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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날부터 쿠팡 알바... 혈압을 재라고 했다)
4층에서 관리자에게 업무 지시를 받았다. 각자 PDA(개인용 단말기)를 하나씩 챙겨 카트 위에 토트를 들고 다니면서 PDA가 알려주는 물건들을 실어 레일에 태우는 일이었다. 이전 센터에서 해봤던 일이라서 PDA 사용법이 어렵지는 않았다. 그때와 차이라면 이곳에서 다루는 물건은 대부분 식품이라는 점이었다.
기성 직원들이 한 카트에 여러 대의 토트를 실어 일을 하는 것에 반해, 관리자는 신규 사원에겐 토트 하나씩만 가지고 작업을 하라고 했다. 처음이니까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정확하게 해달라는 요청과 함께. PDA에 나타나는 요청대로 토트에 물건을 넣고 몇 번 레일에 태웠더니 금세 밥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식사 시각도 달랐다. 이전 센터는 밤 10시에 식사를 하는 반면, 이곳에서는 저녁 7시 반이 식사 시간이었다. 한마디로 신규 사원들은 1시간 반 정도 교육을 듣고, 30분 정도만 업무를 보면 바로 식사 시각이었다. 이전 센터에선 한참 일을 하다가 밥을 먹다 보니 늘 든든하게 배를 채웠는데, 이곳에서는 얼마나 먹어야 할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너무 적게 먹으면 나중에 힘이 들 것 같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화장실을 가기가 끔찍할 것 같았다. 특히 탈의가 쉽지 않은 방한복을 입은 채로는.
온갖 식재료로 가득한 곳
이전 센터 식당과의 차이라면 이곳에서는 '혼밥석'이 많이 있다는 점이다. 벽을 마주보고 휴대폰으로 유튜브 등 영상을 보며 식사를 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렇게 한 시간의 식사, 휴게 시간이 끝나고 후반 업무 시간이 시작되었다. 저녁 8시 반부터 다음날 새벽 2시 반까지. 퇴근까지는 6시간이 남았다.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냉장센터에서 일을 해보니, 이곳에서의 업무는 꼭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과 같다. 단지 그게 내가 원하는 물건의 장을 보는 게 아니라, 누군가 시킨 목록의 장을 보는 일이라는 점이다. 마트에서 한 시간만 장을 봐도 힘이 드는데, 남이 콕 찝은 장을, 그것도 8시간 정도를 내리 장을 보는 일은 쉽지 않다.

▲긴 시간 내리 장을 보는 것 같은 일 ⓒ astheticslut1 on Unsplash
신선 센터에는 온갖 식재료로 가득했다. 에그존과 두부존이 따로 있어서, 국내에 유통되는 계란과 두부 브랜드가 이렇게 많구나 싶기도 했다. 소, 돼지, 닭 등의 고기류는 물론 생선과 각종 소스들, 유제품들, 간식 거리들이 있었다. 이런저런 식재료들을 보고 있으니 요즘 유행하는 서바이벌 요리 프로그램의 셰프들을 불러다가, 음식을 만들어달라고 하면 좋겠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PDA에서는 어느 쪽 어느 곳에 가서 물건 몇 개를 토트에 담으라고 나온다. 바코드를 몇 번 찍고 토트 안에 담으면 PDA에서는 연두색 바탕에 '성공!'이라는 글씨가 뜬다. 마치 게임을 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신선센터에서 일을 하는 데에도 고충은 있다. 아무래도 상온보다는 낮은 온도에서 일을 하는 환경이 가장 크다. 커다란 냉장고 안에 들어와 있는 듯, 마스크를 쓰자 안경 위로 습기가 차서 안경을 벗든지 마스크를 벗든지 해야만 했다. 안경을 벗으면 눈에 보이는 게 아무 것도 없으니 자연스레 마스크를 턱 아래로 내리게 된다. 그러니 입과 코로 찬 공기를 계속해서 들이마시게 된다.
그리고 PDA가 물건을 집으라는 위치는 제각각으로 변한다. PDA에서는 어느 통로, 몇 번 칸, 몇 번 높이의 물건을 꺼내라고 지시 사항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대체로 높이가 문제가 된다. 선반은 보통 1~6단으로 구분 되어 있는데, 사람들마다 각자 다르겠지만 내 기준으로 1, 2단은 너무 낮고 6단은 다소 높다.
특히 1단 깊숙한 곳에 물건이 있다면, 허리를 숙이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거의 바닥에 엎드려서 물건을 꺼내야 한다. 그에 반해 3, 4, 5단은 딱 눈높이의 물건이라 PDA에서 3, 4, 5단의 물건을 집품 하라고 뜨면 속으로 '럭키!'를 외치게 된다.
무서운 문구의 재등장
같은 일을 몇 시간이고 계속적으로 반복하면 실수가 나오는 법인가 보다. 열심히 식품들을 토트 위에 올리고 있는데, PDA에서 "이경화님 중앙 관리실로 와주세요"라는 문구가 떴다. 그 무서운 문구의 재등장이다.
PDA의 문구를 따라 중앙 관리실로 가니 남성 관리자가 레일에 토트를 어떤 식으로 올리는지 물었다. 토트는 한쪽이 긴 직사각형의 모양이고 흐르는 레일 좌우의 틈이 여유 있게, 긴 방향으로 해서 보내야 한다. 그래야 레일 벽면에 부딪히지 않고, 유유히 잘 흘러갈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누군가 따로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당연히 그렇게 해서 보낸다고 했더니, 관리자는 방향이 잘못된 토트가 한번 있었고, 그 탓에 레일이 한번 멈추었다는 말을 해주었다. 누군가 내가 올린 토트를 일부러 건드리지 않은 이상은 내가 잘못 올린 게 맞았을 거다. 한번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니 앞으로는 레일 위에 토트를 올리는 데에도 신중을 기하게 된다.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업무도 실수를 했더니 긴장을 하게 된다. 사회생활을 하다가 누군가 하는 일이 정말 쉬워 보일 때면, 그 사람이 일을 정말 잘하는 것이라는 글을 가끔 접하곤 한다. 레일에서 멈추지 않고 흐르는 물건들이 제멋대로 올려 진 것 같지만 사람들 각자 정신을 차리고 너무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토트를 내려놓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실수 외에는 일은 대체로 수월했다.
가끔 PDA에 넣으라는 물건의 재고가 없을 때가 있다. 선반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때도 없으면 관리자를 찾으면 된다. 한번은 '고기잡채'를 집품 하라는 지시가 떠서 선반을 뒤졌는데, 아무리 봐도 '고기잡채'로 보일만한 상품이 없었다. 관리자에게 말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보자하고 봤는데, 정말 조그마한, 젤라또 가게의 아이스크림 컵 정도의 크기에 '고기잡채'라고 쓰인 상품이 눈에 보여서 당황스러웠던 적이 있다. 다이어트 식품이었던걸까. 세상에 이걸 누구 코에 붙이라는 걸까, 싶을 정도로 양이 적은 고기잡채였다.
그렇게 새해 첫날 쿠팡 알바를 마쳤다. 새벽 두시 반 업무 종료와 함께 방한복과 신발을 반납하고, 손을 씻고는 셔틀버스를 타러 계단을 오르는데 발이 좀 아파왔다. 2층에서 셔틀버스가 있는 옥상층으로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데 숨이 가빠온다. 계단을 오르다 자판기 기계 앞에 가서 캔음료를 하나 뽑아 마시면서 다시 계단을 오른다. 셔틀버스에 올라 다음 업무도 같은 곳으로 지원을 했다. 어떤 지옥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