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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습 영정 - 보물 제1497호
김시습 영정 - 보물 제1497호 ⓒ 윤재홍

"그의 문장은 물이 용솟음치고 바람이 부는 것과 같으며, 산속에 간직하고 바다 속에 숨겨진 것과도 같습니다. 신(神)이 짓고 귀신이 응답하는 것 같은 오묘함이 살며시 드러나고 겹겹이 나와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본말과 시중을 알 수 없게 하였습니다. 성율(聲律)과 격조는 애써 꾸미지 않았지만, 놀라운 것은 생각이 높고 먼 경지에 이르러 보통 사람들의 뜻을 멀리 넘어섰으니, 그저 글자나 아로 새기는 자들이 넘겨볼 경지가 아니었습니다." (최규목, <김시습의 사상과 글쓰기>)

김시습은 5세 때에 시로써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하여 '김오세'란 별명을 들을 만큼 총명했다. 어느날 외할아버지가 어린 손자를 불러다놓고 시를 읊어주었다.

꽃은 난간에서 웃어도
소리를 듣지 못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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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습이 더듬더듬 댓구를 지었다.

새는 수풀에서 울건만
눈물을 볼 수 없습니다.

김시습이 3세 때 지었다는 이런 시도 전한다.

복숭아꽃 붉고 버들잎 푸른
춘삼월도 저물었는데
솔잎에 맺힌 이슬은
푸른 하늘에 꿰인 구슬이여라.

수양대군의 칼부림으로 수많은 충신열사가 죽고, 쿠데타세력은 정난공신이 되어 호사를 누리며 살았다. 김시습은 세상의 영화가 부질없음을 탄하며 전국의 산천을 떠돌고 있었다. 많은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공신이 된 한명회가 김시습을 찾았다. 한명회는 주나라의 강태공이 출세하기 전 위수에서 낚시질하고 있는 그림을 갖게 되었다. 뇌물이었다. 한명회에게는 걸맞지 않는 그림이었지만 워낙 명화라 욕심이 동하여 이를 소장하게 되었다. 여기에 그림에 걸맞는 화제를 써 넣으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었다. 여러 사람이, 말하길 이런 정도의 그림에는 김시습의 시문이라야 한다면서 김시습을 추천하였다. 계유정난이 지난지도 오래되었으니 당대의 세도가 한명회가 부른다면 김시습인들 마다하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과연 김시습은 찾아왔고, 서스럼없이 붓을 들었다.

비바람 드러치는 위천물가 낚시터에
물고기·새 벗삼아 세상일 잊었더니
어찌타 늘그막에 억센 장수 뛰어나와
부질없이 백이숙제 굶어죽게 하였는가.

김시습은 강태공의 고사를 빗대어 수양대군과 한명회의 쿠데타를 욕주는 글을 짓고는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댓구 치고는 걸작이었다.

덧붙이는 글 | [붓의 향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붓의#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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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붓의 향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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