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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12월 역시 농한기로 절기로는 소한(小寒), 대한(大寒)이 들어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준비를 하는 시기이다. 주부들은 세찬과 설빔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때이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섣달그믐 날에는 수세(守歲)를 비롯해 '묵은세배' 등 여러 가지 세시풍속이 있다.
섣달그믐날에 설날 차례를 준비하며, 밤을 새우기 위해 설을 지내기 위해 모인 온 가족과 친척이 화투, 윷놀이를 한다. 토정비결을 보거나 윷점을 치기도 한다. 아이들은 섣달그믐 무렵부터 연날리기를 시작해 정월대보름까지 한다. '농가월령가' 12월령에서는 이 무렵의 정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고무줄 새총 ⓒ 용인시민신문
"십이월은 계동이라 소한 대한 절기로다 / 설중의 봉만들은 해저문 빛이로다 / 세전에 남은 날이 얼마나 걸렸는고 / 집안의 여인들은 세시의복 장만할 제 / 무명 명주 끊어 내어 온갖 무색 들여내니 / 자주 보라 송화색에 청화 갈매 옥색이라 (중략) 입을 것 그만하고 음식 장만 하오리라 / 떡쌀은 몇 말이며 술쌀은 몇 말인고 / 콩 갈아 두부하고 메밀쌀 만두 빚소 (중략) 새등잔 세발심지 장등하여 새울 적에 / 웃방 봉당 부엌까지 곳곳이 명랑하다 / 초롱불 오락가락 묵은세배 하는구나."
섣달은 '남의 달'이라 하여 한 해를 조용하게 마무리한다. 섣달그믐은 한 해를 결산하는 마지막 날이므로 밀린 빚이 있으면 이날 안에 갚고, 그러지 못하면 정월대보름 이전에는 빚 독촉을 하지 않는다. 섣달에는 매사를 정리하고 큰 물건을 함부로 사지 않으며, 솥을 사면 거름에 엎어두었다가 그믐날에 부엌 아궁이에 걸면 탈이 없다고 했다.
"섣달그믐이면 나갔던 빗자루도 집 찾아 온다" 또는 "숟가락 하나라도 남의 집에서 설을 지내면 서러워서 운다"라는 말이 있다. 가는 해의 마지막 마무리를 잘하고, 빌렸던 남의 물건도 모두 돌려주고 돈도 꾸지 않으며 혼인도 하지 않고, 연장도 빌려주지 않는다.
이날 잠을 자지 않고 집안 청소를 깨끗이 해 새해 맞을 준비를 하며 제야(除夜)의 종소리를 듣는 것은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경건하게 새해를 맞이하고자 하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섣달그믐날 개밥 퍼 주듯"이란 속담도 있다. 시집을 가지 못하고 해를 넘기게 된 처녀가 홧김에 개밥을 퍽퍽 퍼 주는 것처럼 무엇이든 풍족하게 팍팍 나누어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섣달그믐날 잠 자면 눈썹 하얗게 센다

▲기둥에 체 걸기 ⓒ 용인시민신문
섣달그믐날은 한자로는 제일(除日)이라고 하는데, 제(除)는 옛것을 없애고 새것을 마련한다는 뜻이다. 가는 해를 먼지 털듯이 털어내고 묵은 것을 다 쓸어버려야 액(厄)이 모두 물러나 새해에 복이 들어온다는 생각에서 민가에서는 이날 집 안팎을 깨끗이 청소했다. 그리고 집안 곳곳에 심지어 외양간과 변소까지 기름 등잔을 켜서 환하게 밝혀 놓았다. 이를 수세(守歲)라고 한다.
수세는 섣달 중 경신일에는 자지 않고 밤을 지켜야 복을 얻는다는 도교에서 나온 '경신수세(庚申守歲)' 풍속에서 비롯했다. 이날 잠이 들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하며, 잠이 든 사람에게는 눈썹에 밀가루를 발라 눈썹이 세었다고 놀려주기도 한다. 지금도 장난삼아 그같은 행위를 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새벽닭이 울 때까지 잠을 자지 않기 위해 화롯가에 둘러앉아 옛날이야기며 윷놀이를 하거나 망년주를 마셨다. 이렇듯 수세는 지나간 시간을 반성하고 새해를 설계하는 것으로 마지막 날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다.
섣달그믐날 밤에 맨발귀신 야광귀가 신발을 훔쳐간다
야광귀는 맨발 귀신으로 섣달그믐 밤에 나타나 신발을 신어 보고, 제 발에 맞는 신발 특히 발이 작은 아이들의 신발을 신고 달아난다고 한다. 이때 잃어버린 신발 주인은 병을 앓거나 재수가 없다고 해서 신발을 방에 감추거나 엎어 놓기도 하고, 야광귀가 못 들어오도록 마루 벽 대문에 체를 걸어 놓거나 문지방 위에 엄나무 가지를 걸어 놓기도 했다.
야광귀에게는 세는 것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어 구멍이 촘촘한 체를 세다가 새벽닭이 울면 다 못 세고 도망간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섣달그믐날에 눈이 내리면 곱게 받아두었다가 녹은 뒤 약용으로 썼다. 이 물로 눈을 씻으면 안질을 막을 수 있다. 한약을 달일 때도 쓴다. 또한 이 물을 김장독에 넣으면 맛이 변하지 않고 의류와 책에 바르면 좀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눈이 녹은 물에 물건을 적셔두면 구더기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섣달그믐날 밤늦도록 묵은세배를 올린다

▲덮치기 ⓒ 용인시민신문
섣달그믐날 저녁에 그해를 보내는 인사로 웃어른을 찾아뵙고 절을 하는 것을 '묵은세배'라고 한다. 저녁에 사당에 절을 하며 조상의 신령에게 한 해가 다 갔음을 알리고, 한 해를 아무 탈 없이 지냈음을 조상의 은덕이라 생각하고 감사하는 예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당이 거의 없어져 이러한 사당제는 찾아보기 어렵고, 묵은세배 또한 지금은 살필 수 없다.
그믐날 낮에 조상의 산소에 찾아가 성묘하는데, 이 역시 묵은세배에 해당된다. 또 집에서 어른에게나 일가친척에게도 묵은세배를 올린다. 세밑에는 바쁘기 때문에 일을 마친 뒤 밤늦도록 묵은세배를 다니는 일도 있다.
노인·어른들은 의관을 단정하게 하고 묵은세배 오는 사람을 기다려 맞이한다. 묵은세배꾼이 많이 찾아오는 종가에서는 밤에도 사당에 불을 밝혀 둔다. 묵은세배는 지난 한 해 덕분에 잘 지냈노라 인사하고 행복한 새해를 맞으시라 덕담을 드리는 것이지만,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자칫 서러울 이들의 형편을 살피고 슬쩍 촌지를 건네는 기회이기도 했다.
대나무 폭죽 터뜨리기

▲대나무 폭죽터뜨리기 ⓒ 용인시민신문
섣달그믐날 밤에 잡귀를 쫓기 위해 청죽을 불에 태워 큰 폭음을 내는 풍속이 있는데, 이를 '대불놓기'라고 한다. 그믐날 해가 지면 대문 안이나 밖에 불을 피워 놓고 마디가 있는 대나무 토막을 불에 넣으면 대나무가 폭발해 큰 소리를 낸다. 이렇게 하면 묵은해에 집안에 있던 잡귀들이 놀라서 달아나고 신성하고 깨끗하게 새해를 맞이할 수 있다고 믿었다.
폭죽은 오랫동안 전승돼 왔으나 요즘은 종이 폭죽을 사서 섣달그믐 무렵부터 정월 초순까지 골목골목에서 터뜨리며 논다.
명실태우기
명실태우기는 점복의 성격을 지닌 세시풍속이다. 섣달그믐 날이면 온 식구가 모여 앉아 설을 준비하며 짬을 내 명실을 태운다. 각자 실을 50~60㎝ 길이로 끊어 자기 나이 수만큼 매듭을 짓는데 이를 명실이라 한다. 명실을 태우며 초분·중분·종분으로 나눠 인생의 초년·장년·노년을 점친다. 종분까지 다 타면 장수하고, 중도에 꺼지면 액운이 온다고 여겼다.

▲참새구이 포장마차(1970년대) ⓒ 용인시민신문
섣달그믐 무렵에는 참새잡이를 많이 했다. 아이들은 덮치기 방식으로, 어른들은 처마 밑에서 참새를 잡았다. "참새가 소 등에 올라가 네 고기 열 점과 내 고기 한 점을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진다. 섣달그믐에 참새고기를 먹으면 무병하다는 믿음이 있었다.
참새구이는 1970년대 포장마차 인기 안주였고, 이후 메추리구이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필자체험]
1960년대 초등학교 시절 필자는 겨울방학마다 낮에는 썰매를 타고 밤에는 참새잡이를 했다. 삼태기 덮치기, 사다리를 이용한 처마 밑 참새잡이까지 그 시절 겨울밤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잡은 참새는 연탄불에 구워 먹었는데, 먹을 양은 적었지만 가장 맛있었던 고기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