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미 대사관 앞에서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격에 항의하는 한 시위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얼굴 모형을 들고 있다. ⓒ 로이터 연합뉴스
제국주의는 박물관에 있는 단어처럼 느껴지곤 한다. 19세기 열강이 식민지를 나눠 갖던 시대는 끝났고, 지금은 주권과 국제법이 지배하는 시대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6년 1월의 뉴스는 이 확신을 흔든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군사 작전으로 "체포해 미국으로 데려왔다"고 발표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를 미국이 손에 넣는 것 말고는 "용납할 수 없다(unacceptable)"는 취지로 말하며 나토(NATO)까지 거론했다.
이 두 사건은 단순히 "힘센 나라가 무리한다"는 이야기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구성주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해의 빛을 발한다. 정치는 돈과 군사력 같은 물질만으로 굴러가지 않으며, 사람들 사이에 공유되는 의미의 틀이 함께 작동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1. 구성주의의 핵심은 "정치는 의미를 통해 작동한다"는 주장이다
구성주의는 정치 및 행정을 연구하는 넓은 접근으로서, 사람들이 정치적 행동을 하기 위해 아이디어, 규범, 정체성, 담론, 관행, 문화같은 것을 사회적으로 만들어내며('구성하며') 그 결과 정치가 돌아가는 해석적 맥락이 형성된다고 본다.
이 관점에서 중요한 주장은 하나 더 있다. 정치에서 당연해 보이는 것들—주권국가, 시장과 세계화, 민족주의, 민주주의 같은 것들—도 "자연물"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인간의 해석과 상식위에 세워져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흔히 오해가 생긴다. "그럼 현실은 없다는 말인가"라는 질문이다. 구성주의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현실이 정치로 변환되는 과정, 즉 '현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결정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본다. 같은 사건도 어떤 언어로 불리느냐에 따라 다른 정치가 된다. "안보 위기"로 불리면 군사 대응이 정당해지고, "인권 문제"로 불리면 제재와 규범의 언어가 앞선다. 구성주의는 이 이름 붙이기와 정당화의 정치를 분석한다.
2. 제국주의는 탱크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정당화의 언어"가 먼저 작동한다
제국주의를 과거형으로만 기억하는 이유는 "정복"이라는 노골적 형태만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의 강압은 종종 더 세련된 옷을 입는다. "문명화", "치안", "테러와의 전쟁", "마약과의 전쟁", "국가안보", "동맹의 안전" 같은 언어가 동원된다. 구성주의는 이런 언어를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실제로 행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규범과 정체성의 장치로 본다.
이제 트럼프 정부의 두 사례를 이 렌즈로 읽어본다. 핵심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만이 아니라, "그 일이 가능하도록 세계가 어떻게 정의되었는가"를 보는 데 있다.
3. 사례 1: '주권국가의 대통령'이 '범죄자'로 재정의될 때
미국은 2026년 1월 3일 베네수엘라에서 군사 작전을 수행해 마두로 대통령(및 배우자)을 체포해 국외로 이송했다. 이 작전은 국제법 논쟁을 즉시 촉발했고, 미 법무부 내부에서조차 국제법 위반 여부를 정면으로 결론내리지 않은 채(혹은 "결론이 불필요하다"는 논리로) 국내법적 권한을 중심으로 정당화하려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구성주의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은, 이 행동이 단지 군사력의 발현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범주 바꾸기'를 동반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원칙적으로 타국 주권의 상징이지만, 그를 "마약범죄/나르코-테러"의 피의자나 국제적 범죄자로 규정하면, 행동의 문법이 바뀐다. "외교"나 "전쟁"이 아니라 "법 집행"의 외양을 띠게 된다. 실제로 미국은 이전부터 마두로 체포로 이어지는 정보에 거액의 현상금을 걸어 왔고, 2025년 8월에는 그 보상금을 최대 5,000만 달러로 상향했다. 현상금은 단순한 금액이 아니라 메시지다. 상대를 '정상적 외교 상대'가 아니라 '현상수배 대상'으로 위치시킨다. 이 순간 국제정치는 "국가 대 국가"의 관계에서 "질서 유지자 대 범죄자"라는 서사로 이동한다.
여기서 제국주의적 그림자가 드리운다. 강대국이 타국 지도자를 "범죄자"로 규정하고 군사적 수단으로 체포하는 행위는, 주권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 국제질서가 합의한 규칙(주권, 불간섭)이 약화될 때, 그 빈자리를 메우는 것은 대개 "누가 규칙을 해석하고 집행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권력 관계다. 구성주의는 바로 이 권력 관계가 법·안보·도덕의 언어를 통해 정당화되는 방식을 추적한다.
4. 사례 2: 그린란드를 '영토'가 아니라 '전략 자산'으로 말하는 순간
그린란드에서도 비슷한 재정의가 일어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6년 1월 중순 그린란드를 미국이 가져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고, 그린란드가 미국 손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표현까지 사용했다고 보도되었다. 또한 그린란드 확보가 미국의 국가안보와 연결되며, 나토가 "그 길을 주도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도 함께 나왔다. 이에 대해 그린란드와 덴마크 지도부는 공개적으로 반발하며, 그린란드가 미국의 소유나 지배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여기서 구성주의적 포인트는 "영토를 어떻게 말하는가"에 있다. 그린란드는 덴마크 왕국 내 자치령이며, 주민의 자기결정과 동맹 질서 속에 놓인 정치공동체다. 그런데 '국가안보를 위한 필수 거점'이나 '미사일 방어 구상의 핵심' 같은 언어가 앞서면, 그린란드는 어느새 정치공동체가 아니라 확보해야 할 지리적 자산으로 변한다. 영토 욕망은 종종 "욕심"이라기보다 "안보의 상식"으로 포장된다. "러시아나 중국이 영향력을 넓힐지 모른다"는 위협 서사는 그 포장을 단단하게 만든다. 이런 구성(construct)은 동맹국의 주권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강대국의 관리가 더 안전하다"는 오래된 제국주의적 상식을 되살릴 수 있다.
5. 결국 싸움은 정책이 아니라 '현실을 규정하는 말'에서 시작한다
구성주의는 트럼프 개인의 성향만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왜 이런 말이 가능해졌는가, 그리고 왜 어떤 청중에게 설득력을 얻는가라는 질문이다. 마두로 체포는 "주권의 문제"가 아니라 "범죄자 처벌"로 포장될 때 지지를 얻기 쉽다. 그린란드 요구는 "영토 침탈"이 아니라 "안보 투자"로 말해질 때 그럴듯해진다. 이처럼 제국주의적 행위는 종종 '제국주의'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법과 안보, 질서와 정의의 언어로 등장한다.
그래서 구성주의는 정치 현실을 이렇게 바꿔 읽게 한다. "힘이 있으니 한다"에서 멈추지 않고, "힘이 작동하기 위해 어떤 의미가 먼저 깔렸는가"를 본다. 정치의 무대 뒤에는 늘 정체성의 이야기(우리는 누구인가), 규범의 이야기(무엇이 옳은가), 위협의 이야기(무엇이 위험인가)가 깔린다.
이 이야기가 바뀌면, 같은 군사력도 다른 행동을 낳는다.
6. 마무리: 구성주의가 주는 대중적 교훈은 "말을 정치로 보라"는 것이다
오늘의 세계는 다시 거칠어지고 있다. 앞으로 구성주의가 "좋은 규범"뿐 아니라 외국인 혐오, 자급자족적 폐쇄성, 포퓰리즘 같은 '나쁜' 규범과, 보호무역·산업정책 같은 경제 아이디어의 부상, 정체성의 충돌, AI 같은 기술 변화의 해석 맥락을 더 다루게 될 것이다. 트럼프의 두 사례는 이 전망을 '교과서 밖'에서 보여주는 장면처럼 보인다. 누군가를 범죄자로, 어떤 땅을 자산으로, 어떤 행동을 법 집행으로, 어떤 욕망을 안보로 부르는 순간 세계는 재배열된다. 구성주의는 그 재배열의 문법을 읽어내는 방법이다.
정치를 더 정확히 이해하려면 "무슨 정책을 내놨나"만 묻지 않아야 한다. 그 정책이 가능해지도록 사람들이 공유하게 된 상식과 정당화의 언어가 무엇인지도 물어야 한다. 제국주의는 탱크로만 오지 않는다. 먼저 말로 온다. 그리고 그 말이 상식이 되는 순간, 행동은 이미 절반쯤 성공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