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라고 축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화천 산천어축제', '인제 빙어축제', '태백산 눈축제' 같은 굵직한 이름들은 해마다 포털 사이트 메인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얼음 위에 구름 관중이 모이고, 눈 조각 앞에서는 셔터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화려한 몇몇 장면만으로 한국 축제의 겨울을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카메라 앵글 밖, 대부분의 현장은 시리도록 고요하기 때문이다. 1월에서 3월, 길게는 4월까지 이 시기는 지자체와 단체가 새해 예산을 설계하고 사업을 기획하는, 이른바 '행정의 시간'이다. 아직 무대는 허락되지 않았고 계약서의 봉인은 풀리지 않았다. 공연자, 음향 감독, 스태프, 기획자들에게 겨울은 명백한 '비수기'이자 잔인한 '보릿고개'다. 무대가 접힌 계절, 무대, 축제 종사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침묵을 견디며 산다.
그들의 겨울나기를 들여다봤다. 무대가 멈추면 비로소 드러나는 삶 겨울을 건너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그 차이는 인기의 크기나 경력의 깊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각자가 쌓아온 '삶의 조건'에 달려 있다. 누군가에게 겨울은 확장의 기회다.
83세에 데뷔한 '실버 가수' 이인자씨는 이 계절을 가족, 그리고 새로운 플랫폼과 함께 건넌다. 그는 '보이스 퀸' 출신 딸인 가수 김주아씨와 함께 유튜브 방송을 이어가며 겨울을 보낸다. 오프라인 무대는 없지만, 온라인 속 이야기는 계속된다. 세대와 세대를 잇는 화면 속에서 겨울은 고립이 아닌 소통의 장이 된다.
'여유'로 승화시키는 가수들도 있다. 통기타의 살아있는 전설 해바라기 이주호 리더는 필자의 겨울나기 질문에 "잠시면 지나가. 별거 아니야. 조용히, 침묵으로 이 계절을 잘 보내자"라고 답한다. 오랜 시간 무대를 지켜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내공이다. 그는 겨울을 싸워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음악이 다시 말을 걸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침묵의 시간으로 받아들인다. 한국 펑크 록의 역사를 관통해 온 밴드 '사랑과 평화'의 리더 이철호씨에게도 겨울은 '멈춤'이 아닌 '회복'이다.
"연예인이나 공연계 사람들은 보통 1월부터 봄까지 일이 거의 없어요. 다들 보릿고개라고 하지만, 저는 애초에 이 시기를 가족에게 돌려주는 시간으로 정했습니다. 어머니와 운동도 가고, 못다 한 효도도 하는 거죠."
그의 말은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그 여유는 즉흥적인 결정에서 오지 않는다. 성수기의 수입을 연 단위로 철저히 설계하고, 비수기의 쉼을 감당할 수 있는 자본을 축적했기에 가능한 선택이다. 그에게 겨울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삶의 균형을 맞추는 안식월이다.
무대 없는 계절에도 예술은 사라지지 않아
하지만 모두에게 겨울이 낭만적인 것은 아니다. 경남 지역 무대에서 탄탄한 가창력을 인정받은 전국구 가수 김주아씨와 울진에서 활동하는 연주자 겸 가수 김영주씨도 겨울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평소 바빠서 못 했던 악기 연습, 유튜브 방송, 노래 연습을 정말 집중적으로 해요. 성수기가 오면 바로 쏟아부어야 하니까요. 쉰다는 생각은 사치죠."
무대 위 조명은 꺼졌어도 연습실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관객은 잠시 사라졌어도 경쟁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더 내려가 보면 상황은 훨씬 날것에 가까워진다.
아직 인지도가 충분하지 않거나 기반이 약한 지역 연예인들에게 겨울은 생존 투쟁의 현장이다. 강릉에서 활동하는 가수 휘란씨는 11월 말이 되면 구인 구직 사이트부터 켠다.
"공연이 뚝 끊기면 단기 아르바이트로 겨울을 건너요. 창작에 집중하고 싶다는 마음은 굴뚝 같지만, 생계 앞에서는 낭만도 얼어붙죠."
휘란씨의 선택 앞에서는 '연예인으로서의 자아'와 '생활인으로서의 자아'가 충돌한다. 연습과 창작을 병행하고 싶어도, 육체노동 뒤에 남는 피로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에게 겨울의 공백은 쉼이 아니라, 명백한 '소득의 단절'이자 '빈곤의 공포'다. 비수기는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현장에서 만난 예술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겨울은 준비의 시간이지만, 동시에 불안의 시간이라고.
이미 이름을 알린 이들에게는 가족, 연습, 창작, 미디어라는 선택지가 있다. 그러나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에게 겨울은 곧바로 생존의 위협으로 직결된다. 단기 아르바이트, 임시 노동, 무대 밖의 일상... 같은 '예술가'라는 이름 아래서도 겨울의 무게는 이토록 다르게 내려앉는다. 이 지점에서 질문은 개인을 넘어 사회로 확장되어야 한다.
왜 축제 산업의 겨울은 늘 개인이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가. 왜 비수기를 전제로 한 예술인 고용 보험이나 사회적 안전망은 여전히 헐거운가. 겨울은 질문의 계절이다. 몇 개의 대형 겨울 축제로 이 계절의 빈곤을 덮을 수는 없다. 대부분의 무대는 닫혀 있고, 대다수의 예술가는 기다린다. 그 기다림의 풍경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하나다. 겨울은 삭제된 공백이 아니다. 예산을 설계하고, 삶을 재정비하고,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필수적인 시간이다.
동시에 한국 문화 예술 생태계가 예술가 개인의 체력과 인내에 얼마나 위태롭게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무대가 없는 계절에도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소리가 낮아질 뿐이다. 그리고 그 낮은 소리를, 우리는 이제 '개인의 극복기'가 아닌 '정책과 구조의 언어'로 들어야 할 때다.

▲눈 조각가, 홍순태 작가지난 1월 10일부터 20일까지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열린 국제 눈 조각 경연대회에 참석한 삼척 출신 홍순태 작가팀이 최고 한국대표로 참석해 3위를 수상했다. ⓒ 홍순태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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