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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9시~오후 6시는 대한민국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공유하는 업무시간입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그 외 일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입니다. 농촌에는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잘 보이지 않는 새벽 아침을 여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의 '나인 투 식스' 노동이 그나마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월간 옥이네>는 이처럼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노동과 애환을 들어봤습니다.

 옥천 '마성 테니스 클럽' 회원들
옥천 '마성 테니스 클럽' 회원들 ⓒ 월간 옥이네

해가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낸 시간. 테니스장 코트에는 아직 하얀 서리가 내려앉았다. 라켓이 삐져나온 가방을 멘 이들이 하나둘 모이고, 이들이 남긴 발자국이 코트 위에 앉은 서리를 군데군데 녹인다. 차가운 코트를 지나 테니스장 한편에 마련된 실내 공간에 들어서자, 훈풍이 훅 끼친다. 가장 먼저 도착한 안후영씨가 회원들을 위해 미리 난로를 켜둔 것. 난로를 중심으로 모여 몸을 녹인 회원들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코트에 올라선다. 충북 옥천고등학교 테니스장에서 아침 훈련을 하는 마성 테니스 클럽(이하 마성클럽)을 만나봤다.

새벽을 깨운 목소리

옥천 최초의 테니스 클럽인 마성클럽(회장 이인석)의 시작은 1978년 3월 1일이었다. 현재까지도 활동 중인 유일한 창립 멤버, 정면희(87)씨는 어느 날 새벽에 들려온 외침으로 아침마다 테니스 라켓을 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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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하기 전에 체중이 87kg까지 나갔어. 검진을 갔더니 병원에서 성인병이 우려된다는 거야. 내 나이 마흔도 되기 전인데, 그런 얘길 들으니까 새벽에 잠도 안 오고 생각이 많아지더라고. 그날도 잠이 안 와서 뒤척이고 있는데, 새벽에 누가 날 부르는 소리가 났어."

새벽을 깨우는 목소리를 따라 내다본 거리엔 가깝게 지내던 황순욱씨가 라켓 두 개를 든 채 서 있었다. "같이 테니스 칩시다!"

지금은 마성클럽 회원 대부분이 60세 이상이지만, 당시엔 한창 일하던 이들이 많았기에 훈련 시간은 아침으로 정해졌다. 정면희씨가 마성클럽에 가입해 테니스를 배운 지 47년, 이제 그에게 아침 운동은 일상이 됐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트레칭부터 하지. 운동하다 다치면 안 되니까 거실 카펫 위에서 천천히 몸을 풀어. 그리고 따뜻한 녹차 마시면서 몸도 데우고. 그러다 보면 연습 나갈 시간이 돼."

마성클럽의 연습 시간은 "해 뜨는 시간"이다. 매일 첫 번째로 코트에 도착한다는 안후영(85)씨는 새벽 5시쯤이면 눈을 뜨는데, 집에서 간단히 몸을 풀며 어둠이 거치길 기다린다. 깜깜했던 창밖이 밝아질 기미가 보이면 전날 미리 싸둔 가방을 챙겨 들고 코트로 향한다.

"요즘엔 해가 늦게 떠서 7시 30분에 연습을 시작하지만, 여름엔 더 일찍 모이지. 여름에 늦게 연습하면 덥기도 하고, 또 지금보다 연습 시간이 늦어지면 옥천고등학교 학생들에게도 피해가 되거든. 우리 연습은 해 뜨는 시간 맞춰서 시작한다고 보면 돼."

준비운동을 합시다

 옥천 '마성 테니스 클럽' 회원들
옥천 '마성 테니스 클럽' 회원들 ⓒ 월간 옥이네

연습 장소에 도착한 회원들은 따뜻한 커피와 차를 들고 난로 가까이 모인다. 이때 몸을 녹이는 건 마성클럽 회원들만이 아니라는데, 온기에 몸을 맡기는 또 다른 존재는 테니스공이다. 이인석 회장이 가져온 농산물 건조기엔 샛노란 테니스공이 잔뜩 들었다.

"밤새 공이 찬기를 머금었잖아요. 이 상태로 연습하면 잘 튀지도 않고, 자칫 얼굴에 맞으면 상처가 나기 십상이에요. 그래서 공을 따뜻하게 덥힌 후에 연습하는 거예요." (이순옥씨)

테니스공 온도를 확인하던 이순옥씨는 바깥 코트 상황을 살핀다.

"연습 오는 길에 내가 연습할 테니스 코트가 있으려나, 오래 기다려야 할까, 이런 생각 하면서 와요(웃음). 보통 테니스 코트 1면에서 4명이 연습하는데, 연습장 코트가 3면이라 미리 연습하고 있는 분들이 있으면 기다릴 때도 있거든요. 얼른 운동하고 싶어 자꾸 살펴보게 되는 거죠."

이순옥씨는 일 때문에 종종 아침 연습을 빠지기도 하는데, 덕분에 아침 운동의 힘을 더 크게 느낀다고 말했다.

"밥 먹고, 일하는 건 살기 위해 해야 하는 것들이잖아요. 반면 운동은 꼭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래서 아침 운동은 하루를 시작하기 전 내 몸을 미리 준비하는 과정처럼 느껴져요. 몇 주 쉬다가 운동하러 나오면 사지가 자유로워지는 게 확 체감돼요. 뻐근했던 몸이 풀리고, 가벼워지는데, 이때 느껴지는 자유로움이 참 좋아요."

코트 위에서 본 풍경

 옥천 '마성 테니스 클럽' 회원들
옥천 '마성 테니스 클럽' 회원들 ⓒ 월간 옥이네

 옥천 '마성 테니스 클럽' 회원들
옥천 '마성 테니스 클럽' 회원들 ⓒ 월간 옥이네

마성클럽의 최고령 회원은 곽흥연(88)씨다. 직장에서 퇴직하며 생활체육으로 할 운동을 배우고 싶었다는데, 이에 배우기 시작한 것이 테니스였다.

"2004년에 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때는 이렇게 따뜻한 공간이 없었어요. 빈터에 큰 드럼통 반 잘라두고, 불 피워 몸을 녹였죠. 코트도 클레이코트(흙 코트)였어서, 소금 뿌려 바닥 다지고, 백회로 선 그어 연습하고 그랬어요."

아내와 함께 우유와 절편을 나눠 먹고, 아내는 수영장에, 곽흥연씨는 테니스장에 왔다. 곽흥연씨는 "게임 요령이 붙지 않아 젊은 사람들의 속도와 힘을 받는 것도 벅차"지만, 다양한 속임수를 연습하며 힘의 차이를 메워가고 있다.

"포핸드로 세게 공을 치는 척하면서 살짝 넘기는 식이죠. 그렇게 상대의 실수를 끌어내는 게 묘미예요. 성공하면 기분이 무척 좋지요. 아직 잘 되진 않아서 겨우 공을 넘기는 정도지만요(웃음)."

아침마다 코트에 서서 운동하고 있으면 "젊음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는 그는 "더 잘하기 위한 코트가 아니라 기분 좋은, 그래서 웃음 나는 코트"를 만들고 싶다. 그 마음은 곽흥연씨 혼자 품은 마음은 아니다. 이날 삼양초등학교 앞에서 교통정리 봉사활동을 하느라 연습에 참여하지 못했던 엄정자(71)씨는 봉사가 끝난 후 연습장에 잠시 들렀다.

"이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됐어요. 같이 운동하는 게 즐거우니까 꾸준히 운동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같이 테니스를 치다 보면 서로의 에너지를 받게 되는데, 그게 하루를 시작하는 데 참 큰 힘이 돼요."

얼마 전에는 회원 한 명이 운동하다 쓰러지는 일이 있기도 했다. 다행히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던 김건자(73)씨가 응급처치를 진행, 현재는 병원에서 회복 중이다. 엄정자씨는 "우리 지역에 운동 동호회, 그리고 그곳에서 활동하는 고령 회원이 많다"며 "운동 동호회 회원들이 오래오래 운동할 수 있도록 긴급 상황에 대처하는 사전 교육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새해가 되면 일출 보러 가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뜨는 해가 꼭 희망처럼 보이니까요. 저는 매일 아침 새해맞이 해돋이를 보러 가는 기분으로 운동을 와요. 컴컴했던 하늘에 해가 나타나면 빛이 아니라 힘이 쏟아지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우리 마성클럽엔 연세가 있으신 회원들이 특히 많은데 2026년에도 모두가 건강하게, 힘 있게 운동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어요."

월간 옥이네 통권 103호 (2026년 1월호)
글·사진 이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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