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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이제 복학하면 알바 안 할 거지?"
"응, 이제 3학년이니 공부하기도 바쁘고. 군 적금 모아놓은 거랑 지금 알바비 하면 용돈은 될 거 같아."
며칠 전, 3교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과 복학 후 용돈 문제로 마주 앉았다. 삼 개월 전 제대하고 복학을 앞둔 녀석이 1, 2학년 때처럼 주 5일에, 야간 근무까지 감당하며 일하는 게 안쓰러워 내가 먼저 운을 뗐다.
"그래, 이젠 학교 생활도 바쁠 텐데 알바는 무리지. 아빠가 많이는 못 줘도 교통비 정도는 매달 줄게. 20만 원 정도면 되겠지?"
"아냐, 됐어 아빠. 지금 모아놓은 돈이면 충분해. 정 안 되면 그때 얘기할게."
한사코 손사래를 치는 아들을 보며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졌다. 제법 굵어진 목소리로 "알아서 하겠다"라고 말하는 녀석에게서 독립심과 부모를 향한 배려가 동시에 느껴졌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대견하다가도, 그 철듦이 혹여나 부모의 주머니 사정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탓은 아닐까 싶어 마음이 아렸다. 결국 나는 끈질긴 설득(?) 끝에 매달 20만 원의 용돈을 강제로 쥐여주는 것으로 녀석과 합의를 보았다.

▲행복한 가족성인이 된 두 아이들과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가족의 모습 ⓒ AI로 생성한 이미지
아들이 방으로 들어간 뒤, 나는 습관처럼 인터넷 창을 켰다. 요즘 대학생들의 현실이 궁금해서였다. 2024년 4월 알바몬과 알바천국이 대학생 1,18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생들의 월평균 용돈은 약 50만 8074원이었다. 학비와 월세를 제외한 순수 생활비가 그렇단다. 심지어 그들이 생각하는 '적정 용돈'은 그보다 10만 원가량 많은 60만 5천 원 선이었다.
2년이 지났는데 내가 아들에게 건넨 20만 원은 그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밥값과 커피값이 지출의 절반을 넘고, 교통비와 통신비가 그 뒤를 잇는다는 통계를 보니, 아들이 말한 "모아둔 돈으로 충분하다"는 말이 얼마나 큰 다짐인지 새삼 느껴졌다.
사실 우리 집 경제 사정을 들여다보면 나 역시 할 말이 많으면서도 없다.
2025년 8월 발표된 통계청과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26년 기준 대한민국 중산층(중위소득 100%) 4인 가구의 월평균 세전 소득은 약 649만 원이다. 세금을 제하고 손에 쥐는 돈은 대략 560만 원 남짓. 하지만 통계청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소득 중위권 가구의 월평균 소비 지출은 400만~460만 원에 육박한다. 숨만 쉬고 살아도 나가는 고정비와 생활비를 제하면, 미래를 위해 저축하거나 여유 있게 쓸 수 있는 돈은 고작 100만 원 남짓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 빠듯한 셈법 속에서 나는 4인 가족의 생계를 홀로 책임지는 '외벌이 가장'이다. 큰 녀석이 스무 살이 되자마자 주말 알바를 시작해 스스로 용돈을 벌었을 때, 나는 그것이 기특함이자 가슴 한켠의 빚이었다. 그런데 이제 막 대학 입학을 앞둔 둘째 딸아이마저 오빠의 뒤를 따르듯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아빠, 나도 이제 성인이니까 내 용돈은 내가 벌어볼게."
씩씩하게 말하는 딸아이의 모습 뒤로, 선택이 아닌 운명처럼 일찍 경제 전선에 발을 디디게 한 건 아닌지 부모로서 복잡한 심경이 든다.
아이들에게 어릴 적부터 용돈을 주며 경제관념을 심어주려 노력해 왔다. 하지만 성인이 된 아이들이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모습을 볼 때면, 그 '경제관념'이라는 것이 어쩌면 부모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한 생존 본능은 아니었을까 자문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고 싶다. 3교대 공장에서 흘린 아들의 땀방울이, 이제 막 사회를 경험하는 딸아이의 고단함이, 단순히 '돈'을 버는 행위를 넘어 삶의 무게를 지탱하는 근육이 되어줄 것이라고.
'아들, 딸. 아빠가 다 채워주진 못해도, 너희가 숨 고를 틈이 필요할 땐 언제든 그 빈틈을 메워주는 언덕이 되어줄게.'
오늘따라 출근길 발걸음이 더 가볍게 느껴진다. 나의 빈틈을 성숙함으로 채워주는 아이들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기꺼이 이 무게를 짊어질 수 있는 게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