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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06 11:24최종 업데이트 26.02.06 11:24

이색의 통쾌한 '야유성 댓구'

[붓의 향연 79] 고려 말기의 대표적인 학자 목은 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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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천 문헌서원 뒤뜰에는 건물들이 축소모형처럼 여겨질 만큼 거대한 배롱나무 두 그루가 서있다.
서천 문헌서원 뒤뜰에는 건물들이 축소모형처럼 여겨질 만큼 거대한 배롱나무 두 그루가 서있다. ⓒ 충남도

고려 말기의 대표적인 학자 목은 이색(1328~1396)은 당시의 이름난 시인이었던 이곡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문학적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여 시문과 유학자로 널리 알려졌다.

출사하여 이성계와 가깝게 지냈으나 그가 조선왕조를 창건한 뒤에는 고려왕조에 대한 충정을 계속 주장하다가 두 아들이 살해당하고 자신은 금천·여흥 등지로 유배되었다. 이색은 이성계가 1395년 한산백(韓山佰)으로 봉하며 벼슬에 나올 것을 증용했으나, 끝내 나가지 않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그의 문하에서 권근·김종직·변계량 등을 배출하여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었다. 이색의 많은 시중에 '글공부'는 빼어난 작품의 하나이다.

글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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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공부란 산에 오르는 것 같아
오르면 오른만큼 얻는 바가 있다네

맑은 바람 고요히 불어 오기도 하고
음산하게 우박이 쏟아지기도 하리

깊은 못속에 용이 사려 있는 듯
하늘로 훨훨 봉새가 나는 듯 하리

위태로운 욕심 버리고
바른 마음 가슴에 간직하리

그 위에 수많은 책을 읽으면
능히 진리를 깨달을 수 있으리라

옳은 기풍 오래 전에 사라지고
큰 길은 가시밭이 되었도다

창 밑에서 책을 어루만지면
탄식하는 이 마음 누가 알아주랴.

이색이 원나라에 가면 뛰어난 문인들과 자주 시짓기 내기를 하였다. 원나라 문인 사회에서도 익히 알려져 그곳을 방문할 때이면 명사들이 찾아왔다. 어느날 원로급 문인과 마주 앉았다. 원나라에서도 명성이 높은 문인이 이색의 능력을 떠보기 위해 먼저 시를 읊었다.

잔을 들고 바다에 들어가면
바다가 큰 줄을 알렸다.

고려의 국토가 작음을 비유하여 원나라를 자랑하는, 지극히 오만한 싯구였다. 상대의 시작이 끝나자마자 댓구를 하지 못하면 낙제다. 이색은 거침없이 읊었다.

우물 속에 앉아서 하늘을 보고는
하늘이 작다고 한다네.

남을 깔보는 원나라 인사에게 통쾌하게 한방 날린 것이다. 그를 우물 안의 개구리에 비유하여 조롱한 댓구였다.

덧붙이는 글 | [붓의 향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붓의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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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붓의 향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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