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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5년 10월 28일, 90 평생을 오로지 땅과 함께 살아오신 아버지가 이승에서의 고단한 삶을 마치고 소풍을 떠나셨다.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홀로 남은 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써 내려갔던 나의 일기장을 우연히 펼쳐보았다.
2025년 10월 14일. "아버지의 생이 얼마 남지 않음을 직감한다. 이제 나는 무엇을 삶의 목표로 준비해 나가야 하는가. 내면의 무명(無明)에 사로잡힌 욕망은 내버려 둔 채, 나도 아버지처럼 일에만 매몰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2025년 10월 20일. "아버지의 명이 다한 듯하다. 원없이, 한없이 편안하게 가셨으면 한다. 좋아하셨던 음식과 술, 원없이 드시고 사셨으니 여한은 없으시겠지만, 가족과 함께했던 추억의 순간이 거의 없다는 게 가슴 시리다. 인생 후반의 대부분을 농사일에 바치고, 나머지 반은 그 고된 일로 얻은 척추협착증 때문에 병원에서 보내셨다. 이제는 정말 편안하게 생을 마칠 날이 오고 있다. 고집은 세셨지만 손재주가 좋으셨고, 늘 청결하셨던 분. 무학이셨지만 세상 사는 이치는 누구보다 잘 아셨던 분…."
거동이 힘들어지신 아버지를 집에서 모신 지 어느덧 6년이었다. 돌봄 서비스를 받으며 고비를 넘기기도 했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듯 아버지의 기력은 점점 쇠해가셨다. 주변에서는 요양원을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늘 "내 집에서 조용히 가고 싶다"고 하셨고, 차마 그 고집을 꺾을 수 없어 마지막 순간까지 내 손으로 아버지를 지켰다.
아버지는 참 대단한 분이셨다. 평생 무학이셨지만 삶의 이치 만큼은 대학자 보다 깊으셨다. 기억력 또한 비상하여 옛일들을 낱낱이 기억하시던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식들을 맑은 정신으로 눈에 담고 가셨다.
아버지가 가시고 난 뒤 빈자리를 보며 깨닫는다. 아버지는 이 세상에 잠시 오셨으면서도, 단 하루도 편히 쉬지 못하고 일만 하시다 가셨다는 것을. 여행보다는 밭을 일구며 불어오는 바람 쐬면서 막걸리 한 잔과 생마늘 하나 안주 삼아 드시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며 사셨던 분, 그리고 자식들을 키워내신 것이 당신의 삶 전부였다.
가족과 함께 여행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한 채 일터와 병원만을 오갔던 아버지의 삶이 애달프지만, 집에서 조용히 가고 싶다던 당신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드릴 수 있었던 6년은 나에게도 큰 위안으로 남는다.
90년의 소풍을 끝내고 이제 흙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이제는 무거운 짐도, 아픈 허리도 다 잊으시고 그저 편안한 곳에서 좋아하시던 술 한 잔 기분 좋게 기울이셨으면 좋겠다.
"아버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편히 쉬시고, 하늘나라에서는 즐거운 소풍 이어가십시오." 덧붙이는 글 | 가족요양 제도를 활성화 하기 위한 재정적 기반이 더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