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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초반 늦깎이 유학생의 브이로그를 봤다. 그는 여전히 공책을 펴고 손으로 필기를 한다. 책을 보며 형광펜을 그었는데, 필통을 갖고 다니는 사람이 본인밖에 없었다고 한다. 다른 학생들은 강의를 녹음해 인공지능 언어 모델인 GPT로 노트를 자동 생성하고, 그 녹취를 요약한 개인 팟캐스트로 공부한다. 그 브이로거는 동기들을 따라 하다가 공부 같지가 않아서 결국 본인 방식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손끝이 아닌 인공지능이 대신 배우는 시대다. 손의 움직임 속에 생각이 쌓이고, 문장이 정리되며, 스스로의 리듬이 만들어진다는 걸 아는 사람은 얼마 남지 않았다. '공부의 자동화'는 피로를 덜어주는 대신, 사고의 근육을 조금씩 약화시킨다.
공부는 정말 자기효능감일까
이제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는 아이들이 공부를 왜 하냐고 물을 때 나는 늘 "자기 효능감을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답해왔다. 그런데 이 대리공부의 시대에도 그런 답이 유효할까. 스스로 고민하지 않는 학습, 손대지 않는 경험, 그 안에서 '자기 효능감'이란 단어를 꺼내는 게 점점 공허하게 느껴진다.
아이에게 무조건 '손으로 써라', '아날로그로 공부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시대가 바뀌었고, 아이들의 학습 환경도 다르다. GPT를 활용해 개념을 정리하고, 인공지능(AI)이 제시한 풀이 과정을 참고하는 건 이제 자연스러운 공부의 세계다. 하지만 그 편리함 속에서 사고가 멈추지 않도록 지켜보는 건 부모의 몫인 것 같다. 손으로 '다시 써보는 시간', 스스로 '다시 생각하는 과정'을 확보해 주는 일 말이다.
나 역시 그 경계에서 자주 흔들린다. 아이의 학습 시간표를 관리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건, 공부의 주도권이 어디에 있는지를 붙잡아두는 일이다. AI가 정리해 준 문제를 들고 '이거 다 이해했지?'라고 묻는 내 목소리에는 효율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조급함과,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섞여 있다. 이 줄타기를 반복하며 어떻게 배움을 '내 손으로' 지키는지를 부모도 함께 배워간다.
'직접'이라는 감각을 배우길
다음 주부터 아이들 수학학원 방학특강이 시작된다. 개별 태블릿으로 이론 수업을 듣고 관련 문제를 푼다. 규칙은 하나, 풀이 노트에 모든 과정을 다 써야 한다. 수학 그 자체를 배우는 것도 있지만, 종이 위에 쌓이는 본인의 필기를 확인시켜 주기 위해 신청했다. 서툴러도 좋으니, 그리하여 남는 것은 '내가 직접 한 공부'라는 감각이었으면 한다.
손으로 쓰는 공부는 이제 낭만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우리는 효율과 인간 사이의 경계선 위에 서 있다. 자동화된 공부의 시대에, 아이가 펜을 쥐는 순간은 어쩌면 스스로 사고를 지키려는 반항이다. 반항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여전히 복잡하지만, 그래도 손으로 써본 문장은 오래 남고, 직접 쌓은 생각은 언젠가 아이를 자기 자신에게로 돌려놓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