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금값 사상 최고치 뉴스에 '집에 있는 금 생각'이 간절합니다. 없으면 아쉽고 있으면 뿌듯하고. 저마다 갖고 있는 금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지난해 말, 오랜만에 돌잔치 초대장을 받았다. 한창 오십대를 달리고 있는 우리에게 날아올 초대장이라면 먼 친척의 결혼식이거나 친구 부모님의 부고장이 대부분이다. 그런 와중에 '돌잔치' 초대장은 너무나 뜬금없고, 너무나 신선했다. 코로나 이후 요즘 돌잔치는 소리소문도 없이 치른다고 해서 더 그랬다.

이 신선한 초대장의 주인은 서울 자가에 대기업을 다니는 남편의 친구였다. 그는 남편 친구들 중에서도 빨리 결혼했고, 빨리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이 또 빨리 결혼식을 올렸는데 또 빠르게 다섯 달 만에 아들을 낳았다. 친구들은 오십 줄에 할아버지 명찰을 단 그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조의를 표하고 싶어 했지만, 이 철없는 할아버지는 너무도 신이 나 손자 돌잔치에 자기 친구들을 초대했다. 그것도 부부 동반으로.

이런 이벤트는 가장 늦둥이였던 우리 둘째 딸의 돌잔치를 치른 지 꼭 스무 해만이었다. '요즘 돌잔치에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하다 금반지가 생각났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뉴스에 '금값'이 빠지지 않고 출석 체크를 한다. 금 한 돈에 백 만원을 넘겼다나. 경기 불확실성, 금리, 환율, 달러, 안전 자산 같은 단어들의 유기적인 관계는 잘 모르지만, 지난주보다 이번 주 금값이 올랐고 다음 주에는 더 치솟을 거린다(이랬는데 폭락, 또 반등.. 금값은 계속 오르락 내리락 중이다).

금반지 한 개만 남겨둘 걸

AD
콩나물을 사러 나간 상가 한켠에서 뚝딱뚝딱 공사가 시작되더니 금거래소 간판이 반짝인다. 상가 1층에만 금거래소가 두 곳이다. 상가를 나와 집으로 오는 길에도 금은방이 눈에 들어온다. 길 건너편에도 하나 더 있었네. 온통 세상이 금밭이다.

문득 집에 두고 온 꿀단지가 떠오른 곰돌이처럼 허겁지겁 돌아와 옷장 속 서랍을 연다. 레트로한 자주색 벨벳 옷을 입은 작은 보석함 안에 단촐하지만 옹기종이 모여 있는 금반지 두 개와 금목걸이 하나가 반짝반짝 웃고 있다.

오늘 시세가 일십백천만십만백...백만. 이러다 금 한 돈에 이백만 원이 되는 건 아닐까? 아니면 갑자기 떡락해서 십만 원이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아끼면 똥 된다고 했는데, 이 아이는 똥이 될까, 아니면 황금 똥이 될까. 손가락이 근질근질 심장 옆구리를 긁어댄다.

2024년의 나도 지금과 비슷한 '금팔이 병'을 앓고 있었다. 인터넷을 켜면 메인 화면에서 오늘의 금시세가 인사를 했고, 출근길에는 금거래소 간판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었다. 증권거래소처럼 생소하지만 왠지 믿음이 가는 이름이 봉황당과 같은 계보의 금방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방문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때도 뉴스와 신문은 연일 금값 이야기를 쏟아냈고, 나는 들썩이는 엉덩이를 붙잡아 둘 수가 없었다. 늦둥이 둘째의 돌잔치에서 받은 '금 무더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낯가림이 심했던 딸은 드레스를 입고 손님들에게 울음으로 비싼 인사를 했고, 부모님과 일가친척, 친구들은 오랜만에 맡는 베이비 향에 취해 축하 선물로 금반지와 금팔지, 금목걸이를 끼워주고 걸어주었다. 당시 기억으로는 현금 선물이 평균 오만 원쯤이었고, 한 단계 위가 금 한 돈이었다. 리본이 달린 작은 상자에 담긴 금 한돈은 관계를 한 번 더 단단하게 묶어주는 느낌이었다.

돌잔치가 끝나고 나는 금반지를 건넨 손님들에게는 "잘 보관했다가 나중에 시집갈 때 전해주겠다"고 인사를 했다. 금반지를 담았던 상자와 리본 하나도 버리지 못했고, 스무 개가 넘는 상자들을 가방에 담아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다. 해외여행을 갈 때는 빈 집을 못 믿어 자동차 트렁크에 실어두었고, 아이가 태어난 뒤 다섯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에도 가장 먼저 챙긴 건 금가방이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아이의 결혼까지 기다리기에는, 어느새 금값이 너무 많이 올라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둘 금을 팔았던 경험담을 꺼냈고, 팔지 않고 끼고 있는 사람은 답답한 캐릭터가 되었다. 한 돈에 오만 원에 샀던 금반지를 삼십만 원에 팔았다는 후기를 읽을 때면 심장이 두근 반 세근반 쿵쿵 울렸다.

금가방을 들고 출근을 했다. 출근하자마자 금시세를 확인하고, 회사 근처 금은방과 금거래소를 참새처럼 들락거렸다. 하루만 더, 하루만 더를 외치며 금팔이 소녀로 지내던 7월 16일, 나는 금가방을 들고 가장 믿음이 가던 금거래소로 향했다.

24년 그해 여름은 뜨거웠네 둘째 딸의 돌잔치에서 받은 금반지를 팔아 목돈을 챙겼던 날. 이때가 금시세의 상투인 줄 알았다.
24년 그해 여름은 뜨거웠네둘째 딸의 돌잔치에서 받은 금반지를 팔아 목돈을 챙겼던 날. 이때가 금시세의 상투인 줄 알았다. ⓒ 정현주

스무 개의 상자를 벗고 나온 금 친구들이 모두 모여 하나의 저울 위에 올려졌다. 샤워를 하고 물기라도 남을까 머리를 다 말리고 몸무게를 재던 내가, 저울 위에 먼지라도 내려앉기를 바라던 순간이었다.

금가방의 금은 총 889만 1600원의 현금이 되었다. 당시 금 한 돈은 36만 원 정도였다. 전날 대비 만 원을 더 받은 셈이었고, 나는 발품을 팔아 금테크에 성공한 주인공이 되었다. 역시 아끼면 똥이 된다며, 아끼지 않고 팔길 잘했다고 혼자서 머리를 쓰담하고 어깨를 으쓱해댔다.

그렇게 나는 '박수칠 때 떠나라'를 외치며 금을 팔았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의 결론은 '아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때 팔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팔백만 원대에 정리했던 금을 지금 갖고 있었다면 이천만 원에 향하는 금액이 된다. 조금만 더 아꼈다면, 똥이 아니라 황금 똥이 되었을 텐데.

금 팔기, 언제가 적기일까

며칠 전 남편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3월 1일로 예정됐던 손주 돌잔치 초대를 취소한다는 소식이다. 아들과 며느리의 친구와 지인들만으로도 충분하다며, 할아버지 친구들까지 초대하는 건 오버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덕분에 '돌잔치에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고민은 사라졌다. 하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남은 고민이 하나 있다.

친정엄마가 주신 금 갖고 있는 금이라고는 다 팔고, 목걸이 한개와 반지 두개 남아있다. 금값 백만원 시대에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는 대목이다.
친정엄마가 주신 금갖고 있는 금이라고는 다 팔고, 목걸이 한개와 반지 두개 남아있다. 금값 백만원 시대에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는 대목이다. ⓒ 정현주

몇 년 전 친정엄마가 준 금반지와 금목걸이다. 당시 엄마는 지나가는 감기가 폐렴으로 이어졌고, 중환자실에서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다 반년 만에 집 현관문을 열었다. 퇴원하던 날, 엄마는 서랍에서 반지와 목걸이를 꺼내 큰딸 하나, 작은딸 하나 하며 과자 나누듯 나눠주었다. 유산이라 하기에는 거창하고, 선물이라 하기에는 무거운 전달식이었다.

"디자인은 구식이지만 갖고 있어라. 금붙이는 급할 때 힘이 된다."

엄마의 온기가 남아 있는 선물이지만, 금값이 하도 하늘을 찌르듯 오르니 자꾸만 묻게 된다. 지금이 급한 때인가. 퇴사한 지 햇수로는 2년째다. 나만의 고정 수입이 끊겼고, 대학 합격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에게 들어갈 돈은 안 봐도 많다. 그러니 지금이 엄마가 말한 급한 시점이 아닐까.

그냥 두었다가 나중에 사용할까. 그러다 어느 날 변심한 애인처럼 금값이 뚝 떨어지면 어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이 금시세를 따라 오르락내리락한다. 오늘도 나는 금은방 앞을 서성이고 있다. 이젠 금가방도 없으면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금값#금시세#금팔기
댓글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재

어른이 어른이 되는 시간

(전) 공중파 방송작가, 카피라이터, 광고홍보 프로덕션 운영. (현)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 / 2025 국민이 함께하는 저작권 글 공모전 대상 수상





독자의견9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