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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1.08 10:41최종 업데이트 26.01.08 10:41

경미범죄, 사소한 실수 앞에서 법은 얼마나 엄격해야 할까?

ⓒ 용인시민신문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들여다보면, 법의 엄정함이 때로는 인간적인 상식과 충돌하는 장면을 종종 마주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이른바 '경미범죄'로 분류되는 사안들에서 이러한 괴리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비가 거세게 내리던 어느 날, 회사 로비에 놓여 있던 우산 하나를 무심코 들고 퇴근한 직장인 A씨의 사례를 떠올려 봅니다. 그는 "누군가 두고 간, 더 이상 쓰지 않는 우산일 것"이라는 순간적인 착각 속에서 행동했지만, 그 결과는 절도 혐의였습니다. 며칠 뒤 우산 주인에게 사과하고 돌려주었음에도, 그의 실수는 형사 사건으로 처리되었고 '전과 가능성'이라는 무거운 부담을 안게 되었습니다.

이와 유사한 사례도 있습니다. 폐지를 수집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80대 노인 B씨는 아파트 복도에 놓인 택배 상자를 버려진 종이 상자로 오인해 가져갔습니다. 상자를 열어보지도 않았고, 내용물에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택배 주인의 분실 신고로 경찰 수사가 시작되었고, 이 사건 역시 절도 혐의로 분류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인의 생활방식과 착오는 법 앞에서 '범죄 의심 행위'로만 해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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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사례의 공통점은 명확합니다. 고의성이 낮고, 피해 규모가 비교적 경미하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상 이는 '타인의 재물을 무단으로 취득한 행위'로 평가됩니다. 피해자가 존재하고 신고가 접수된 이상, 경찰은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사건을 처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그 결과입니다. 일상 속의 사소한 실수로 인해 평범한 시민이 순식간에 '범죄자'로 규정되고, 사건 이력이라는 부담을 떠안는 현실은 분명 씁쓸합니다. 법은 원칙 위에서 작동해야 하지만, 인간의 실수와 삶의 맥락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 또한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딜레마를 완화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가 경미범죄심사위원회입니다. 경찰은 고의성이 낮고, 피해 규모가 작으며, 당사자가 반성하고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한 사건에 대해 이 위원회 회부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위원회는 법률 전문가와 외부 인사들이 참여해 사건의 성격을 다시 살핀 뒤, 형사 입건 대신 즉결심판 또는 훈방 등 보다 유연한 처리 방안을 결정합니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전과 기록을 줄이고, 실수한 이들이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 제도는 법 집행의 일관성을 훼손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냉정한 법의 잣대와 온기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입니다. 법의 목적이 처벌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질서의 회복과 재범 방지에 있다면 이러한 완충 장치는 충분히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작은 범죄라도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타인의 재산을 존중하는 문화가 무너지면 사회 전체의 신뢰 기반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소한 오판이나 생활 속 착오가 한 사람의 삶을 과도하게 짓누를 필요까지는 없어 보입니다.

대법원 판례 역시 절도죄의 판단에 있어 결과보다 불법영득의사, 즉 취득 당시의 의도와 맥락을 중시해 왔습니다.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 형사 책임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해 온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경미범죄위원회나 훈방제도는 단순한 '온정'이 아니라, 판례가 지향해 온 형법의 정신을 현장에서 구현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법을 느슨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법이 요구하는 비례성과 합리성을 회복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우산 하나, 택배 상자 하나. 물건은 작지만, 그 이면에 담긴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법은 어디까지 엄격해야 하고, 우리는 어디까지 따뜻할 수 있을까요?"

경미범죄에 대한 훈방 또는 선처 중심의 처리는 과연 관용일까요, 아니면 책임 있는 법 집행의 또 다른 얼굴일까요? 더 엄격한 사회가 우리를 지켜줄 것인가요, 아니면 조금의 관용이 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인가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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