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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곡에 있는 어머니 묘소, 임진강 건너 아버지 고향을 조망할 수 있는 야산에 있다. ⓒ 이혁진
지난 8일, 경기도 연천군 전곡에 있는 어머니 산소를 찾아갔다. 묘소는 임진강 건너 아버지 고향인 개풍군을 바라볼 수 있는 야트막한 산에 있다. 아버지가 분단으로 갈 수 없는 고향 선산을 대신해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 묘지를 마련했는데, 1992년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이곳에 먼저 묻히셨다.
이후 아버지는 어머니 유택을 들를 때마다 "여보! 뒤따라 갈 테니 조금 기다리라"는 말을 하셨다. 그새 34년이 흘렀다. 아버지는 연로하시어 이제 성묘하는 것도 힘에 부쳐 내가 아버지를 대신해 묘소에서 독백을 하고 있다.
도착하자마자 묘소를 덮은 겨울 낙엽부터 쓸어냈다. 주변에 일부 낙엽을 떨어내지 못한 나무들이 있지만 그것들마저 없으면 더 쓸쓸할 것 같았다. 아내는 간단한 제물을 상석에 올리고 차례를 준비했다. 이어 우리는 어머니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을 시작으로 올해도 우리 가족의 평안과 건강을 보살펴주시길 간청했다.
새해를 맞아 어머니께 간청한 것
아버지가 전하는 말씀도 올렸다. 이번에는 '함께 성묘하지 못하는 자신을 용서하라'는 말로 바뀌었지만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은 여전하시다. 북한을 바라볼 수 있는 어머니 묘지는 이산가족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남북의 평화를 염원하는 곳이기도 하다. 해서 아버지의 '귀향 소원'도 함께 청했다.
나 또한 어머니께 드릴 말이 빠질 수 없다. 건강을 많이 회복하며 하루하루 삶의 의미를 깨닫고 일상의 기적을 체험하고 있는데, 그때마다 어머니를 떠올린다고 고백했다. 아내는 얼마 전 증손녀를 봤다며 잘 자라게 해 주시기를 기원하면서 잠시 울먹였다. 이렇게 좋은 일과 잘한 일을 어머니 앞이 아니면 누구에게 자랑할 것인가.
과거 직장 다닐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니 묘소 찾는 일이 많지 않았다. 남의 손을 빌려 벌초하거나 거르기도 해 가슴속에 늘 죄 짓는 마음이었다.
해맞이 성묘로 시작한 2026년

▲나무에 매달린 겨울낙엽은 스치는 바람에도 끄덕 없다. 마치 살아있는 느낌이다. ⓒ 이혁진
내가 은퇴 이후 바뀐 것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홀로 남은 아버지와 대화가 하루도 빠짐없이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어머니 묘소를 자주 가는 것이다.
특히 성묘하면서 내가 어머니께 고하는 말이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해마다 여기 와서 어머니를 뵐 수 있도록 건강을 주시라는 것이다. 실제 성묘를 간다고 생각하면 며칠 전부터 몸과 마음이 위안을 얻는 기분이다.
올해는 시무식을 어머니 묘소에서 했다. 백수나 다름없는 '은살남(은퇴 후 살림하는 남자)'이 웬 시무식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한 해 시작을 위한 어머니와의 대화는 유명인들이 새해 들어 현충원을 참배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머니 묘지를 새해를 맞아 찾아가는 것은 무엇보다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전하는 것은 자식의 도리라 생각한다.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묘지의 아늑한 분위기는 여생의 고귀함에 대한 감사와 심리적 안정을 느끼게 한다고 할까.
잠시 하늘을 배경으로 나무에 걸린 낙엽이 바람에 스치며 흔들렸다. 그 사이로 어머니가 "아들아, 여기 잘 있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어머니 묘소를 다녀오면 삶의 희망과 의지가 되살아나는 묘한 기운이 생긴다. 이를 가족들에게 고루 전하면 이들에게도 행운이 따를 것이라고 믿는다.
묘지 둘레석 밑의 낙엽을 걷어내자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어린 쑥도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여리고 푸른 풀잎들은 마치 봄을 기다리는 희망 같아 보였다. 해서 올해는 어머니께 소원 하나를 특별히 추가했다. 인공지능(AI) 광풍으로 다가올 미래가 가늠이 안 되는 시대, 인공지능으로 '남북평화'도 가능하게 해 달라고 말이다.

▲묘지 둘레석 아래 고개를 내민 어린 쑥들 모습 ⓒ 이혁진

▲겨울낙엽을 걷어내자 푸른 새싹들이 돋아나 있다. 이는 봄을 기다리는 희망이다. ⓒ 이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