사는 마무리되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돌아가면서 "너네 교회 참 특별하다"는 여론을 보였다. 그건 칭찬 이상의 것으로 해석되었다.

다만,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정주야, 나 궁금한 게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신다고 했잖아, 그래서 하나님의 그 사랑을 보여 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고, 그걸 기념하는 게 성탄절이고."

"응, 맞아."

"그럼 산타는 하나님이 사랑하시지 않아? 기독교에서 말하는 바에 따르면 산타도 하나님의 자녀 아니야? 심지어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는 상징적인 존재잖아. 근데 왜 교회에서는 산타를 저렇게 미워해?"

마음이 턱 하고 막혔다. 뚫린 건 입뿐이라 "그건 말이야 성탄의 원래 주인공이 예수님이신데, 그 자리를 산타가 가로챘으니 문제가 되는 거야" 이런 식으로 말했던 것 같다.

"그걸 가로챘다고 할 수 있는 걸까. 굳이 산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그런 의미는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것 같은데. 난 산타를 저렇게 미워하며 사랑을 말하는 기독교는 잘 모르겠어. 그건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 같아."

그 이후로 그 친구와는 멀어졌다. 아마 당시 나는 그 친구의 생각이 무척 잘못되었다고 믿었겠지. 하지만 돌고 돌아 20년이 지난 이 시절에 유난히 그 친구의 모습이 뚜렷하게 떠오른다.

"그건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 같아"

빛을 증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어둠을 지목하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리고 그 방식이 쉬운 만큼 자주 틀린 선택이라는 것도. 그날의 교회는 빛을 말했지만, 누군가는 밀려나야만 그 빛이 또렷해졌다. 사랑을 외치기 위해 사랑받지 못해도 괜찮은 존재가 필요했던 밤이었다.

성탄에 몸 둘 곳 없어 밤길을 헤매던 마리아와 요셉처럼, 선물을 담은 주머니를 멘 산타가 교회 밖으로 밀려나 있던 모습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수많은 십자가 불빛이 켜진 어두운 성탄의 밤, 어디에도 몸 둘 곳, 마음 둘 곳 없이 터덜터덜 걸어가던 뒷모습. 사랑을 말하던 장소에서 가장 쓸쓸해진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이, 이제 와서는 너무 선명하다.

그때 그 친구의 질문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그 질문이 시작된 장소에서 멀어졌지만, 대신 그 질문 속으로 들어와 살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는 잘 지내고 있을까. 나는 지금 이렇게 지내고 있다고, 그날 네 생각이 좋았다고, 아주 늦게나마 전해본다 .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데 성탄에 몸 둘곳 없어 밤길을 헤매던 마리아와 요셉처럼, 선물을 담은 주머니를 멘 산타가 교회 밖으로 밀려나 있던 모습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수많은 십자가 불빛이 켜진 어두운 성탄의 밤, 어디에도 몸 둘 곳, 마음 둘 곳 없이 터덜터덜 걸어가던 뒷모습. 사랑을 말하던 장소에서 가장 쓸쓸해진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이, 이제 와서는 너무 선명하다.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데성탄에 몸 둘곳 없어 밤길을 헤매던 마리아와 요셉처럼, 선물을 담은 주머니를 멘 산타가 교회 밖으로 밀려나 있던 모습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수많은 십자가 불빛이 켜진 어두운 성탄의 밤, 어디에도 몸 둘 곳, 마음 둘 곳 없이 터덜터덜 걸어가던 뒷모습. 사랑을 말하던 장소에서 가장 쓸쓸해진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이, 이제 와서는 너무 선명하다. ⓒ chatGPT로 생성한 이미지

#산타#성탄#크리스마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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