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9시~오후 6시는 대한민국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공유하는 업무시간입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그 외 일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입니다. 농촌에는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잘 보이지 않는 새벽 아침을 여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의 '나인 투 식스' 노동이 그나마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월간 옥이네>는 이처럼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노동과 애환을 들어봤습니다.

 오은주·전미경씨가 가게 앞을 지나던 주민과 이야기를 나눴다. 전미경씨의 시어머니와 막역한 사이인 주민은 최근 병원에 입원한 치눅의 안부를 두 사람에게 물었다.
오은주·전미경씨가 가게 앞을 지나던 주민과 이야기를 나눴다. 전미경씨의 시어머니와 막역한 사이인 주민은 최근 병원에 입원한 치눅의 안부를 두 사람에게 물었다. ⓒ 월간 옥이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충북 옥천군 옥천읍 삼양리 골목을 지키는 슈퍼. 입구에 감말랭이와 곶감으로 먹기 위해 너른 감이 방문하는 이를 맞이하는 운암마트다. 슈퍼 근처 주거단지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단골인 이곳은 오은주(52)씨가 6년째 운영하고 있다. 최근 슈퍼 주변에 편의점이 생기면서 동네슈퍼를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하지만, 집 바로 앞에 슈퍼가 있어 좋다는 주민들의 말에 힘을 얻는다.

가지런히 진열된 상품들 사이사이 주민들을 위한 물건과 가게 주인의 취향이 느껴지는 물건들로 채워진 운암마트의 이야기를 오은주씨에게 들어봤다.

편의점 대신 동네슈퍼

AD
오은주씨의 하루는 오전 6시 30분에 시작된다. 가족과 아침밥을 먹고 16·18살 두 아들의 등교를 도와주다 보면 어느새 출근 시간이다. 근무지인 슈퍼가 집 가까이에 있는 덕분에 지각으로 마음 졸일 일은 없다. 슈퍼 입구에 너른 감이 밤사이 잘 말랐는지, 주변에 쓰레기는 없는지를 확인하면 출근 준비 끝이다.

그가 옥천에서 살기 시작한 건 20년 전이다.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고향인 옥천으로 왔다. 결혼 전 유치원 교사로 일한 경력을 살려 시간제로 일하며 육아를 도맡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평소 이용하던 운암마트의 사장이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자연스레 그 자리를 오은주씨가 맡게 됐다.

"운암마트는 삼양운암아파트가 지어질 때 같이 지어진 건물로 처음엔 신문사로 이용했다가 나중에 슈퍼가 됐어요. 지금은 시어머니가 운암마트 건물을 관리하시고요. 전 사장님께서 건강이 안 좋아 그만두시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으셨는데, 아이들 키우면서 일할 수 있겠다 싶어 맡게 됐어요."

운암마트 이용자에서 운영자가 된 지 6년. 슈퍼 이용자는 인근 주거단지 거주자로 고령의 주민이 대부분이다. 가장 많이 찾는 품목은 우유와 담배다.

"근처에 어르신이 많이 사세요. 과자보단 아침에 마실 우유, 집에 온 손님에게 대접할 음료, 담배를 많이 찾으시죠. 그 외엔 종량제봉투, 건전지, 대형폐기물 스티커를 찾으시는데, 특히 폐기물 스티커는 옥천읍 행정복지센터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하시는 분이 많으세요."

건전지가 필요한 경우 리모컨째로 가지고 오는 주민도 있다. 다양한 건전지 종류에 어떤 것을 사용해야 할지, 교체 방법을 몰라 오은주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박스 테이프와 종량제 봉투 사이에 자리한 페트병 공간 역시 그렇게 마련됐다.

"페트병이 생기면 버리지 않고 깨끗하게 닦아 말려서 보관해요. 직접 장 담가 먹는 주민이 많은데 자녀들에게 나눠주려고 소분용으로 페트병을 찾으세요. 평소에 잘 보이던 것도 막상 필요할 때 되면 없잖아요. 급하게 빈 병 필요한 분께 드리려고 모으다 보니 저렇게 자리가 생겼어요(웃음)."

주민과의 이야기를 쌓는 즐거움으로 슈퍼를 운영하는 그에게 문득문득 찾아오는 고민이 있다. 하루 평균 슈퍼를 이용하는 이는 30여 명. 거기에 최근 주변에 생겨난 편의점을 보면 동네슈퍼 운영에 대한 고민이 들 수밖에 없다.

"최근 주변에 편의점이 2개나 생겼어요. 동네슈퍼보다 물건도 다양하고 늦은 시간까지 운영하니까 편의점을 더 많이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슈퍼 운영에 영향이 있다 보니 진지하게 편의점으로 바꿔야 하나 고민한 적 있어요. 편의점 관계자분이 가게에 찾아와 설명한 적도 있고요. 그런데 열심히 일할수록 편의점 본사만 이익을 크게 보는 구조인 거예요. 답답하게 어디 얽매이는 걸 안 좋아하는 성격이라 조바심 내지 말고 동네슈퍼로 남아 보자고 생각했죠."

휴식·배움·고민 나누는 슈퍼

 오은주·김세희씨가 슈퍼 안쪽 공간에서 차를 마시고 있다.
오은주·김세희씨가 슈퍼 안쪽 공간에서 차를 마시고 있다. ⓒ 월간 옥이네

운암마트 안쪽에는 비밀 공간이 있다. 식물과 책, 뜨개 물건 등 오은주씨의 취향이 묻은 물건으로 채워진 공간은 그의 휴식처이자 배움터이자 고민상담소다.

"가게 운영 중간중간 쉬는 공간으로 사용했는데, 자연스레 주민들과 담소를 나누고 취미 생활을 공유하는 곳이 됐어요. 몇 해 전엔 뜨개질 동아리에서 만든 것들을 지용제(옥천군 축제)에서 판매하기도 했어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이야기 나누면서 저도, 주민들도 쉬고 즐기는 공간이 됐어요."

매일 아침 이곳을 찾아 출근 전 마음을 다잡는 이들이 있다. 오은주씨의 오랜 이웃이자 친구인 김세희(50)·전미경(52)씨는 각각 오전 8시 40분, 9시 30분에 슈퍼를 찾는다. 이날도 두 사람은 어김없이 슈퍼를 찾아 오은주씨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하루의 시작을 함께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잠시 들러 인사하고 가요. 주변을 살뜰히 챙기는 언니를 닮은 공간이라 그런지 슈퍼에 오면 마음이 편해져요. 일상을 살다가 힘에 부치는 날에도 여기가 생각나요. 잠깐만 있어도 충전되는 기분이에요. 가만히 있어도 좋은 공간과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김세희씨)

시어머니의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에 어느 때보다 힘든 한 해를 보냈다는 전미경씨도 운암마트에서 어지러운 마음을 다독일 수 있었다.

"시어머니 연세가 91살이에요. 60대에 어머니를 처음 만났는데, 건강한 모습만 보다가 이렇게 아픈 모습을 보니 너무 속상해요. 주변에서는 요양원에 보내야 한다고 했지만 가능한 한 제 손으로 모시고 싶었어요. 가족들과 어떻게 어머니 병간호를 할지 논의를 많이 했어요. 그 과정에서 힘든 일이 많았는데 여기서 털었죠. 고민이 해결되지 않아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지잖아요. 슈퍼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그런 생각이 드니 참 고마운 곳이에요."

오래 보고 싶은 풍경을 위해

운암마트는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운영한다. 주말도 예외 없다. 슈퍼 운영 초반에는 격주로 일요일에 쉬려 했지만 동네슈퍼가 주말에 쉬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이 마을 아파트와 빌라에서 가장 가까운 슈퍼가 운암마트예요. 여기가 아니면 다른 곳에 가야 해요. 저도 슈퍼와 가까운 곳에서 살아요. 쉬더라도 어디 가는 게 아니라 집에 있으니까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이 동네에서만 15년 넘게 살다 보니 웬만한 이웃들은 제 번호를 알고 계세요. 가게 문이 닫혀 있으면 연락이 오기도 해서 쉬는 날 없이 운영하게 됐어요."

갑작스럽게 자리를 비우거나 몸이 좋지 않을 때면 입구에 메모를 남긴다. 헛걸음하는 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운영하다 보니, 운암마트는 늦은 밤까지 골목을 환히 밝히는 곳이 됐다. 가로등이 많은 큰길과 달리, 해가 지면 금세 어두워져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드는 골목을 슈퍼가 대신 밝혀주고 있다는 점이 오은주씨를 뿌듯하게 한다.

"저도 어두운 것을 무서워해서 가로등 없는 골목을 잘 못 지나가요.오가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지나가실 걸 생각하면 나름 뿌듯해요."

오은주씨가 맛보라며 감 조각을 건넸다. 얼마 전 근처 상인에게 받은 대봉감으로 감말랭이와 곶감을 만드는 중이라고.

"운암마트를 이용하는 분들께서 이것저것 챙겨주세요. 필요한 물건 없이도 인사하러 들르는 분도 많고요. 얼마 전엔 여기서 10분 거리에 있는 강산슈퍼 사장님께서 판매할 담배가 떨어졌다며 몇 보루를 사 가셨어요. 더 가까운 편의점에서 살 수도 있는데 일부러 동네슈퍼에 와 주신 마음이 감사했어요."

감이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를 구경하는 주민들, 길에서 마주친 이에게 전하는 안부 인사, 직접 농사지은 것을 나누는 마음. 매일 슈퍼에서 마주하는 풍경들은 그의 마음을 풍요롭게 만든다. 하지만 시대가 빠르게 변하는 만큼 달라지는 동네 풍경에 오래 보고 싶은 것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 보고만 있어도 그리워지는 풍경을 오래 보기 위해서라도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자고 다짐한다.

"여기서 이용자가 더 줄어들면 슈퍼 운영은 힘들겠죠. 미래를 생각하면 걱정이 앞서는데, 마을 풍경을 보며 마음을 다잡아요. 조금 더 해보자는 용기가 생기기도 하고요. 주민들과 어울리는 동네슈퍼로 마을에 오래 남고 싶어요. 내년에도 지금처럼 걱정과 웃음 나누며 그렇게 지내길 바라요."

 충북 옥천 운암마트를 운영하는 오은주씨
충북 옥천 운암마트를 운영하는 오은주씨 ⓒ 월간 옥이네

 충북 옥천 운암마트 내부
충북 옥천 운암마트 내부 ⓒ 월간 옥이네

월간 옥이네 통권 103호 (2026년 1월호)
글·사진 김혜리

이 기사가 실린 월간 옥이네 구입하기 (https://smartstore.naver.com/monthlyoki)

#월간옥이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재

월간 옥이네

월간 옥이네는 자치와 자급, 생태를 기본 가치로 삼아 지역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 사람을 담습니다. 구독문의: 043.731.8114 / 구독링크: https://goo.gl/WXgTFK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