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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환개인전
김주환개인전 ⓒ 달리아

새해가 밝았다. 새롭게 떠오른 태양 아래에서 지난 해를 돌아본다. 분명 며칠 전인데 아득하게 느껴진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다시는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강을 건너온 것만 같다. '연말과 새해, 밤과 낮, 어제와 오늘을 나누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품고 2025년의 마지막 날, 전시를 보러 갔다.

전시의 주제는 '바르도(Bardo) 두 집 사이'. 바르도란 '틈새(둘 사이)'라는 뜻의 티벳어이다. 파드마삼바바의 <티벳 사자의 서>라는 책에서 자세히 설명되는 바르도는 죽음과 환생 사이에서 인간의 영혼이 49일동안 머무는 중간계를 뜻하며, 중음(中陰)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두 개의 방처럼 이어진 두 공간의 한 편에는 나뭇가지와 숯, 다른 한 편에는 하얀색 건축물 같은 것이 눈에 들어 온다.

마치 산에서 내려오는 강줄기처럼 공중에 매달려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뻗어진 나뭇가지와 새까맣게 그을린 숯의 형상이, 세월이라는 강 속의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시장 한 벽면에는 가지치기를 한 나무들의 사진들이 여러 장 붙어있었다.

사진의 의미에 대해 작가님께 여쭈어봤더니 사람들의 기준과 편의로 잘려나간 나무를 보고 침대에 맞춰 몸을 자르는 프로크루스테스를 떠올리셨다고 했다. 그렇게 잔인하게 잘렸음에도 다시 새 가지를 뻗어가는 모습에서는 잘린 목에서 더 많은 머리를 만들어내는 히드라의 생명력을 느끼기도 하셨다고 했다.

 김주환 개인전
김주환 개인전 ⓒ 달리아

그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안쪽에 있는 방으로 건너갔더니, 마치 눈처럼 새하얀 구조물이 세워져 있었고, 한쪽에는 그 구조물이 허물어진 형태의 작업물이 있었다. 작은 티비 화면에서는 구조물이 세워졌다 무너졌다 하는 영상이 반복적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그레고리 성가가 틀어져 있어서인지 왠지 성스러운 성당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실제로 고대의 성당 건축 양식처럼 지붕이 뾰족하게 솟은 하얀 구조물 안으로 들어가 볼 수도 있었는데, 한 명이 겨우 다닐 수 있는 공간은 마치 다른 차원으로 가는 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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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보니 그것은 며칠 전에도 시켜 먹었던 피자 박스에 꽂혀있던 피자 세이버로 만들어진 것이라 더욱 놀라웠다. 피자가 흐트러지지 않게 고정시키는 물건이기도 하고,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품이기도 했다. 공간 한쪽에 견고하게 세워진 피자 세이버는 마주 보는 공간에서 마치 파도에 부서진 모래성처럼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마치 언젠가 흩어질 우리의 몸처럼, 삶처럼.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사물에 영감을 받아 형태를 만들었다가 무너지고 사라지는 모습에서 우리의 삶과 죽음을 떠올린 작가의 통찰이 놀라웠다. 그래서 자꾸만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함께 전시장에 따라간 아이는 작가님께 허락을 받고, 마치 장난감을 만지듯 세이버로 기차도 만들었다가 부쉈다가 하며 전시를 즐겼다.

 김주환 개인전
김주환 개인전 ⓒ 달리아

마치 백사장에서 모래 장난을 하는 듯한 아이의 뒷모습에서 '나는 진리의 바다 앞에서 조약돌이나 조개껍데기를 찾으며 노는 어린아이'라던 뉴턴의 비유가 더욱 와닿았다.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신비 앞에서, 그 너머의 진리 앞에서 우리는 그저 작디 작은 어린 아이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전시장을 나오는데, 전시장의 두 공간 사이에 붙어있는 글귀가 정신을 번쩍 일깨운다.

"죽음이란 꿈에서 깨어남이다. 사람들은 삶이라고 하는 긴 꿈을 꾼다. 꿈의 끝자락에서 죽음을 통해 그 꿈에서 깨어난다."

삶이 한 바탕 꿈과 같다는 것은 장자의 호접몽이나 구운몽 설화 등 여러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비유이다. 성경 구절에도 언제 올지 모르는 끝을 대비하여 항상 '깨어 있으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되고, 강조된다. 전시장을 나서서 문을 여니 바로 전에 본 것조차 모두 꿈만 같이 아련해진다. 모인 것은 흩어지고, 쌓인 것은 무너지고, 만나면 헤어지고, 태어난 것은 죽을 수 밖에 없다는 필연이 겨울의 찬 바람처럼 정신을 번쩍 깨운다.

 김주환개인전
김주환개인전 ⓒ 달리아

'이 삶이 꿈이라면 가능한 좋은 꿈을 꿀 수 있기를. 죽음 앞에서 후회 없는 삶을 살았노라 회상하며, 미련 없이 떠날 수 있기를.'

묵은 과거를 떠나보내고 새로 시작되는 한 해로 몸을 돌려 서서 기도를 한다. 잠시 이 세상에 머물렀다 가는 하루살이와도 같은 짧은 삶이나마, 만나는 모든 이들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길 바라며. '깨어있다'는 것의 의미가 내겐 '언젠가 사라질 것들을 최선을 다해 사랑하라'고 해석되기에.

전시 정보
작가 : 김주환(Kim Juhwan 金周奐)
일정 : 2025. 12. 12 ~ 2026. 01. 10
관람시간 : 10:00 ~ 18:00(월요일 휴관)
장소 : 금호미술관(KUMHO MUSEUM OF ART) 2층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18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SNS와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김주환개인전#금호미술관#김주환작가#바르도#BAR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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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dalia35) 내방

일상예술가로 살아가며 교육, 예술, 심리에 관한 기사를 씁니다. @school_d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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