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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정 씨의 자원봉사 활동. 이씨가 무료 급식 배달한 도시락을 갖고 돌아와 뒷정리를 하고 있다. ⓒ 이돈삼
이언정(57)씨의 아침은 이른 새벽 시작된다. 봄과 여름, 가을은 물론 어둠이 걷히기 전인 겨울에도 매한가지다. 6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집을 나가 광양YWCA 무료급식소로 향한다. 그가 사는 집에서 무료급식소까지는 자동차로 30여 분 걸린다.
이씨는 무료급식소에 도착하자마자 쌓인 식재료를 다듬는다. 조리와 배식도 한다. 무려 100명 분 넘는 분량이다. 혼자 사는 어르신을 직접 찾아다니며 도시락도 배달한다. 오후에는 장애인복지관과 미술관 봉사, 청소년 보호활동, 환경운동 등을 이어간다. 10년 넘게 이어온 일상이다.
이씨의 봉사 영역도 차츰 넓혀졌다. 몸이 불편한 이들의 머리를 감겨주고, 집안 청소를 돕고, 반찬을 만들거나 김장 봉사에도 참여했다. 이씨는 중마장애인복지관에서 발달장애인의 영화관람이나 식당, 버스 이용 등을 돕는 시민옹호인 활동도 한다. YMCA 청소년 유해환경 감시단,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새마을금고 등 다양한 단체를 통한 봉사활동도 해오고 있다.

▲아산상 자원봉사상을 받은 이언정 씨. 그는 앞으로도 즐겁게, 감당할 수 있는 만큼 꾸준히 봉사할 것이라고 했다. ⓒ 이돈삼
"어렸을 때 제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가 있었어요. 친구들한테 보이지 않으려고 늘 손을 감췄습니다. 사람들 만나는 것도 기피했습니다. 폐결핵을 앓고 나서는 스스로 마음의 방어벽을 더 치며 살았습니다. 무척이나 소심하고 여린 성격이었죠."
말이 없고, 사람 만나기를 기피하던 그를 달라지게 한 것이 자원봉사였다. 첫 걸음은 어려웠지만, 금세 적응했다.
"저보다 더 불편하고, 어려운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 분들이 환하게 반겨주는데, 제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어요. 긍정의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대할 수 있게 된 계기였습니다. 제게 봉사는 선행이 아닙니다. 저를 성장시킨 힘이고, 저의 에너지 원천입니다. 제가 누구를 돕는 것이 아니라, 제가 사랑을 더 많이 받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씨가 돌아본 지난날이다.
1365자원봉사 포털과 사회복지 자원봉사 인증관리 시스템에 등록된 이씨의 누적 봉사 시간은 1만5000시간에 이른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무료급식소 봉사다.

▲무료 급식 도시락을 배달하는 이언정 씨. 그는 조리와 배식이 끝나면 혼자 사는 어르신을 찾아 도시락을 배달한다. ⓒ 이돈삼
"도시락 배달을 하면서, 삐뚤빼뚤한 글씨로 '덕분에 잘 먹고 잘 지낸다. 고맙다'고 적은 쪽지를 받았을 땐 가슴 뭉클했습니다. 힘도 났어요. 장애인복지관에서 1대 1로 연결된 발달장애인 친구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 친구가 당당히 자립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뿌듯하고, '내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이씨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낀 가장 기쁠 때다. 물론 마음 아플 때도 많았다.
"어르신이 아파서 못 나오거나,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을 땐 마음 많이 아팠습니다. 혼자서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어르신들을 뵐 때마다 마음이 아팠고요.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다는 무력감에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함께 봉사하는 남편과 봉사로 이어진 많은 사람들의 조언과 위로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아산상 시상식에 선 이언정 씨.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이 씨다. ⓒ 이돈삼
이씨가 최근 제37회 아산상(자원봉사 부문)을 수상했다. 시상식은 서울아산병원 아산생명과학연구원에서 열렸다.
"얼떨떨했습니다. 수상은 둘째 치고, 본상 후보자로 추천된 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상을 받아서, 저를 추천하고 도와준 복지관 선생님들 노고에 조금이라도 보답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합니다."
이씨는 아산사회복지재단으로부터 받은 시상금 2000만 원도 전액 기부했다. 그가 평소 오가는 광양시 중마장애인복지관과 YWCA, YMCA 등 봉사관련 기관과 단체에 나눴다. 따뜻한 마음과 손길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분들한테 닿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그사이 봉사가 제 삶의 1순위가 된 것 같습니다. 봉사하는 시간이 즐겁고, 보람도 큽니다. 행복하기도 하고요. 봉사는 결코 짐이 아닙니다.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앞으로도 즐겁게, 감당할 수 있는 만큼 꾸준히 할 겁니다."
누구라도 소외되지 않고, 존중 받으며 살 수 있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작은 밀알이 되고 싶다는 이씨다. 그가 수줍은 듯, 해맑게 웃으며 다음 봉사활동 장소로 발길을 돌렸다.

▲배달 꾸러미를 준비하는 이언정 씨(왼쪽 첫 번째). 이씨는 무료급식 뿐아니라 다양한 방면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 이돈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