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은 종종 말보다 먼저 우리를 덮친다. 너무 이르고 깊어서, 언어가 따라가지 못한 채 마음속에 고여 남는다. 박소담 작가의 산문집 <소류지에 머무는 밤>(2025년 12월 출간)은 바로 그 고여 있는 감정의 자리에서 시작된다. 이 책은 극복의 이야기라기보다, 상실 앞에 오래 머무르며 살아온 한 인간의 고백록에 가깝다. 박 작가와 지난 5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상실 고백록

▲책표지 ⓒ 이상공작소
작가는 이 책을 "저의 상실 고백록"이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의 상실, 여성으로서의 상실, 가난한 예술가이자 한 인간으로서 겪어온 상실을 차곡차곡 엮어냈다. 그 고백은 절규가 아니라, 잔잔한 물결처럼 조용히 흘러간다.
박소담 작가에게 소류지는 실제로 존재하는 기억의 장소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경남 진주 장재동에는 작은 소류지가 있었다.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졌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힘든 날이면 그곳을 닮은 물가를 찾았다.
"그곳에서 느낀 조용한 위로는 상실이 제게 가져다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소류지에 머무는 밤>은 상처와 아픔을 말하지만, 비극에 머무르지 않는다. 덤덤하게 살아가는 태도를 보여주는 책이다. 작가는 이 책이 독자에게도 '소류지에 머무는 밤'이 되어, 잔잔한 위로로 흘러가길 바란다고 말한다.
"왜 쓰고, 왜 그리는가. 그 질문은 곧 왜 살아 있는가였습니다."
이 책은 '왜 쓰고 왜 그리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공황과 우울로 상담을 받던 시기, 작가는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묻던 질문이 바로 "왜 살아 있는가"였다고 말한다. 삶을 찬찬히 훑어볼수록, 그 질문의 답이 닿는 곳마다 상실이 있었다.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의 말처럼 "현재의 우리는 미래에서 과거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이 이야기는 작가가 가장 힘들었던 해에 쓰이기 시작했다. 일과 꿈, 시와 그림, 가족과 사랑, 건강까지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진 시기였다. 글을 쓰는 동안 그는 지나온 상실 속으로 완전히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 순간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시와 그림 대신, 산문을 선택한 이유
박소담 작가는 시와 회화를 주 작업으로 해온 예술가다. 은유와 추상은 상실을 사랑으로 표현하기에 잘 맞는 언어였다. 그러나 작업을 거듭할수록 더 투명하고 담백한 표현에 대한 압박이 커졌다.
그 무렵 받은 산문집 출간 제안은 하나의 전환점이 됐다. 유난히 푸른 색감을 사용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는 말에,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산문으로 풀어놓았다.
"저 스스로 많은 벽을 허물게 해준 고마운 기회였습니다."
이 책에는 유년의 상처, 가족의 부재, 아이를 잃은 경험까지 담겨 있다. 처음 글로 옮길 때는 두려웠지만, 쓰는 동안 만큼은 담담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다 쓴 뒤에는 한동안 다시 무척 힘들었습니다. 심장이 떨리는 것 같았고, 잠을 설쳤고, 이유 없이 무너지는 날도 많았어요."
그 과정에서 작가는 슬픔이 '자라나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하는 슬픔도 있고, 어떤 슬픔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야 잦아든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제는 두렵고 슬프던 모든 시절이 고맙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제자와 아이, 친구를 연이어 떠나보낸 경험은 작가에게 삶 자체를 무거운 짐으로 만들었다. 그 시기에 만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다. 그 시를 읽으며 자신을 많이 미워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는 천천히 일어설 수 있게 됐다. 삶의 이유를 바깥에서 찾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자기 자신에게서 찾고 있다.
박소담 작가에게 '머문다'는 것은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슬픔을 빨리 지나가야 할 것으로 여기던 태도에서 벗어나, 도망치지 않고 그 곁에 머무르기로 한 선택이다.
"머문다는 것은 슬픔을 극복하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그 슬픔과 함께 오늘을 살아내겠다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글보다 먼저 완성된 그림

▲소류지에 머무는 밤 ⓒ 박소담 작가
밤의 소류지는 감정의 바닥에 가장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다. 고요 속에서 감정은 숨을 곳을 잃고 가라앉는다. 반면 새벽의 소류지는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슬픔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다른 무게로 존재합니다."
밤이 슬픔의 정직한 얼굴이라면, 새벽은 그 슬픔을 안고 다시 걸어갈 수 있음을 알려주는 시간이다.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은 모두 글보다 먼저 완성됐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 앞에서는 침묵이 더 정확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소류지에 머무는 밤>에는 여백이 많다. 그 여백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독자의 상실이 잠시 머물 수 있는 자리다.
상실 이후 작가는 청소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말보다 침묵을, 행동보다 그 뒤에 숨은 사정을 먼저 생각하게 됐다. 교실은 삶의 가장 연약한 부분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그 안에서 교사로 살아가는 일은, 상실을 겪은 개인인 그를 다시 삶 쪽으로 이끌었다.
"아이들을 통해 매일 다시 살아야 할 이유를 배우고 있습니다."
치유란, 함께 살아가는 것
박소담 작가가 말하는 치유는 완전한 회복이 아니다.
"제가 지향하는 치유는 '함께 살아가기'입니다."
상실은 시간이 지나 옅어지기도 하고, 다른 형태로 옮겨가기도 한다. 잘 건너온 상실은 결국 다정함으로 남는다. 작가는 이 책이 상실의 한가운데에 있는 독자에게 "아무것도 깨닫지 않아도 되는 아주 조용한 밤"이 되길 바란다. 울어도 괜찮고, 아무 생각이 없어도 괜찮은 밤. 책을 덮은 뒤에는 자신의 소류지를 떠올리며, 외면하지 않고 잠시 머물 수 있었던 자신에게 고마움을 느끼길 바란다고 말한다.
이제 이 책은 작가에게 온전한 안식처이자, 상실과 적당한 거리를 만들어준 경계선으로 남아 있다. 숨길 필요 없는 과거, 조심스럽게 꺼내 보일 수 있는 용기다. 다음 이야기는 밝고 맑은 기록이 되길 바란다. 아이들과 함께 머물며 살아 있음의 방향을 확인하는 시간. 그것은 희망의 선언이 아니라, 조용한 증명이 될 것이다.
"슬픔은 언젠가 우리를 더 다정한 모습으로 만들어줍니다."
그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충분히 다정하다고, 박소담 작가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