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 mclee on Unsplash
모든 국민은 헌법이 보장하는 바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가진다. 공무원이나 16세 미만 미성년자 등 일부를 제외하면 정당에 가입해 활동할 자유도 보장된다. 학교를 다니는 청소년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학교 안팎에서 정치적 발언을 할 자유가 있고,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선거운동도 가능하다. 그러나 학생의 정치적 자유는 종종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이름으로 침해되곤 한다.
<토끼풀>은 최근 서울 A고등학교에서 교내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학생생활규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학교 및 공적 교육활동 기관' 내에선 학생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개정에 학생의 정치적 자유가 과도하게 제한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더불어, 1월 서울시교육청이 실시한 '교내 정치활동 금지 규정 삭제' 조치에 반대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치활동을 일괄적으로 금지할 것이 아니라, 민주적 절차를 통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A학교는 최근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학생생활규정 재개정 제안'이란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그 내용은 휴대폰 수거, 학생회/학급 임원 출마 자격 완화, 학생 정치활동 제한 등 세 가지였다. 그 중 '정치활동 금지' 조항엔 "학교 및 공적 교육활동 공간"에서 "온라인/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공직선거법에 준하여" 정치활동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공직선거법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명시할 뿐, 청소년의 정치활동을 제약하지는 않고 있기에 무엇이 "공직선거법에 준하여" 금지되는 행위인지는 알 수 없다. 만약 학교측이 공무원의 정치 중립 의무를 학생에게까지 확대 적용할 경우, 단순히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징계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또 학생회나 동아리 차원의 시국선언이나 입장 표명, 이에 대한 홍보도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교내 정치활동 금지 추진에 학생들 사이에서도 반발이 나오고 있다. 학생의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어서다. 한 학생은 <토끼풀>과의 인터뷰에서 "학생 개인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을 존중해주면 좋겠다"며 "대한민국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가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탄압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는 이를 거부할 권리가 없다"며 "(표현의 자유 보장을) 거부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반헌법적 행위"라며 교칙 개정 시도를 비판했다.
익명을 요청한 또 다른 학생은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방향이 아닌, 학생들이 자유로운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교칙을 개정해야 한다"며 "학생의 기본권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청소년 시기 정치적 무관심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부 폭력적이거나 극단적인 정당에 대한 선동이 이루어질 수 있어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면서도 "토론 및 의견 표출은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학생생활규정 개정 설문조사는 종료된 상태이다. 통상적으로 학생생활규정의 개정은 학교운영위원회 심의와 학교장 결재를 거쳐 확정된다. 해당 개정안을 안건으로 한 학교운영위원회 소집 공고는 아직 올라오지 않았다.
학교 내 정치활동 금지 시도가 우려스러운 이유
이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작년 12월 비상계엄 당시, 서울 은평구에 소재한 예일여고에서 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계엄을 비판하는 시국선언문을 SNS에 게재했다가 학교로부터 삭제를 요구받은 바 있다. 당시 예일여고의 학생생활규정에는 '정치 관여 행위를 할 경우 특별교육 이수, 출석정지, 퇴학 처분이 가능하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해당 사건이 SNS에서 논란이 되자,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1월 서울 소재 364개 고등학교의 학생생활규정을 전수조사해 정치활동 금지 조항을 삭제 조치했다. 정근식 서울교육감은 "학생들도 우리 사회의 시민으로서 투표할 권리와 참정권을 누려야 한다"며 "이를 통해 실천하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A학교의 정치활동 금지 교칙 개정 움직임은 위와 같은 교육청의 청소년 정치참여 보장 방침에 반대된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크다. 청소년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학교에서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것은 학생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제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이 정치적/사회적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학교공간에서 정치와 민주주의를 접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학교 안에서 정치활동을 제한없이 허용할 시 청소년이 일부 극단적인 정치적 주장에 휩쓸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 역시 존재한다. 그러나, 아무리 학교에서 정치적 발언과 활동을 통제한다고 해도, 이미 청소년들은 SNS 등 인터넷 공간을 통해 수많은 정치적 사상에 노출되고 있다. 개중에는 '윤 어게인' 등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만약 우리 사회가 청소년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을 권장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청소년들이 이미 SNS를 통해 극단적 사상에 노출되고 있다면, 정치활동에 대한 일괄적인 금지가 그리 좋은 방향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토론과 합의를 거쳐, 어디까지 정당한 정치활동으로써 허용되어야 하는지, 그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편, 해당 고등학교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에 "해당 조항은 학생의 정치활동 허용의 방향을 찾기 위해 우리 학교 학생생활규정 제·개정위원회가 제안한 내용 그대로 학생과 학부모에게 의견을 물은 것"이라면서 "학교가 학생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려는 게 아니라 학생이 사적 공간에서 정치활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차원에서 규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토끼풀에도 실립니다. 토끼풀은 은평구 청소년들이 직접 만드는 독립언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