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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잠깐 들른 휴게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화장실 문에 써 붙인 굵고 간결하게 쓴 문구가 한 눈에 들어왔다.

"물티슈를 넣지 마세요."

짧은 문장 속에 숨은 '제발'이라는 낱말이 보이는 듯했다. 물티슈로 인한 잦은 고장에 '이제는 지쳤다'는 호소문처럼 보였다. 나는 그곳에서 코로나19 시절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시의 학교 현장은 교실마다 물티슈 박스가 통째로 공급되어 때 아닌 물티슈 홍수를 맞았다. '1미터 거리 두기'에 온 신경이 집중되던 때였다.

물티슈의 정체

 물티슈.
물티슈. ⓒ towfiqu999999 on Unsplash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자 개인별로 물티슈를 통째 나눠주고, 아이들 스스로가 시간마다 손을 닦고, 책상을 닦고, 문고리를 닦게 했다. 공부하던 책상은 점심시간 종이 울리면 식탁으로 변했고, 오후에는 다시 식탁이 공부하는 책상으로 변했기에 물티슈 사용량은 한없이 증가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위생 점검을 하는 분들도 시간마다 세정제와 물티슈를 들고 전교를 누비며 소독에 힘썼다. 물티슈 사용이 생존의 필수 전략이라 여길 정도로 중요하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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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1학년 교실이 있던 건물 쪽 화장실 변기가 꽉 막히고 말았다. 고무장화를 신고 고무장갑을 낀 채, 땀을 흘리며 뒤처리에 힘쓰던 분을 잊을 수가 없다. 그날 이후 전교에 비상이 걸렸다.

"얘들아, 물티슈는 절대로 변기에 버리면 안 돼."

물티슈는 반드시 쓰레기통에 버릴 것을 신신당부하면서도 바짝 신경을 곤두세웠다. 휴지처럼 흐늘거려 물에 잘 녹을 것처럼 보여도 절대 녹지 않는, 아주 지독한 일회용품이라고 매 시간 강조했다. 물티슈와 씨름 하던 그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가 1월 하순, 한 라디오를 통해서 물티슈에 관한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약 2500억 원에 달하는 전국 하수관로 유지비 중 물티슈 투기 때문에 발생하는 고장 수리에 1000억 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었다. 남의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바로 우리나라 이야기였다. 물티슈 때문에 하수관이 자주 막힌다는 사실에 나는 다시 가슴이 답답해졌다.

우리가 물티슈를 펑펑 쓰고 있을 때, 우리의 세금도 펑펑 새고 있었다는 사실. 하수도 속 기름 때와 만난 물티슈가 거대한 '오물 덩어리'로 변해 시설을 망가뜨리고, 결국 우리 주머니를 겨냥한다는 걸 누가 알까. 시설 복구에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고 있는 지금, 앞으로 재정이 부실해지면 수도세 인상도 불가피하다는 말에 우울감이 더 커졌다.

더 황당한 건 당연히 일회용품으로 알고 있던 물티슈가 현행법상 '인체 세정용 화장품'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12일 발간한 '물티슈 환경 문제 해소를 위한 입법적 검토'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물티슈가 '화장품법상' 인체 세정용 화장품으로 분류돼 있어 환경 규제의 근거인 자원재활용법의 1회용품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

"세상에, 물티슈가 화장품이었다고?"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집에 있는 물티슈를 당장 꺼내 보았다. 표면에는 주 성분이 플라스틱 계열의 불용성 화학 섬유라 적혀 있었지만, 등록표에는 정말 '화장품류'로 표기되어 있었다. 다른 종류의 물티슈도 찾아서 살펴보니 역시 화장품류라 표시되어 있었다. 아주 작은 글자로 '화장품법의 기준에 의해 생산된 제품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토록 지독했던 물티슈의 정체를 알고 나니 배신감이 들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남편과 아들한테 물어보았다.

"물티슈가 일회용품류일까, 화장품류일까?"

당연히 일회용품이라고 할 줄 알았던 아들 입에서 대뜸 '화장품류'라는 대답이 나왔다. 아들은 웃으면서 기사를 보고 알았다며 나처럼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까짓 물티슈가 일회용품이면 어떻고, 화장품류면 어떠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명확히 구분되어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 자신에게 던지는 경고문

 물티슈 관련 설명.
물티슈 관련 설명. ⓒ 윤태정

일회용품류로 분류되면 정해진 환경 규제를 따라야 한다. 만일 환경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때는 기업이 일정 부분 책임을 진다. 반대로 화장품류로 분류되면 각종 규제에서 빗겨갈 수 있는 구조라 소비자가 책임을 떠안는 형국이 된다는 것. 누가 봐도 이것은 불합리하다.

하루 빨리 법 시스템을 바꾸어서라도 물티슈에게 '일회용품'이라는 진짜 이름을 부여해야하지 않을까. 영국이나 유럽 여러 국가에서는 물티슈를 일회용품으로 분류하여, 환경에 해를 끼치면 기업이나 생산자에게 책임을 물린다고 한다.

물티슈가 우리 삶에 쾌적함과 편리함을 준 건 사실이다. 대부분 식당에만 가봐도 무조건 물과 함께 물티슈부터 내준다. 쓰기에 편하고, 뒤처리도 간단한 물티슈를 선호하는 게 일반적인 추세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우리의 삶에 깊숙이 스며든 물티슈는 이제 떼고 싶어도 뗄 수 없는 필수품 중 하나가 됐다. 사용 후에는 제대로 올바르게 처리해야 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지금 우리는 달콤한 '화장품'이라는 이름에 가려진 '플라스틱'의 민낯을 제대로 봐야 할 때다. 물티슈를 펑펑 쓰던 습관을 나 자신부터 멈춰야겠다. 오늘도 무의식중에 습관적으로 뽑아 든 물티슈를 보며 휴게소 화장실 문에 붙어 있던 그 간절한 호소문을 떠올린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호소문은 나 자신에게 던지는 경고문이었다.

#물티슈#세금#화장품류#그린워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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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참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합니다.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며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흐뭇한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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