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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을 가고 못 가고보다 이렇게 둘러앉아 서로의 주장을 말하고 듣는 경험이 훨씬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기사 속 사진 한 장에 한 동료 교사가 부러움과 감동을 전했다.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교육과정과 대입 정보를 안내하는 설명회 자리는 있어도 '한낱' 수학여행 실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교내 공청회를 연다는 건 지금껏 듣지도 보지도 못했단다. 더욱이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한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대기란 여간해선 쉽지 않다.

'찬반 투표'로 떠넘겨진 국가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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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강원도 속초에서 현장 체험학습 도중 발생한 사망사고 재판에서 법원은 인솔 교사에게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그 순간 전국의 교사들은 '멘붕'에 빠졌다. 이럴 바엔 현장 체험학습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득세했다. 여론의 반향 속에 최근 2심에서 1심의 집행유예는 선고유예로 감형됐지만, 유죄 취지는 번복되지 않았다.

교사들의 분노가 수그러들지 않자 교육부는 공문을 내려 올해부터 학교가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등 현장 체험학습을 추진하기 전에 전체 교사들의 찬반 의견을 묻는 절차를 의무화했다. 교사 다수가 반대하면 교육과정에서 뺄 수 있다는 뜻이다. 기사 속 서울 로봇고등학교의 '난리법석 대토론회' 역시 이러한 대안의 하나로 추진된 것으로 보인다(관련 기사: 학생들의 갈망, 교사들의 두려움... 수학여행 버스는 왜 멈춰섰나 https://omn.kr/2gkux).

기실 '학생은 갈망하고, 교사는 두려워하는' 대토론회의 분위기는 예상했던 대로다. 전국의 초중고 어디에서 열리든 양상은 똑같았을 것이다. 학창 시절을 통틀어 현장 체험학습만큼 아이들에게 '추억'으로 아로새겨지는 교육과정은 없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평생 가는 것도, 이팔청춘 또래들끼리 부대끼며 울고 웃었던 그 '추억'의 강렬함 덕분이다.

대토론회의 결론 또한 새삼스러울 게 없다. 최소한 현장 체험학습에서 인솔 교사의 주의의무 범위를 명확히 하고, 중대한 과실이 아닌 경우에는 교사를 형사적 책임으로부터 보호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 이는 법원의 유죄 선고 이후 전국의 모든 교사와 교육 관련 시민단체들이 정부를 향해 줄곧 외쳐온 절박한 요구다.

두려움을 알면서도 학교 밖으로 나서는 이유

단언컨대 교사들 누구도 현장 체험학습의 '무용론'을 주장하진 않는다. 교실 수업만으로는 학교 교육이 온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대입 준비라는 경쟁 일변도의 교육 현실 속에서 숨통을 틔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점에서, 교육과정의 고갱이라고 말하는 교사들도 있다. 다만 문제는 홀로 '덤터기를 써야 하는' 법적 책임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시려고 의무에도 없는 일을 벌이시나요?"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수백만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는 대한민국의 학교가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이유는 현장 체험학습이라는 '진통제'의 약효 덕분입니다."

자꾸만 아이들과 함께 학교 밖으로 나서려는 나를 동료 교사들은 진심으로 걱정한다. 나 역시 한결같은 답변으로 그들을 설득하려 애쓴다. 솔직히 법적 책임에 대한 두려움이 크지만, 그 두려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보람이 남달라서다. 졸업생들의 추억담은 약속이라도 한 듯 현장 체험학습에서의 에피소드로 귀결된다. 교실 수업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걸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작년 여름 학생자치회 임원 아이들과 함께한 지리산 종주 등반 길에서. 폭우가 쏟아져 도중에 하산할 수밖에 없었지만, 나름 소중한 추억이 됐다.
작년 여름 학생자치회 임원 아이들과 함께한 지리산 종주 등반 길에서. 폭우가 쏟아져 도중에 하산할 수밖에 없었지만, 나름 소중한 추억이 됐다. ⓒ 서부원

아이들 스스로 기획하고 추진했던 수학여행과 '고향 사랑이 나라 사랑'이라며 무등산 둘레길을 3년간 완주하는 소풍 프로젝트, 체력의 한계를 실감하게 하는 이틀간의 지리산 종주 등반, 부마 민주항쟁을 주제로 떠난 학생자치회 임원 수련회 등 우리 학교의 현장 체험학습은 '담장 위를 걷는 위태로움' 속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교육적 효과가 그만큼 크다는 확신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교사라면 모두가 꺼리는 학생부장 업무를 올해에도 기꺼이 맡겠다고 나선 것도 현장 체험학습의 '기회'가 여느 업무에 견줘 많기 때문이다. 빈번한 데다 나날이 흉포화하는 학교폭력 관련 업무를 전담해야 한다는 부담이 어깨를 짓누르지만, 현장 체험학습 주무 부서로서 학생자치회의 자치 활동을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설렘이 있다.

아이들이 없다면 교사가 존재할 이유도 없다. 교사에겐 아이들을 올곧은 시민으로 길러낼 책임과 의무가 있고, 이를 방기하는 건 스스로 교사임을 포기하는 일이다. 교직을 단지 '직업(Job)'으로만 여기지 않는다면, 아이들 속에서 그들과 부대끼는 게 교사의 숙명이다. 교사로서 이를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는 게 현장 체험학습이다.

의무 없는 답사,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배움

 지난 여름방학 때 부마 민주항쟁을 주제로 떠난 수련회의 회의 모습. 당시 부마 민주항쟁 기념재단의 활동가들이 적극적인 도움을 주셨다.
지난 여름방학 때 부마 민주항쟁을 주제로 떠난 수련회의 회의 모습. 당시 부마 민주항쟁 기념재단의 활동가들이 적극적인 도움을 주셨다. ⓒ 서부원

겨울방학 중인 지난 주말에도 이틀 일정으로 참가를 희망하는 아이들을 모아 경남 창원과 진주, 전북 남원 등지로 답사를 다녀왔다. 올해 초 수립된 교육과정에 수록되지 않은, 곧 '의무 없는 일'이었다. 역사 동아리 주관 행사였지만, 관심 있는 아이들이 여럿 함께했다. '5.18과 4.19의 정신'이라는 주제로 김주열 열사의 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이었다.

방학 전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쳤다. 운영위원들은 하나같이 답사의 교육적 효과를 확신하면서도, 먼 거리를 이틀간 교사가 홀로 운전해야 한다는 점에 우려를 표했다. 참가 인원도 열 명 안팎으로 소수인 데다 전세 비용이 워낙 비싸 버스를 대여할 순 없었다. 주말 버스 전세 비용은 150만 원을 호가했는데, 직접 15인승 승합차를 운전하면 50만 원이면 족했다.

100만 원 이상 아낄 수 있다는데 몸이 좀 고생하는 게 무슨 대수이랴. 돈도 돈이지만, 아이들에게 평생 남을 추억을 심어줄 수 있다는 설렘은 몸의 피곤함을 잊게 만든다. 기실 낯선 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인솔 교사에게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된다. 그곳에서 찍은 사진들이 벌써 아이들의 SNS 첫 화면에 내걸렸다.

"그렇게 벌이는 일들을 학교장이 순순히 허락하나요?"
"책임은 함께 지겠다며 흔쾌히 결재하십니다. 되레 함께 떠나지 못해 미안하다며 '금일봉'까지 건네주십니다."

다른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며, 그때마다 건네는 한결같은 답변이다. 다행히도 현장 체험학습에 관한 학교장의 교육 철학은 확고하다. 지리산 종주 등반이든 답사 여행이든 보호자 동의부터 안전 교육까지 나름 철저히 준비한 이유도 있겠지만, 지난 30년 가까이 별다른 갈등 없이 이어올 수 있었던 건 역대 학교장의 변함없는 신뢰 덕분이다.

법은 없고, 신뢰만 남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현장 체험학습 인솔 교사를 보호해 주는 법률은 없다. 교사를 향한 법의 잣대가 지나치게 가혹할뿐더러 정부는 푼돈 출장비와 초과수당으로 할 일 다했다는 식으로 뒷짐만 지고 있다. 전체 교사들의 찬반 의견을 물은 뒤에 현장 체험학습을 추진하라는 지침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부의 궁색한 처지를 방증한다.

그래도 어딘가에는 '금일봉'을 챙겨주는 학교장이 있고, '덤터기'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기꺼이 현장 체험학습에 나서는 교사도 있다. 오늘도 그들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냐'며 호기롭게 말하며 동료 교사들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다. 이들의 '자해적 헌신'을 나 몰라라 한다면 교육에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반교육 정부'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사족. 현장 체험학습 인솔 교사에 대한 법원의 유죄 선고 이후 교사들 사이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삶의 지혜'인 양 회자하고 있다. 씁쓸한 현실이지만,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었을지언정 치열한 토론과 숙의 과정을 이끈 로봇고등학교의 오성훈 선생님 같은 분이 계셔서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다. 허리 숙여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난리법석대토론회#현장체험학습#속초사망사고#서울로봇고등학교#주의의무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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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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