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숙 강경상업고등학교 운영위원장이 학부모회 시절부터 3년째 이어오고 있는 드림스타트 아동 후원 활동과 그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서준석
"요즘 세상에 굶는 아이가 어디 있느냐고들 합니다. 하지만 제도 밖에서 조용히 배고픈 아이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라면 한 그릇은 음식이 아니라 '너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신호입니다."
지난 23일 논산시 취암동 주민자치회 사무실에서 만난 조현숙 강경상고 학교운영위원장의 목소리에는 단호하면서도 따뜻한 진심이 묻어났다.
조 위원장은 최근 논산시 드림스타트를 찾아 라면 10박스를 전달했다. 이번 기탁은 그가 학부모회장을 맡았던 2023년부터 3년째 이어져 온 사업이다. 올해는 운영위원회와 학부모회가 뜻을 모아 이어갔다.
처음은 크지 않았다. 교육청 학부모 지원 사업을 운영하며 남은 예산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던 중, 조 위원장은 학교 안에서 '드러나지 않는 아이들'을 봤다.
법적 기준에는 닿지 않지만, 현실은 넉넉지 않은 학생들이었다. 고등학생이라는 이유로, 혹은 자존심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강경상업고등학교 학부모회와 운영위원회가 논산시 드림스타트에 라면을 기탁하는 모습. 위에서부터 2025년(위), 2024년(좌), 2023년(우) 순으로, 학부모회 시절 시작된 조현숙 운영위원장의 나눔이 3년째 이어지고 있다. ⓒ 조현숙
그래서 선택한 방식이 라면이었다. 방학 동안 아이들이 스스로 챙겨 먹을 수 있고, 부담 없이 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한 끼였다. 학교 안에서는 조심스럽게 전달하고, 남은 물품은 드림스타트로 보냈다. 한 번 시작한 나눔은 중간에 끊기지 않았다. "안 주면, 아이들이 또 배고플 것 같았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기부는 한 학생의 사연을 겪으며 더욱 굳어졌다. 2023년, 부사관을 꿈꾸던 한 고3 학생의 어머니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조 위원장은 그제야 그 학생이 어머니와 단둘이 살며 아르바이트로 월세를 감당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상주도 없이 홀로 영정사진을 들고 원룸으로 돌아가야 했던 아이였다. 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 달라"며 눈물을 삼켰다.
조 위원장은 학교와 동창회, 지역사회를 잇는 연결고리가 됐다. 동창회의 자발적 모금과 교사들의 참여가 이어졌고, 총 980만 원의 성금이 모였다. 학생은 자립의 발판을 마련했고, 현재는 해군으로 복무 중이다.
"입대하기 전 '어머니, 저 잘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인사하러 왔어요. 그 한마디에 모든 수고가 보상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조 위원장은 대구 출신이다. 이혼 후 세 자녀를 데리고 10년 전 경북 영천을 떠나 논산으로 왔다. 연고는 초등학교 동창 한 명뿐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이어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큰딸은 해병대 부사관으로 임관해 표창을 받았고, 둘째는 강경상업고에 재학 중이다.
학교 활동은 자연스럽게 지역 봉사로 이어졌다. 현재 그는 논산 자율방범대원, 취암동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하며 야간 순찰과 취약계층 물품 전달에 힘을 보태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가정을 찾아 전기장판과 반찬을 배달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조 위원장의 생활 신조는 단순하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행복하게 살자." 그는 자신의 선행이 드러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나눔의 선례를 남기는 일만큼은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떠난 뒤에도 누군가 이 바통을 이어받길 바라서다.
"라면 하나로 세상이 바뀌진 않죠. 하지만 아이들이 굶지 않는 하루는 만들 수 있어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라면 상자 안에는 식료품만 담긴 게 아니었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에게 건네는 가장 현실적이고 따뜻한 약속이었다. 낯선 이방인으로 논산에 왔던 그는 이제, 이 도시 아이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논산포커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