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 서부지법 폭동 사태 1년을 앞두고 서울서부지방법원 백서발간위원회는 12월 서부지법 1.19 폭동 사건 백서를 냈다. 백서발간위원회는 여러 장의 사진을 통해 1.19 서부지법 폭동 사태 당시 파괴된 건물 내·외부를 기록했다. ⓒ 서울서부지방법원 백서발간위원회
서울서부지방법원(서부지법) 백서발간위원회가 1.19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법원의 시선으로 기록한 '서울서부지방법원 1.19 폭동 사건 백서'를 발간했다. 백서발간위원회는 백서에서 1.19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1.19 폭동'이라고 명명했다.
백서에는 1.19 폭동 사건의 발생 경과, 피해 상황, 법원 및 관계 기관의 대응, 재판 진행 및 결과, 사건 발생 원인 및 재발 방지 대책 순으로 사건을 정리했다. 여기에 더해 폭동 사태로 재판에 넘겨진 전체 피고인 137명의 통계, 경찰과의 공조 과정에서의 한계, '조건부 구속영장 제도' 제언, 법원 구성원들의 소회도 실렸다.

▲서울서부지방법원 백서발간위원회가 12월 펴낸 서울서부지방법원 1.19 폭동 사건 백서. 백서 발간위원장 전보성 수석부장판사는 서문에서 "이 백서는 그날의 진상을 기록하고, 피해의 실상을 명확히 하여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의지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 유지영
전보성 수석부장판사(백서발간위원회 위원장) 외에 9명의 위원이 지난 8월 중순부터 백서 발간에 참여했다. 전 판사는 "백서는 그날의 진상을 기록하고, 피해의 실상을 명확히 하여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의지에서 출발했다"라며 "사건을 단죄하거나 과거를 고착하기 위한 문서가 아닌, 사법부가 위기 앞에서 어떻게 대응했고, 어떤 결단을 내렸으며, 앞으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냉정히 되돌아보는 과정을 객관적으로 기록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태업 서부지방법원장은 발간사에서 "우리 법원은 지난 1월 19일에 사법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폭동을 겪었다. 재판에 승복하지 못한 사람들에 의한 침탈과 위협이었고, 이는 참혹하고 끔찍한 파괴였다"라고 전했다.
1.19 서부지법 폭동 사태는 1월 19일 오전 3시경 전직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지지자들이 법원 청사 후문을 강제로 개방하고 법원에 난입한 사건이다. 이날 경내 진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일부 지지자들이 폭력을 행사해 다수의 경찰관이 부상을 입었고, 법원 시설물을 파손했다.
피해 금액은 6억 원... "손해배상 청구 예정"

▲1.19 서부지법 폭동 사태 1년을 앞두고 서울서부지방법원 백서발간위원회는 12월 서부지법 1.19 폭동 사건 백서를 냈다. 백서발간위원회는 여러 장의 사진을 통해 1.19 서부지법 폭동 사태 당시 파괴된 건물 내·외부를 기록했다. ⓒ 서울서부지방법원 백서발간위원회
백서에 따르면 오전 3시 윤석열 구속영장 발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그로부터 8분 뒤 일부 시위대가 서부지법 후문을 통해 경내에 침입해 청사 시설을 파괴하기 시작했고, 22분경 서부지법 본관 1층 당직실 유리창을 깨고 내부로 침입했다.
이어 당직실 내 CCTV, 서버, 컴퓨터 등을 파손하고 소화기를 뿌리며 건물 유리 출입문을 파손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당직실 내 일부 직원이 고립됐다. 3시 25분에는 유리 출입문을 파손해 1층 로비에 침입했고, 건물 내부에 남아있던 직원들은 옥상 등으로 긴급 대피했고, 법원보안관리대원 일부는 계단으로 침입하는 시위대와 대치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는 영장전담판사 사무실에 난입했다.
오전 4시 20분경에는 약 100명이 후문에 재진입해 쇠파이프 등으로 외벽 타일을 파손하고 주차된 오토바이로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경찰과 대치했다.
서부지법이 추산한 외벽, 창문 파손 등 시설물 피해 금액은 약 4억 7857만 원, CCTV, 컴퓨터 등 물품 피해 금액은 약 1억 4363만 원에 달한다. 피해 금액이 6억 원을 넘어가는 상황이기에 백서에서는 가해자들에 대한 형사 재판 결과,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민사상 손해 배상 청구로 법적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모든 기일 변경이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지는 않으나 1월 20일 이후 지정된 변론 기일 중 민사 사건 231건, 형사 사건 1건의 기일이 변경되는 여파도 발생했다.
당시 현장에 남아 있던 법원 직원은 총 25명으로, 윤석열 지지자들이 1층 로비에 진입한 직후 긴급히 대피해 직접적으로 신체상의 상해를 입은 직원은 없었다. 그러나 직원들의 정신적인 피해가 상당해 서부지법은 외상 후 스트레스 완화와 조직 안정을 위해 긴급심리지원 서비스를 실시했다. 사건 당일 근무 직원 14명을 포함해 지원 서비스 신청자 51명 전원이 상담을 받았다.
조희대 대법원장 폭동 사태 직후 간담회 발언도 공개

▲1.19 서부지법 폭동 사태 1년을 앞두고 서울서부지방법원 백서발간위원회는 12월 서부지법 1.19 폭동 사건 백서를 냈다. 백서발간위원회는 여러 장의 사진을 통해 1.19 서부지법 폭동 사태 당시 파괴된 건물 내·외부를 기록했다. ⓒ 서울서부지방법원 백서발간위원회

▲1.19 서부지법 폭동 사태 1년을 앞두고 서울서부지방법원 백서발간위원회는 12월 서부지법 1.19 폭동 사건 백서를 냈다. 백서발간위원회는 여러 장의 사진을 통해 1.19 서부지법 폭동 사태 당시 파괴된 건물 내·외부를 기록했다. ⓒ 서울서부지방법원 백서발간위원회
폭동 사태 3일 뒤인 1월 22일에 조희대 대법원장이 서부지법을 찾아 간담회를 진행한 바 있다. 당시에는 법원행정처를 통해 대법원장의 발언이 간단하게 공개됐으나 백서에는 네 문단에 걸쳐 대법원장의 발언을 싣는 등 법원 및 각계의 반응을 소개했다.
백서에 따르면 조희대 대법원장은 당시 "선진국으로 가느냐 또 어떤 후진국으로 가느냐라는 갈림길에서는 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폭력과 폭력으로 악순환 되면 결국 후진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를 통해 국민들도 절실히 느낄 것이고 절대 폭력은 안된다는 것을 국민에게 호소하여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이어 "우리가 법과 원칙이 무엇인지 국민들이 상식선에서 납득할 수 있게 스스로 노력하고 상식적인 판단이 나아갈 수 있도록 동료와 선후배 사이에 거리낌 없이 서로 격의 없이 토론하고 또 의견을 받아들이는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는 결의를 다지고 또 우리 구성원이 그렇게 할 충분한 자질과 능력이 있다는 걸 믿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필요한 조치나 필요한 예산 지원 얼마든지 하겠다. 언제든지 요청하시면 도와드리겠다. 다 같이 힘을 내어 보자"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전체 피고인 137명 중 20·
30이 54.7%... 경찰 공조에는 "한계 있었다" 토로

▲1.19 서부지법 폭동 사태 1년을 앞두고 서울서부지방법원 백서발간위원회는 12월 서부지법 1.19 폭동 사건 백서를 냈다. 백서발간위원회는 여러 장의 사진을 통해 1.19 서부지법 폭동 사태 당시 파괴된 건물 내·외부를 기록했다. ⓒ 서울서부지방법원 백서발간위원회
백서에서는 "재판이 시작되면서 1.19 폭동 사건이 있었던 당시 서부지법에 근무하지 않았던 판사들에게 폭동 사건을 배당한다는 원칙을 수립해 2025년 2월에 서부지법에 전입한 판사들이 해당 사건을 담당하게 됐다"는 점을 강조한다.
백서에는 재판을 받는 전체 피고인의 통계도 나온다. 폭동 사태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 전체 피고인은 137명(9월 24일 기준)으로 백서는 이 가운데 20~30대가 54.7%로 다수, 40~60대가 42%라고 밝힌다. 또한 무직이 27.7%(38명)이며, 남성이 89.7%(123명)로 다수라고 덧붙인다.
통계를 낸 9월 24일 기준으로 137명 가운데 94명에 대한 1심 판결이 선고됐다. 이들 중 벌금형이 2명, 징역형의 집행유예는 23명(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 12명으로 다수)이 받았다. 징역형 실형을 받은 이들은 69명으로, 그중 징역 1년이 17명, 징역 1년 6개월이 10명, 징역 2년이 9명이다. 징역 5년을 받은 피고인도 1명 있다.
백서는 1.19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두고 "사법부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사건"이라고 평가하면서, "야간에 다수가 벽돌, 유리병 등 위험한 물건을 투척하고 법원 건물을 파손한 후 내부까지 난입한 전례가 없었다. 따라서 기존 매뉴얼이나 경험을 통한 사전 대응이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도 "경찰과의 공조 과정상 돌발 상황에 대한 대응의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한다. 백서는 경찰이 ▲법원 후문을 차벽으로 완벽하게 차단하지 못해 시위대의 운집을 허용한 점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직전 및 직후 48개(2900여 명)→13개(780여 명) 부대로 축소한 점 ▲영장 발부 사실 공개가 임박한 때 근무자 교대를 실시한 점 ▲시위 격화 인지했으나 지휘 혼선 등으로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 등을 들어 한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또한 폭동 사태 이후 서부지법 내외부 CCTV 카메라 화소수가 낮아 (인물 등) 식별에 어려움이 있어서 고화질 카메라로 교체했고, 후문 및 담장 기능을 보완하고, 건물 내구성을 강화하는 등 법원 청사 시설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한편, 백서에서는 이 같은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고자 '조건부 구속영장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백서에서는 "현행 제도가 구속영장 발부 또는 기각의 이분법 구조만 존재해 이러한 구조 하에서는 사법적 판단에 대하여 격렬한 반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법원이 거주지 제한, 전자장치 부착, 보증금 납부, 특정인 접근 금지 등 일정 조건을 부과한 뒤 해당 조건을 이행하면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나 재판을 받게 하는 조건부 구속영장 제도의 도입 필요성을 검토해 볼 단계"라고 제안한다.
또 "고위 인사·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의 경우, 영장실질심사 결과 발표 시 경찰 등 다른 기관과 사전 협의 절차의 구축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법원 구성원이 쓴 '그날'의 고백도 실려

▲1.19 서부지법 폭동 사태 1년을 앞두고 서울서부지방법원 백서발간위원회는 12월 서부지법 1.19 폭동 사건 백서를 냈다. 백서발간위원회는 여러 장의 사진을 통해 1.19 서부지법 폭동 사태 당시 파괴된 건물 내·외부를 기록했다. ⓒ 서울서부지방법원 백서발간위원회
백서에서 단연 눈에 띄는 부분은 법원 구성원들의 소회를 담은 '부록'이다. 백서에 '그날'의 트라우마를 호소하면서도, 제자리를 찾아가는 법원의 모습에 안도하는 구성원 다수의 담담한 고백이 실렸다.
법원보안관리대의 한 주무관은 "(무단 점거자들을 현장 체포하는) 과정에서 재킷은 버려야 할 정도로 찢어졌고, 손에서는 피가 났고, 밖에서는 막대기와 여러 물품들까지 날아왔다. 또한 체포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도주한 10대 남학생이 다시 잡히면서 울부짖는 모습을 보고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싶었다"라고 전했다.
총무과장은 "청사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무거운 죄책감으로 남았다. 조금 더 대비했더라면, 조금 더 침착했더라면, 내가 앞장서서 시위대 앞을 가로막았더라면 달라졌을까' 하는 자책은 오랜 시간 동안 나를 괴롭혔다"라면서 "사건 직후 곧바로 현장 복구와 법원의 정상화, 무너진 조직을 일상으로 되돌리는 일은 내 스스로의 죄책감과 불안을 마주하지 않기 위한 버팀목이었다. 절망 같은 현장에서 끝까지 역할을 다한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라고 전했다.
수석부장판사 또한 "참사 현장을 수습하면서 당장 내일의 재판은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무슨 얼굴로 당사자를 보아야 할지 걱정이 앞섰지만 재판은 단 하루도 멈추지 않았다"라며 "재판의 연속성은 단순한 절차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법원이 끝내 무너지지 않았음을, 대한민국이 정의의 흐름을 끊지 않고 지켜냈음을 증명하는 일이었다"라고 밝혔다.
사건 이후 구성원들에게는 트라우마가 남았다. 법원보안관리대 주무관은 "서부폭동사건 직후 후각과 청각이 예민해졌다. 실패한 보안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라고, 종합민원실 행정관은 "다음날 출근하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접수를 계속 보면서도 내 앞의 민원인이 사실은 업무를 보러 온 사람이 아니라 우리 법원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어서 나에게 해코지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이 계속됐다"라고 고백했다.
한편, 총무과 재무행정관은 "수년 동안 공들여 가꿔온 공간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모습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 큰 고통이었다"라고 하면서도 "하나하나 복구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조금씩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법원을 보며 내 일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일을 겪으며 내가 맡은 일이 단순히 물품과 시설을 관리하는 일이 아니라 법원이라는 공적 공간을 지탱하는 중요한 밑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라고 했다.
미화팀장 공무관 또한 "갑작스러운 소요로 어지럽혀진 현장을 정리하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우리의 손길로 질서와 청결을 되찾는 데 큰 보람을 느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