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문화원 부설 용인학연구소(소장 우상표)는 지난해 12월 23일, 용인특례시 문화예술원에서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처인성과 처인성문화제, 지속가능 발전 전략'을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대몽항쟁의 상징적 유적인 처인성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2032년 맞이할 처인성 승첩 800주년을 준비하며 처인성문화제의 발전 방향과 교육적 활용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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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학술세미나에는 이상일 용인특례시장, 최영철 용인문화원장 외에도 남기화 처인성기념사업회 전 회장, 현태주 용인불교신도회장, 이동섭 전 국회의원, 현근택 전 수원부시장 등 관련 기관단체 인사와 정치인들도 참석해 깊은 관심과 함께 의견을 모으는 자리가 됐다.
용인 처인성은 13세기 고려가 세계 최강의 몽골군을 격퇴한 항몽사의 결정적 현장이자, 지역 민과 승려가 주도한 드문 승전의 기억을 간직한 공간이다. 용인문화원 부설 용인학연구소가 23일 개최한 학술세미나 '처인성과 처인성문화제, 지속가능 발전 전략」은 이 역사적 자산을 오늘의 시점에서 어떻게 재해석하고, 미래 세대와 공유할 것인지를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자리였다.
주제 발표에 나선 김성환 전 경기도박물관장은 처인성승첩의 의미를 단순한 '지방 전투의 승리'가 아닌, 고려-몽골 전쟁사 전체의 흐름을 바꾼 사건으로 재정의했다. 1232년 처인성 전투에서 몽골군 총사령관 살리타이가 전사한 것은 몽골의 대고려 전략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고, 이후 전쟁과 외교의 국면 자체를 흔들었다는 점에서 세계사적 함의를 지닌다는 설명이다.
특히 그는 처인성이 흔히 말하는 교통·군사 요충지가 아니었음에도 승첩이 가능했다는 점에 주목하며, '전략적 요지'라는 관성적 해석을 재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어진 발표에서는 처인성 정비 사업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향후 활용 방향이 다뤄졌다. 김대순 용인특례시 학예연구사는 지금까지 성곽 정비와 사적 관리가 일정 성과를 거두었으나, 공간의 역사적 맥락과 서사가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단순한 유적 보존을 넘어, 시민과 방문객이 처인성의 의미를 체감할 수 있는 해설 체계와 콘텐츠 확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상혜 박사는 교과서·교육·대중 인식 속에서 처인성이 어떻게 다뤄져 왔는지를 짚으며, 처인성은 '김윤후 개인의 영웅담'이나 '항몽 상징'에 머무르기보다, 부곡민과 승려, 지역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낸 집단적 역사로 조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향후 처인성문화제가 단순 재현형 행사를 넘어, 참여와 공감의 역사문화 축제로 진화해야 할 방향성을 시사한다.
강진갑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이 좌장을 맡아 진행한 종합토론에서는 학계, 문화기획자, 지역 주민들이 참여해 처인성문화제의 지속가능성을 놓고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2032년 '처인성승첩 800주년'을 중장기 목표로 삼아 학술·교육·관광·지역경제를 연계하는 전략적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 자리에서 홍순석 강남대 명예교수는 용인시 주도로 진행됐던 용인지명 600주년 기념사업의 실패 사례를 들며 "다가올 처인승첩 800주년은 용인정체성 재정립과 처인성 국가지정유산이라는 실질적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추가적인 학술적 접근이 요구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세미나는 처인성을 과거의 기념비가 아닌, 현재와 미래를 잇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 전환하기 위한 출발점이었다. 항몽의 기억을 어떻게 오늘의 시민적 가치와 연결할 것인가. 처인성의 질문은 이제 용인의 문화정책과 지역 정체성 전반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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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별 발표와 토론 요지
[제1주제] 처인성과 처인승첩의 역사적 의미와 계승 방향
"처인성 승첩, 단순 전투 넘어 세계사적 전략의 분기점"
김성환 관장은 처인성 승첩을 13세기 고려와 몽골 관계의 거시적 관점에서 재구성하며 그 역사적 의미를 설파했다. 발표에 따르면, 1231년 고려를 침공한 몽골 장수 살리타이는 단순한 지휘관이 아니라 몽골 황제로부터 고려 원정의 전권을 위임받은 '권황제'였다. 그는 고려의 북변을 도륙하며 항복을 요구했고, 고려 조정은 그의 호감을 사기 위해 가족들에게까지 선물을 보내며 안절부절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였다.
1232년 8월, 무신집정자 최우의 강화 천도에 분노한 살리타이는 2차 침입을 감행했다. 그는 광주성을 2개월간 공격했으나 이세화 부사의 강력한 저항에 막혀 남하했고, 이때 군창이 있던 전략적 요충지이자 피난처인 처인성에 주목했다. 12월 중순, 처인부곡민과 승려 김윤후를 중심으로 한 저항군과 전투를 벌이던 살리타이가 유시에 맞아 사살되면서 몽골군은 물러났고, 이는 고려 전쟁사뿐만 아니라 몽골 제국 전체에 충격을 주었다.
발표자는 이 승첩이 단지 한 차례의 전투 승리가 아니라, 몽골의 대고려 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하게 만든 사건임을 강조했다. 몽골은 이 패배 이후 서역 및 금나라 정벌에 집중하게 되었고, 1235년에야 3차 침입을 재개할 수 있었다. 고려로서도 강화도 항전 전략을 재정비할 결정적 시간을 벌게 된 것이다. 또한, 연구사적으로 처인성이 단순히 '교통 요충지'였다는 기존 설을 비판하며, 오히려 주 역로에서 비껴 있어 백성들이 숨어들기 좋았던 지리적 특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 요지 : 조성운 소장은 '처인성 승첩'이라는 용어가 교과서나 백과사전에서 '전투'로 통용되는 점을 언급하며, 승리의 가치를 강조하는 용어 선택에 대한 학술적 위상 정립을 질문했다. 특히 전쟁기념관 등에 소장된 민족기록화가 고증 없이 상상력에 의존해 몽골 기마병의 성곽 공격 장면을 묘사하는 등 관람객에게 잘못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처인성 전투를 의병사적 관점에서 다룰 때, 의병의 범주를 명확히 구체화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제2주제] 처인성 정비사업 성과와 미래지향적 기념방안
"800년의 기억과 '용인정신', 시민이 생산하는 지속가능 기념 전략"
김대순 학예사는 처인성 정비사업의 성과와 2032년 승첩 800주년을 위한 미래지향적 방안을 발표했다. 처인성은 1977년 경기도 기념물 지정 이후 초기에는 외형 복원 위주로 관리됐으나, 2017년부터 본격적인 '처인성 역사공원 조성사업'을 통해 탐방로와 역사교육관이 건립됐다. 특히 2022년 개관한 처인성역사교육관은 국내 최초로 기둥 없는 14m 공간을 한옥 신기술로 구현해 건축학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발표자는 최근 발굴조사에서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구가 확인됐으며, 특히 군수물자 저장 창고로 추정되는 건물지와 저장 구덩이가 발견돼 처인성의 군사적 기능이 증명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800주년 기념사업에 대해, 단순한 일회성 행사가 아닌 시민들이 '기억의 공동 생산자'로 참여하는 '우리 모두의 승리'라는 가치 아래 '용인정신'을 정립할 것을 제안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시민 의견을 수렴하는 '800인이 만드는 처인성' 라운드테이블, 전국 대몽항전지 8개소를 잇는 성화 봉송 퍼포먼스, 처인성 멤버스 모집 등을 제안했다. 또 동상 건립과 같은 과거의 기념 방식은 경관을 해치고 사고를 고착화할 우려가 있으므로, 현대적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기념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처인성 인근의 살리타 전사지인 사장터와 처인현 관아터를 잇는 역사문화경관 보존의 시급성을 역설했다.
토론 요지 : 권오탁 교수는 처인성 승첩이 세계 제국 몽골의 총사령관을 사살한 전무후무한 기록임에도 시민들의 인식이 상식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아쉬워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보와 지식을 체계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가칭 '처인성박물관'이나 '처인성기념관' 설립의 실현 가능성을 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성공적인 800주년 행사를 위해 관과 민이 유기적으로 협조하는 '기념행사준비위원회' 구성이 시급하며, 전문 학예 인력이 주도적으로 조직을 이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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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주제] 다각적 접근을 통한 처인성 이해하기
"국가유산 교육의 새로운 모델, 다각적 접근으로 키우는 '고급 답사객'"
박상혜 박사는 처인성을 다각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통합 교육 방안을 제시했다. 발표자는 국가유산 교육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수준(초급)을 넘어, 사실적·상상적·심미적·맥락적·체험적 접근의 5가지 방향에서 총체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학습자를 유물의 가치를 입체적으로 인식하는 '고급 답사객'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모델이다.
역사교육관 내 실감 영상과 키오스크 자료는 사실적 이해를 돕고, 김윤후와 부곡민의 입장이 되어보는 활동은 상상적 이해(감정이입)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출토된 연화문 기와와 철제 대도의 미적 요소를 찾는 활동은 심미적 이해로 연결되며, 이를 응용한 에코백 제작이나 찰흙 기와 만들기 등의 구체적인 교수학습 모델이 제시됐다. 발표자는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5단계 학습지 모델을 제안하며, 처인성 답사가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스스로 구성하는 체험적 이해의 핵심임을 강조했다.
토론 요지 : 윤일경 전 이천교육장은 발표자가 제시한 다각적 접근법을 '처인성문화제'라는 더 넓은 광장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재 문화제가 개별 체험 위주로 흐르는 한계를 지적하며, 방문객에게 '처인성 여권'을 배부해 축제 전체를 하나의 역사적 서사로 엮어주는 학습 경로 설계를 제안했다. 또 시민들이 몽골군 남하부터 승리까지의 과정을 직접 재현하는 '시민 주도형 퍼레이드'를 통해, 시민을 단순 관람객에서 역사적 정체성의 생산자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