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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의 추억>이라는 장편소설을 냈어."

엊그제 새해 인사를 담은 카카오톡 한 통이 왔다. 종이신문 기자 선배가 "새해 소원 성취를 바란다"며 출판사 서평(청어출판사)과 책 표지를 함께 보내왔다.

 전직 중앙일간지 사회부 기자가 출간한 장편소설 '계엄의 추억'.
전직 중앙일간지 사회부 기자가 출간한 장편소설 '계엄의 추억'. ⓒ 신향식

계엄. 그 단어가 장편소설의 제목으로, 그것도 기자 선배의 이름과 함께 다시 등장한 것이다. 바로 그 이튿날(2일) 저녁, 서울 서초구 방배동 이수역의 한 삼겹살집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불판 위에서 고기가 익는 소리와 연기가 천천히 피어올랐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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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굳이 따지자면 '진보'라기보다는 '보수' 쪽에 가까운 분인데, 갑자기 왜 계엄을 소재로 장편소설을 쓰신 거예요?"

이어서 "혹시 군 복무 시절에 계엄군이셨어요?"라는 질문을 던지려는 순간, 묘하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질문이 지나치게 날카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그때,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은 불판 위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짧고 묵직했다.

"나, 계엄군 출신이야."

봉인된 기억 깨어난 12월 3일

김동철 작가는 <계엄의 추억>이 시작된 순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3일이었어. 집에서 트로트 가수들 공연을 방송으로 보고 있었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런데 갑자기 화면이 바뀌더니 계엄 선포 자막이 떴어."

그는 그 순간을 "잠자고 있던 기억의 지층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즐거운 음악과 환한 조명이 흐르던 화면 위로 '계엄'이라는 단어가 끼어들자, 시간은 순식간에 46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국회의사당 위를 선회하는 헬리콥터, 군화 소리, 몸싸움, 국회의원들의 월담, 통제된 거리, 명령서에 적힌 문장들.... 몸이 먼저 반응하더라고. 그때 느꼈던 공포와 긴장이 그대로 올라왔어."

그날 밤 이후 그는 일상으로 돌아가기 어려웠다. 계엄의 기억에 사로잡힌 그는 자신을 두고 "기억의 인질로 잡힌 상태"라고 표현했다. <계엄의 추억>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섣달그믐의 추위와 봄의 꽃, 가마솥 같은 여름을 지나 만추에 이르기까지 1년 동안 집필에 매달렸다. 마침내 12·3 계엄 1주년을 즈음해 원고를 세상에 내놓았다.

"1979년, 나는 명령을 받은 계엄군이었다"

김 작가는 1979년 부마항쟁 당시 부산 지역에 투입된 계엄군이었다. 도시는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명령은 단순하고 거칠었다.

"그때는 질문하지 않는 법을 배운 상태였어. 군인은 명령을 수행하는 존재니까. 통제, 연행, 봉쇄 같은 단어들이 일상이었지."

그러나 현실은 교본과 달랐다. 거리에서 붙잡힌 사람들은 무장한 적이 아니라 대학생과 시민들이었다. 그들의 눈빛은 적의적이 아니라,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인 평범한 젊은이의 것이었다. 그는 그 시기를 "질서라는 이름의 폭력이 개인에게 덮쳐오던 시간"이라고 회상했다.

그의 기억에서 가장 깊게 남은 장면은 부산 광안리해수욕장의 밤이다.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붙잡힌 대학생들이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 김 작가는 그들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그들이 범죄자도, 간첩도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또래였어. 시대가 조금 달랐을 뿐이지."

명령은 분명했다. 감시, 이탈 방지. 그러나 그의 마음은 계속 흔들렸다. 명령과 양심이 줄다리기를 했다. 결국 그는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이용해 그들 중 7명을 몰래 풀어주었다. 아무도 모르게, 당시 그는 그 사실을 일기장에 조심스럽게 적어 두었다.

"그날 밤은 아직도 꿈에 나와."

이 사건은 김 작가가 평생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개인적 기억이었다. 그는 그것을 "빼앗겼던 일기장을 다시 돌려받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계엄의 추억>에서 이 장면은 극화돼 등장한다. 어둠, 침묵, 선택. 소설의 가장 강렬한 장면 중 하나다.

사회부 기자 되어 '박종철 고문치사' 취재

김 작가는 "광주에는 투입되지 않았다"면서도 "계엄은 한 번 발동되면 어디까지 번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군 복무 이후 그는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가 됐다. 사회부 4년 차 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터졌다. 선배인 모 기자의 단신 특종을 중심으로 사회부 기자 30명 가운데 20명이 대거 투입됐다. 김 작가 역시 사건의 전말을 좇았다. 경찰서와 검찰청, 법원을 오가며 그는 권력이 어떻게 진실을 숨기고, 언론이 그것을 어떻게 파고드는지를 몸으로 배웠다.

약 5년간의 사회부 기자 생활은 <계엄의 추억>의 또 다른 뿌리다. 소설 속에는 그 시절의 취재 현장이 간접적으로 등장한다. 권력의 언어, 법의 허점, 침묵을 강요하는 구조가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김 작가는 실제 사건과 허구의 인물을 교차 배치했다. 현실과 소설의 경계는 일부러 흐리게 설계했다. 독자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인가"를 스스로 고민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12·3 계엄, 분명히 반대...민주주의는 유리컵 같아"

김 작가는 12·3 계엄에 관해 단호했다. 그는 "그 계엄에 반대한다"며 "민주주의는 튼튼해 보이지만 사실 유리컵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계엄의 추억>을 과거를 고발하는 소설로만 읽어서는 곤란해. 이 소설은 특정 정권이나 인물을 겨냥한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 한 사회가 얼마나 쉽게 '비상'이라는 이름 아래 정상성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를 묻는 이야기지. 민주주의가 느슨해지는 순간 언제든 '계엄'이 다시 호출될 수 있어."

<계엄의 추억>은 한 계엄군 출신의 고백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지나간 시대의 기록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느슨해지는 순간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는 '계엄' 앞에서 개인의 선택과 기억이 사회를 지키는 마지막 방파제임을 묻는 장편소설로 보인다.

[관련기사 : 계엄 사태 1년 만에 나온 장편소설 '계엄의 추억' 출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뷰365에도 실립니다.


계엄의 추억

김동철 (지은이), 청어(2026)


#계엄의#계엄의추억#계엄#김동철#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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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향식 (shin1) 내방

기자 출신 글쓰기 전문가. 스포츠조선에서 체육부 기자 역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등에 글을 씀. 경희대, 경인교대, 한성대, 서울시립대, 인덕대 등서 강의.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 받은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 연구'가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게재.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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