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답사한 대구교육대학교 정문 건너편 인도에 '영선못 터'라는 빗돌이 서 있다. 낡은 회색 바탕에 글자까지 흐릿해 읽기 어렵다. 그래도 정성껏 판독해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영선못이 있던 자리는 현재의 영선시장과 그 일대 주택가로 규모는 2만여 평 정도였다. 영선못은 시가지에서 가까운데다 물이 많고 주변 경치가 좋아 시민들이 여름에는 낚시와 수영, 겨울철에는 얼음지치기 등을 즐기는 휴식처로 사랑을 받았으며, 가뭄 때에는 농사에 이용되었고 장마철에는 홍수 조절 역할을 했다. 그 후 도심지 개발에 따른 매립 공사로 못은 없어지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비문은 영선못이 있던 위치, 규모, 시민들이 많이 찾은 까닭, 못의 현실적 용도, 매립 사유를 차례차례 설명하고 있다. 못 조성 시기와 매립 연도도 밝혀 놓았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못에 얽힌 재미있은 이야기 두 가지를 덧붙여 두었으면 금상첨화였을 법하다.
최계복 최초 작품 '연선못의 봄' 촬영지
첫째 이야기는 최계복(1909~2002)과 관련된 것이다. 최계복은 지난 2018년 4월 전국 언론의 주목을 받은 한국 1세대 사진작가이다. 기사의 요지는 대략 "사진을 예술로 끌어올린 작가로 평을 받고 있는 사진작가 최계복이 1930년대 인화한 사진원본 81점과 필름 169점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됐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기사의 본문에 영선못 이야기가 나와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유족이 기증한 작품은 "1933년 최계복 작가가 첫 촬영한 '영선못의 봄'을 포함한 원본사진 81점과 원본필름 169점(원판 네거티브)"으로 "국립현대미술관 현재 소장 사진작품 총 1013점의 대부분이 1950년대 이후 것인데, 1930~40년대의 근대 사진을 대거 기증받은 것은 이번이 최초"라고 했다.
영선못을 찍은 '영선못의 봄'이 최계복의 최초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영선못 터 빗돌을 세울 때 최계복의 사진을 윗부분에 싣고, 그 아래에 해설을 붇여두었으면 답사자들의 관심을 증폭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국립현대미슬관이 공개한 '영선못의 봄' 사진에도 "최초 작품"이라는 문구가 밝혀져 있다.

▲국립현대미술과 소장 '영선못의 봄'(왼쪽)과 영선못 터 표지석(오른쪽) ⓒ 국립현대미술관, 김명희
둘째 이야기는 독립운동가 현정건과 현계옥에 관한 것이다. 현정건은 <운수 좋은 날>을 남긴 소설가 현진건의 형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등으로 활동하다 일제에 붙잡혀 순국한 독립지사이다. 그의 정인 현계옥은 의열단 최초의 여성 단원이다.
현정건은 17세이던 1910년 중국으로 망명했다. 이른 나이에 상해로 간 것은 본인의 유학 의지도 있었지만 아버지 현경운의 강권이 근본 요인이었다. 현경운은 아들이 동성동본이자 기생인 현계옥과 연애를 하는 데 크게 화가 나서 부랴부랴 결혼시킨 후 중국으로 내쫓았다.
두 사람은 생이별을 하기 이전에는 영선못에서 밤마다 만났다. 그 사실은 <동아일보>가 1925년 11월 3일 보도함으로써 역사의 사실이 되었다. <동아일보>가 그렇게 한 데에는 매우 유명한 기생이었던 현계옥이 압록강을 넘어가 최초의 여성 의열단원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국내외의 대단한 뉴스감이 되었던 것이다. 기사의 해당 부분을 읽어보면 아래와 같다.

▲동아일보는 1925년 11월 3일 현계옥과 현정건이 영선못에서 밤마다 만났다고 보도했다. ⓒ 국사편판위원회
"(두 사람은) 남의 이목이 두려워서 그(현정건)의 집에서 십 리나 되는 영찬못(영선못)이란 연못가에서 밤마다 밤마다 시간을 정하여 두고 보고싶은 사람을 찾아 애타는 마음을 녹였다 하니 그들의 한번 포옹에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최계복의 사진과 촬영 내력을 영선못터 안내 빗돌에 새겨두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현진건과 현계옥의 애잔한 연애 이야기도 빼늫을 수 없다. 못의 이용 가치, 그리고 최계복, 현정건, 현계옥이 모두 등장하는 비문을 직접 한번 작성해 본다.
"이곳 영선시장과 주택가 일대 2만여 평은 영선못이 있던 자리이다. 영선못은 조선시대에 조성된 이래 농업 용수로 쓰였고, 가뭄과 홍수 조절 기능도 했다. 또 시내에서 가깝고 물이 많은데다 주변 풍광이 아름다워 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우리나라 제1세대 사진작가 최계복의 첫 작품 '영선못의 봄'이 이곳에서 탄생했고, 저명한 독립운동가 현정건('운수 좋은 날' 소설가 현진건의 형)과 최초 여성 의열단원 현계옥이 중국으로 망명하기 이전 연애 장소로도 애용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도시 확장 과정에서 1970년 매립되었고, 지금은 터만 남았다."
대구교육대학교 정문 앞에 있는 영선시장, 아니 '영선못 터'를 찾는 분들을 위해 영선못의 탄생과 멸실, 그리고 최계복, 현정건, 현계옥 이야기를 소개해 드렸다. 사람이 살았거나 살고 있는 자리는 어디든 역사가 서려 있다. 영선못 자체는 없어졌지만 영선못의 역사는 오늘도 남아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