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9시~오후 6시는 대한민국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공유하는 업무시간입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그 외 일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입니다. 농촌에는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잘 보이지 않는 새벽 아침을 여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의 '나인 투 식스' 노동이 그나마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월간 옥이네>는 이처럼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노동과 애환을 들어봤습니다.

▲김밥세상 꼬마김밥 ⓒ 월간옥이네
오전 6시 30분을 넘긴 시각, 아직 동이 트지 않아 어둠이 짙고 고요한데... 그 어둠 속 유난히 더 반짝이는 풍경이 있으니, 바로 충북 옥천군 옥천읍 거리를 깨우는 이들이다. 편의점, 방앗간,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카페 그리고 김밥 가게. 옥천읍 거리에서 손에 꼽을 숫자의 가게들만이 환하게 내부를 밝혔다. 이들의 아침 풍경은 어떨까? '김밥세상 꼬마김밥'에 찾아가 이토록 이른 시간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의 모습을 담아봤다.
세 식구가 여는 새벽
옥천읍 금구리, 금구사거리에 위치한 김밥세상 꼬마김밥은 해가 뜨기도 전 하루 장사 준비를 마쳤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권명숙(69), 오병도(70), 오수현(36)씨가 각자의 위치에서 부지런히 김밥을 말고 있다.
"세 식구가 다같이 나와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차 타고 가게로 출근해서 6시쯤이면 가게 문을 열어요. 재료 준비부터 시작해 김밥 말고, 미리 포장해두고 하지." (권명숙씨)
30여 년간 옥천읍에서 요식업을 해왔다는 권명숙씨. 재료 준비는 보통 그가 도맡아 하는데 볶음류는 보통 전날 저녁에, 나물 무침은 아침에 하는 편이다. 재료 수급은 가능한 옥천 로컬푸드를 우선으로, 쌀은 한 달 20kg짜리를 45~50포 사용하니 어림잡아 월 1만 인분 내외인 셈. 권명숙씨 홀로 운영을 시작했던 식당 일을 이제 아들, 남편과 함께하고 있다.
"처음 식당일을 시작한 건, 내가 30대 때예요. '3분 김밥'이라고 지금 둘셋노래연습장 안쪽(삼금로4길 31) 자리에 있었는데, 거기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일을 시작했어요. 지금 가게는 5년 전 새로 문을 열었죠."
남편 오병도씨는 직장을 퇴직한 이후로, 둘째 아들 오수현씨는 군대 전역 후 굴국밥 식당 때부터 어머니를 도와 일을 한다고. 가족에서 이제 든든한 동업자로 확장된 세 사람이다. 옹기종기 모여 일하는 듯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세 사람 각자의 위치와 역할이 있다. 오수현씨는 뒤쪽 조리대에서 꼬마김밥을 전담해 만들고, 권명숙씨는 가운데에서 일반 김밥을 꾹꾹 눌러 만들고, 오병도씨는 기계를 활용해 김밥을 자르고 또 포장한다.
곧 차가운 공기를 이끌고 손님이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대부분 이른 아침 일터로 나서는 이들이다. 손님 중에는 익숙한 얼굴들도 있다. 그 중엔 건설 현장으로 가는 이도, 묘목 농원, 휴게소로 나가는 이들도 있다. 휴게소에 물품 유통을 하고 있는 김은주(46)씨는 이날 출근하는 길에 가게를 찾았다.
"전국 휴게소에 통감자 재료를 유통·납품하고 있는데, 고속도로 나가기 전에 종종 여기서 김밥을 사 가요. 김밥 사서 직원들이랑 아침으로 나눠 먹으려 하죠. 여기 아니었더라면 이 시간에 아침 식사 대용 찾기가 정말 어려웠을 거예요. 여기가 가격도 싸고 맛있어서 자주 와요."
오전 7시를 갓 넘긴 시간임에도 손님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그때마다 세 사람은 기운찬 얼굴로 방금 포장한 김밥을 건넨다. 매일 고정적으로 김밥을 주문해두는 손님들도 있다.
"오시던 분들은 계속 오시죠. 지금은 겨울철이라서 손님이 좀 적은 편이에요. 그래도 이렇게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으니 아침이 바빠요(웃음). 옥천에서도 오시고, 대전·영동·보은에서도 오시고, 가끔은 멀리 사시던 분들이 고향 들렀다가 사가는 분들도 계시고..." (권명숙 씨)
30년 동안 500원 올랐다

▲'김밥세상 꼬마김밥'의 권명숙(69), 오병도(70), 오수현(36)씨 ⓒ 월간옥이네
단골손님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으니 바로 "싸고 맛있다"는 것. 메뉴판과 가격표를 보니 정말 일반 김밥이 1500원, 이 외 꼬마김밥 9줄을 비롯해 참치·참치땡초·치즈·김치 김밥은 모두 3500원으로, 일반적인 편의점 김밥보다도 저렴한 가격이다.
"원래 1천 원, 3천 원씩이었는데 2년 전부터 전부 500원씩 오른 거예요. 물가가 너무 올라서 안 되겠더라고. 가격과 상관없이 재료나 맛에 무척 신경 쓰는 편이에요." (권명숙씨)
그의 재료나 맛, 가격에 대한 까다로운 기준은 때로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할 정도다.
"대부분 김밥집에서 재료 손질한 뒤 냉동해둔 것을 쓰곤 하거든요. 그런데 아내는 꼭 전날, 당일에 손질한 재료만 써요. 그러려면 더 수고스러운 것이 당연한 일인데, 그 고집은 말릴 수 없어요." (오병도씨)
"무엇이든 대충하지 않으려 하죠. 30년 전 처음 김밥 가게 열었을 때 김밥 한 줄에 1천 원이었어요. 더러 사람들이 '왜 가격을 올리지 않냐'고 말씀들 하시는데 시대는 달라졌어도 우리 가게는 달라지고 싶지 않아요. 처음 가격과 너무 큰 변화는 없었으면 좋겠더라고요. 남는 게 적긴 해도, 그만큼 더 많이 팔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죠." (권명숙씨)
옥천읍 '천냥김밥'의 원조
권명숙씨는 옥천읍 '천원김밥의 원조'이기도 하다. 과거 3분 김밥에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접했던 것을 시작으로, 현 김밥천냥(옥천시내버스 종점 인근) 자리에서 개인 김밥 가게를 열었던 것. 그는 초창기 상호를 '맛있는나라'로 정해 운영하다가 곧 '김밥천냥'으로 상호를 바꿨다. 지금의 김밥천냥은 권명숙씨의 뒤를 이어 운영되고 있는 것이라고.
"2평 남짓 좁은 공간이었죠. 아기를 업고 옥천읍 시내를 다니는데 그 자리가 비어있더라고. 자리는 좁아도 길목이 좋았어요. 시골에서 아들 둘 키우는데, 농사는 못 하겠고 돈 벌 방법이 마땅치 않잖아요. 당시에 1200만 원을 주고 그 자리를 사서 김밥이랑 어묵꼬치를 팔았어요. 장사가 꽤 잘 됐어요. 사람들이 막 줄 서서 먹었을 정도니까(웃음)."
그렇게 13년간 김밥천냥을 운영하던 권명숙씨는 시부모님의 치매로 잠시 가게 영업을 중단, 당시 가게에서 함께 일하던 이들에게 자리를 넘겼고 곧 뒤쪽의 굴 국밥집('굴세상') 문을 열어 10년가량 운영했다. 코로나19의 유행과 함께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폐업, 5년 전 지금의 자리에 새로 김밥 가게를 연 것이라고.
"이 가게 문을 열 때, 김밥천냥 사장님들하고도 얘기를 나눴어요. 내가 여기에 김밥 가게를 다시 열려고 하는데 괜찮겠느냐고요. 그랬더니 '(우리 가게와) 거리가 좀 있으니 괜찮겠다'고 하더라고(웃음). 그렇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온기로 여는 아침

▲'김밥세상 꼬마김밥' 외관 ⓒ 월간옥이네
아들 오수현씨는 본래 굴국밥 집을 운영할 때부터 일손을 도와왔다. 군대 전역 후 취업을 고민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부모님과 함께 가게를 운영하기를 택했다는 그다.
"취업을 고민하던 시기에 굴국밥 일을 시작했고, 곧 지금의 김밥 가게가 문을 열었어요. 다행히 가게가 잘 돼 어머니가 혼자 운영하시긴 어려운 상황이었죠. 제가 손을 보태야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오수현씨)
이후 매일 성실히 가게 문을 열고, 닫아 온 오수현씨. 권명숙씨와 오병도씨도 그런 그의 성실함과 실력을 인정해, 이제 재정관리는 온전히 그에게 맡기고 있다. 그 과정이 분명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터.
"본래 아침잠이 많은 편인데, 버거울 때도 있어요. 저녁 7시에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면 바로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편이고요. 힘들어도 가끔 학창시절 친구가 가게에 방문하거나, 손님이 따뜻한 말을 전해주실 때면 힘이 나요. 계산할 때 그냥 가시지 않고 꼭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덧붙이시는 분들이 있는데 별것 아니어도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렇게 매일 힘을 낸다는 그다. 돌아보면 각자의 자리에서 수고한 한 해. 세 사람은 오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아침을 열고, 또 주변 이들에게 온기를 불어넣는다. 오전 8시, 이들의 인사와 함께 햇빛이 거리에 밝게 비춘다.
"어려운 한 해였지만, 꾸준히 단골손님들이 찾아주니 매상이 어렵지 않았네요. 아들이 곁에서 가게 운영을 잘 도와주니 든든하지요. 고맙고 또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권명숙씨)
"올 한해 우리 가족 건강하게 가게를 잘 이끌어왔으니 큰 바람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가게 운영해야지요." (오병도씨)
"올 한해 좋은 날도, 힘든 날도 있었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오늘에 만족하며 매일 성실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오수현씨)
월간 옥이네 통권 103호 (2026년 1월호)
글·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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