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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 darestaton on Unsplash
냉장고 정리를 했다.
계획된 일은 아니었다.
개수대에는 설거지하지 못한 그릇들이 가득 쌓여있었고, 그 위에 오래된 소스 통과 빈 용기들이 위태롭게 얹혀 있었다. 서로 기대어 간신히 버티고 있는 모습이 꼭 집 안의 어떤 관계 같았다. 살릴 수 있는 음식만이라도 먹을 수 있게 하려면 손질이 필요했다.
파프리카를 신문지에 싸서 밀폐 용기에 넣고, 새 그릇을 꺼내 닦았다. 이미 상한 파프리카는 음식물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종량제 봉투는 금세 부풀어 터질 듯했다.
막내에게 쓰레기를 버려달라고 했다.
"싫어."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 말 한마디에 몸의 힘이 빠졌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을 것이다.
아이는 그 한숨을 놓치지 않았다.
곧바로 나를 보며 자신을 싫어하느냐고 물었다. 사랑은 아이에게 표정과 말투로 판단되는 것이었다. 웃지 않으면, 다정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나이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사랑은 달콤한 말로만 전해지지 않는다고. 듣기 싫은 말이 때로는 사람을 살리는 약이 되기도 한다고.
"같이 사는데 나만 청소를 하고, 룸메이트는 누워서 꼼짝도 안 해. 그러면 화가 나지 않겠어?"
"함께 산다는 건 힘든 일을 나누는 거야."
"집에서 훈련하지 않으면 사회에서도 그렇게 살 확률이 높아져."
아이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을 자주 떠올린다.
아이의 모습 속에서, 함께 일하지 않았던 예전의 나를 본다. 몸을 움직여 수고하는 일을 피하고 말로 설명하는 데 익숙했던 나의 모습이다.
그래서 다짐한다. 더 말하기보다 더 움직이겠다고.지금 당장 바뀌지 않아도 기다리겠다고. 기도하겠다고.
집안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몸으로 익히는 훈련이다. 하기 싫다는 마음을 내려놓는 일, 그 작은 반복이 관계를 지탱한다.
냉장고를 정리하다가나는 '함께 산다는 것'의 무게를 다시 배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책이밥주식회사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