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매일 아침, 1호선 전철에 몸을 싣는다. 경기 북부 J역에서 출발해 서울 도봉구의 환승 거점인 C역으로 향하는 여정이다. 덜컹거리는 전철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거나 스마트폰을 보다 보면 어느새 하차 안내 방송이 들려온다.

​직장인에게 출근길은 언제나 고단한 일상이지만, 환승역인 C역에 내리는 순간 나에게는 또 다른 '전투'가 시작된다. 스크린도어가 열리면 눈앞에 펼쳐지는 첫 번째 관문, 바로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이다.

 1호선에서 하차 후 계단을 오르는 모습
1호선에서 하차 후 계단을 오르는 모습 ⓒ 김주환

​C역은 현재 에스컬레이터 설치 공사가 한창이다. 편의 시설이 들어서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공사 기간 동안 겪어야 하는 불편함은 온전히 시민들의 몫이다. 승강장에서 대합실로 나가기 위해서는 가파른 계단을 걸어서 올라야 한다.

 환승을 하기위해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
환승을 하기위해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 ⓒ 김주환

숨을 헐떡이며 겨우 다 올랐다 싶으면 끝이 아니다. 다시 내리막 계단이 기다리고 있고, 환승을 위해 이동하려면 또다시 계단을 마주해야 한다. 특히 요즘처럼 두꺼운 외투를 입은 겨울철 아침, 수많은 인파에 섞여 이 계단들을 오르내리다 보면 회사에 도착하기도 전에 진이 빠지기 일쑤다.

AD
​'안전제일', '머리조심'이라는 공사 안내판과 노란색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은 임시 통로를 지나며, 튼튼한 두 다리를 가진 나조차도 "아, 정말 힘들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오늘따라 가쁜 숨을 몰아쉬던 중 문득 다른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건강한 비장애인인 나도 이렇게 숨이 차고 힘든데, 몸이 불편한 장애인분들은 대체 이 역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을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휠체어를 이용하거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는 어디에 있을까. 눈을 씻고 찾아보니 저 멀리,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엘레베이터 이용하라는 문구가 가려진 사진
엘레베이터 이용하라는 문구가 가려진 사진 ⓒ 김주환

비장애인들이 계단을 통해 직선거리를 빠르게 이동할 때, 이동 약자들은 엘리베이터를 찾아 승강장 끝에서 끝으로, 다시 우회로를 통해 한참을 돌아가야만 역을 빠져나갈 수 있는 구조였다. 나에게는 그저 잠시 '힘든 출근길'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역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거대한 장벽'이자 '미로 찾기'였던 셈이다.

'베리어 프리(Barrier Free) 인증'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을 뜻하는 이 제도는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 모든 시설 이용자가 편안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을 짓고 인증받는 제도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이 제도에 대해 무지했다. 아니, 오히려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건물을 지을 때마다 까다로운 심사 기준을 들이대며 공사 기간을 늘리고 비용을 증가시키는, 그저 번거로운 '행정 규제'라고만 생각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까다롭게 해야 하나?"라는 볼멘소리에 마음속으로 동조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오늘 C역의 계단 앞에 서보니, 내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내가 무심코 넘겼던 그 턱 하나, 계단 몇 개가 누군가에게는 이동 자체를 포기하게 만드는 절벽이 될 수 있었다. BF 인증이 까다로운 이유는 단순히 깐깐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동안 무심하게 쌓아 올린 장벽들이 그만큼 높고 많기 때문이었다.

​장애인들이 겪는 불편함은 단순히 '조금 더 시간이 걸리는' 수준이 아니었다. 비장애인 중심의 설계 속에서 그들은 매 순간 배제되고 있었다. 인증 절차가 과도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의 건축물이 너무나 '배려'가 없었던 것이다.

​다시 환승 계단을 오른다. 공사가 끝나고 에스컬레이터가 완공되면 나의 출근길은 한결 편해질 것이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가 생긴다고 해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이동권이 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건물을 짓거나 역사를 리모델링할 때, 'BF 인증'을 귀찮은 숙제처럼 여길 것이 아니라, 당연히 갖춰야 할 기본 소양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내가 오늘 겪은 이 숨 가쁜 계단이,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오를 수 없는 산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경기 북부에서 서울까지 매일 오가는 이 길이 누구에게나 평등한 길이 되기를 바라본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우리 모두가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고민해야 할 때다.

#BF인증#출근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김주환 (leto09) 내방

전국 방방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 새로운 소식들을 남들보다 빠르게 남들보다 자세하게 전해드려 독자들에게 보다 유익한 정보를 얻을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항상 배우는자세로 임하도록 노력하는 기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