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1월 17일 토요일(현지시각), 그린란드 누크에서 시위대가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미국 영사관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연합뉴스 = AP
17일(현지시간)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수천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와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손에 넣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 참여자들은 덴마크와 그린란드 국기를 들고 미대사관 앞까지 행진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린란드에서 손을 떼라"고 요구했다. 같은 시위는 덴마크 내 여러 도시에서 열렸다.
같은 날 그린란드의 수도인 누크에서도 시위가 있었다. 시위대 맨 앞에는 옌스 프레데리크 니엘센 총리가 섰고 시위 참여자들은 그린란드를 손에 넣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시도에 우려를 표하면서 그린란드 국기와 "그린란드는 판매용이 아니다"라는 팻말을 들고 행진했다. 한 시위자는 CNN 기자에게 트럼프의 발언은 받아들일 수 없는 "공격"이라고 했고, 또 다른 참여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손에 넣는 사람이라 이 상황이 점점 "현실적"으로 느껴지고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행진을 하기 전에는 그린란드 원주민인 이누이트 언어로 된 노래와 시가 낭송되기도 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덴마크와 그린란드의 시위는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인 그린란드 획득 시도에 대해 그린란드와 덴마크 시민들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세계에 자신들의 의견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어서 의미가 있다. 트럼프의 압박과 협박이 계속되면 비슷한 시위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덴마크 획득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16일 백악관 회의에서는 "미국의 그린란드 획득에 반대하는 국가들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밝혔고 하루 뒤인 17일엔 이 구상을 구체화했다. 그는 사회관계망을 통해 그린란드 획득에 반대하는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프랑스, 독일, 영국, 네덜란드, 핀란드에 2월 1일부터 1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며 미국의 "완전하고 전체적인 그린란드 구매"가 이뤄지지 않으면 "6월 1일부터는 25%의 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우방국이고 나토 회원국인 국가들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협박성 발언에 대해 유럽 국가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스타머 영국 총리는 성명을 통해 "집단 안보를 추구하는 나토 동맹국들에게 (그린란드 획득에 반대한다고) 관세를 부과하는 건 완전히 잘못된(completely wrong)"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또한 "관세 협박은 수용할 수 없는(unacceptable)" 것이라며 "우리는 어떤 협박에도 동요되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 언급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또한 사회관계망을 통해 "관세는 북미와 유럽 간 관계를 손상시키고 위험한 수준으로 하강시킬 것"이라며 "유럽은 주권을 지키기 위해 연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큰소리 치는 트럼프... 그 앞의 거대한 '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AP=연합뉴스
미국의 그린란드 획득 시도와 관련해 전체적인 상황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기선을 제압하고 그에 따라 향후 덴마크, 그린란드와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공격 작전 성공을 통해 세계에 자신의 주장과 목표가 허황된 소리에 그치지 않고 원하는 것은 결국 이루고야 만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줬으니 말이다. 그러나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오히려 사면초가 상황에 처했음을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장 큰 압박이 되는 건 그린란드와 덴마크 시민들의 본격적인 반대 의사 표명이다. 전 세계가 아는 당사자들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그린란드 획득을 위한 무력 행사나 구매를 밀어붙이기 건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에게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계속될수록 시위 규모는 커질 것이고 시위가 전 유럽으로 확산할 수도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유럽 국가들의 노골적인 반대 입장 표명이다. 미국과 나토 동맹으로 엮어있을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유대감이 강한 유럽 국가들의 강한 반대는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국제정치 현안들을 다룸에 있어서 거의 항상 유럽 국가들과 협력해야 하는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도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또 다른 큰 부담은 미국 내 여론이다. 15일 CNN은 자사의 여론조사 결과 미국인 중 25%만이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획득 시도에 찬성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결과에 따르면 공화당 성향 또는 지지자 중에서도 의견이 반으로 갈려서 50%가 그린란드 획득을 지지하고 나머지 50%는 반대했다. 민주당 성향 또는 지지자 중에서는 94%가 반대했고 그중 80%는 강한 반대를 표명했다. 양당 중 어디도 지지하지 않는 중도층에서는 80%가 반대했다.
1월 12~13일 로이터와 입소스가 실시한 미국인 여론조사에서도 그린란드 획득에 찬성하는 의견은 17%에 불과했다. 47%는 반대했고 36%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미국이 무력으로 그린란드를 획득하는 것에 대해서는 단지 4%만 찬성했고 71%가 반대했다. 이 질문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비율은 25%였다.
미국 의원들도 노골적으로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 16일 11명의 미국 의원들은 코펜하겐을 방문해 덴마크 의원들을 만났다. 방문단에는 두 명의 공화당 상원의원이 포함됐다. 워싱턴포스트는 방문단이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이 미국 내에서 도전을 받고 있음을 분명히 발혔다고 보도했다. 리사 머코브스키 공화당 상원의원은 덴마크 의회 방문 후 기자회견에서 "그린란드를 자산이 아니라 우리의 동맹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머코브스키 의원은 그린란드 합병 시도를 막는 초당적 법안을 발의한 의원 중 한 명이다.
하원의장인 공화당의 마이크 존슨 의원 또한 이미 그린란드에 대한 무력 사용 가능성을 부인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더힐에 "어떤 군화발도 그린란드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복 관세를 언급하기 하루 전인 15일에도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린란드에 대한 어떤 무력 개입도 예상하지 않는다"면서 "외교 채널이 가동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적어도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무력 개입은 할 수 없는 상황임을 말해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군사 공격과 마두로 체포, 그후 베네수엘라 정권과 석유산업에 대한 통제권을 손에 넣은 데 자신감을 얻은 모습이다. 그러나 그린란드는 베네수엘라가 아니고 덴마크와 그린란드에는 마두로 같은 독재자도 없다. 더군다나 덴마크는 나토 동맹으로 모든 유럽 국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고 미국 의원들조차 유럽의 동맹국들과 관계가 어긋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인들도 그린란드 획득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는 국제사회와 국제정치에서 주도권을 가진 국가 모두가 미국에 반대하고 있고, 미국 내에서도 대다수가 반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사면초가에 빠진 모습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보여준 것처럼 여론도 동맹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뜻을 밀어붙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꼭 미국에 이익이 될 거란 보장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가지려는 이유 중 하나는 그린란드가 가진 광물 등의 천연자원 때문이란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자원을 얻기 위한 개발은 거의 불가능하고 '환상'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기후변화가 심해져 그린란드 땅이 녹는다고 광산 개발 등이 쉬워지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토양이 더 불안정해지고 산사태 등의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북극연구소(Arctic Institute)의 상임연구원인 말테 험퍼트는 CNN에 "그린란드를 미국의 희토류 산지로 만든다는 건 과학 소설이다. 그건 완전히 미친 짓"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달에 광산을 만드는 것보다 힘들다"고 덧붙였다. 그는 "기후변화는 개발이 쉽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북극이 예전보다 덜 얼 뿐이다"라고 말했다. 덴마크 국방부에서 일했던 펑크 커크가드 또한 CNN에 트럼프 대통령이 설사 그린란드를 얻더라도 자원을 개발하려면 너무 많은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에 사업이 "매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한 주장대로 미국의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면 그 또한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정말 그것을 원하는지도 의문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국방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 나토 회원국들에게 GDP의 5%까지 국방비 증액을 압박했던 것과는 모순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의 천연자원에 더 관심이 많다는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천연자원이야말로 가장 손에 넣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인 것이다.
여러 가지 면을 본다면 그린란드를 갖겠다는 계획을 포기하는 게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미국에게도 나은 일이다. 하지만 국제정치도, 국내 정치와 여론도 무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방에서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결국 트럼프 대통령을 사면초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건 자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