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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를 흔히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한다. 신라 천 년의 역사가 도도하게 숨 쉬고 있기 때문이리라. 경주에 들어서며 마주하는 조형물에도 저마다의 의미가 있다. 경주 IC를 지나 시내로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커다란 '얼굴무늬 수막새' 조형물이 그것이다. 이는 예쁜 장식을 넘어 따뜻한 환대를 받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 인자한 미소에 마음이 느긋해질 때쯤, 곁에 있던 아내가 신기한 듯 물었다.

"저거 수막새라는 거지? 조형물로 보면 엄청 큰데, 원래는 기와 조각 아닌가?"

건물 벽면이나 다리 난간에 붙어 있는 수막새는 사람 얼굴보다 훨씬 크고 당당했지만, 원형이 무엇인지 떠올려보니 아내의 말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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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실물을 본 적이 없어서 정확히는 모르겠네."

아내와 나는 박물관에 가서 확인해 보자며 함께 국립경주박물관으로 향했다.

 투박하게 깨져 나간 자리에 내려앉은 천 년의 세월, 그 너머로 비로소 완성된 단 하나의 미소
투박하게 깨져 나간 자리에 내려앉은 천 년의 세월, 그 너머로 비로소 완성된 단 하나의 미소 ⓒ 전갑남

상상을 뛰어넘은 작은 거인

전시실 한가운데 조명을 받으며 홀로 서 있는 수막새 실물을 마주한 순간, 우리는 잠시 숨을 멈췄다. 그토록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던 수막새는 실상 지름이 겨우 11.5cm에 불과했다. 어른 손바닥 하나에 쏙 들어올 만큼 아담하고, 심지어 아래쪽은 투박하게 깨져 나간 기와 조각이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볼수록 그 작은 미소는 사람을 압도하고 만다. 큼직한 조형물에서 느끼지 못했던 '사람의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매혹적인 미소이기 때문이다. 한참 동안 수막새를 쫓던 아내가 문득 생각난 듯 속삭였다.

"여보, 서산 마애삼존불상 생각나? 볼에 가득 퍼진 미소... 그 '백제의 미소' 말이야. 꾸밈 없이 밝고 화사해서 압권이었는데, 여기 수막새에서 본 신라의 미소는 또 다른 느낌이네!"
"나도 그런 생각 했는데, 백제의 미소가 햇살처럼 환하게 퍼지는 미소라면, 이 수막새는 무언가 속으로 깊이 갈무리된 미소 같아. 수줍은 듯하면서도 단단한 느낌이랄까?"

나는 아내에게 이 수막새가 보통의 기와처럼 틀로 찍어내지 않고, 장인이 바탕 흙판 위에 손으로 직접 눈과 코, 입을 빚어 만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예술품'이라는 사실을 들려주었다. 더욱이 이 미소는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興輪寺) 지붕 위에서 중생을 굽어살피던 기와였다고 전해진다. 수만 점의 기와 중 단독으로 보물(제2010호)로 지정된 이유도 그 정성에 있을 것이다.

이때 수막새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던 아내가 또 한마디를 보탰다.

"이것 좀 봐. 눈매가 정면이 아니라 살짝 아래를 향하고 있지? 마치 지붕 위에서 땅 위를 걷는 사람들을 다정하게 내려다보는 것 같은데 어때?"

아내의 발견에 무릎을 쳤다. 낮은 곳을 바라보는 그 따뜻한 시선은 지붕 아래를 지나는 이들의 안녕을 묻는 세심한 배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불완전하기에 비로소 완성된 천년의 얼굴

 얼굴무늬 수막새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수막새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얼굴무늬 수막새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수막새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 전갑남

아내와 나는 수막새의 깨진 부분을 유심히 살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약 저 수막새가 깨지지 않은 완전한 형태로 미소 띤 얼굴이었다면,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미소라고 할 수 있었을까?"
"글쎄, 난 지금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걸! 깨진 틈 사이로 천 년의 시간이 흐른 것 같아서 더 다정해 보이고."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작은 미소는 우리 앞에 서기까지 부침 많은 세월을 지나왔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 의사 다나카 도시노부의 손에 들려 현해탄을 건너갔으나, 박일훈 전 경주박물관장이 수십 년간 정성 어린 서신을 보내 설득한 끝에 1972년 기증 형식으로 마침내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타국에서 자기를 알아봐 줄 사람을 기다리며, 그 긴 세월의 풍파를 묵묵히 견뎌낸 것이다.

그 인내의 시간을 떠올리니 수막새의 얼굴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완벽한 대칭이 아니기에 더 인간적이고, 깨진 턱 너머로 풍파를 다 겪어낸 여유가 느껴졌다. 문득, 이렇게 낮은 곳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상대의 경계를 허무는 여유로운 웃음을 슬쩍 내비쳤기에, 신라는 천 년이라는 긴 역사 속에서 번영을 누렸던 게 아닌가 싶다.

기와에도 암수가 있다는 나의 설명에 아내는 "그럼 이 미소도 혼자가 아니었겠네. 짝꿍인 암막새랑 같이 지붕 위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있었겠구나"라며 웃어 보였다. 박물관 밖으로 나오니 거대한 왕릉도, 높이 솟은 탑도 결국은 이 작은 수막새에 담긴 마음처럼 누군가의 간절함이 모여 만들어진 시간의 조각들로 보였다.

지붕 위 암막새와 수막새처럼 우리도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며 저 미소를 닮아가고 싶다는 기분 좋은 욕심이 생긴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발견한 이 작은 유물, 수막새 하나가 이토록 큰 울림을 줄 줄이야!

덧붙이는 글 | 지난해 12월 28일부터 같은 달 30일까지 경북 일원을 여행하고 다녀왔습니다.


#경주#경주국립박물관#수막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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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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