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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01 11:39최종 업데이트 26.02.01 11:39

폐광은 '산업의 끝'이지만 '기억의 시작'이다

'미완의 세계유산' 폐광지를 걷는 기록가, 김태수 소장

폐광은 산업의 끝이지만, 삶의 끝은 아니다. 강원도 산맥의 능선 아래, 땅속 갱도는 멈췄어도 사람들의 기억은 여전히 '채굴 중'이다. 도계·태백·정선은 그저 '석탄이 사라진 지역'이 아니라, 20세기 대한민국 근대화를 온몸으로 떠받친 노동과 공동체의 시간이 현존하는 역사의 현장이다.

1월 31일 오후, 유난히 추운 날씨였다. 2019년 삼척시립박물관장직을 내려놓고 탄광촌 한복판인 삼척 도계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김태수 (사)탄광지역활성화센터 학술 연구소장을 만났다. 김 소장은 이곳을 "미완의 세계유산 후보지"라고 정의한다. 쇠락의 풍경 속에 아직 꺼지지 않은 서사의 불씨가 살아있다는 뜻이다.

김 소장은 정년 퇴직이 마침표가 아닌 '현장으로의 이동'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2020년 6월, 탄광 지역 학술·문화 단체들과 함께 '한국석탄산업유산 유네스코 세계 유산등재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대표를 맡았다. 지난 2년 간 14회에 걸친 화상 학술 세미나를 통해 한국 탄광 유산의 가치를 세계적 수준에서 검토한 결과, 그는 확신에 찬 결론을 얻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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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석탄 산업 유산을 원형대로 보존하면서 광부들의 구술사 등 탄광촌의 무형유산 기록화 작업을 병행한다면, 우리 탄광은 인류가 기억해야 할 충분한 가치를 지닙니다."

실제로 지난 2025년 6월,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석탄 산업 유산 세계 유산 등재를 도 차원에서 추진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그의 노력은 정책적 결실로 이어지고 있다.

김 소장은 지역 붕괴의 메커니즘을 단호하게 짚었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사라지면 상권이 무너지고, 학교가 문을 닫으며 젊은 층이 떠난다. 하지만 그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수치상 경제지표가 아니라 '생활 체계와 심리의 붕괴' 라며 조심스레 지역을 진단한다 .

"일자리가 사라지는 순간, 학교와 상권의 소멸은 예정된 미래가 됩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이곳엔 미래가 없다'는 집단적 불안감입니다. 폐광 문제는 단순한 경제 논리가 아니라 공동체의 마지노선이 무너지는 존재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시계는 거꾸로 흐르고 있다. 정부는 2024년 장성광업소 등 현재 폐광 갱도에 물을 채워 폐기하는 '수몰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이에 대해 태백 장성동과 삼척 도계 주민들은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전개하고 있으며, 이미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선 상태다.

김 소장은 이를 두고 날 선 비판을 가했다.

"탄광을 물에 잠기게 하는 것은 안전 조치가 아니라, 기억을 침수시키는 정책입니다. 폐광촌의 문제는 석탄이 끝난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강제로 끝내버린 데서 시작됩니다."

그는 시설 사진 몇 장 남기는 것이 기록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전직 광부들의 '말'과 '몸의 기억', 사택 마당의 빨래줄, 난로, 공동 수도 같은 일상이 기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문 닫은 상점과 텅 빈 교실 같은 '쇠퇴의 풍경'조차도 미래 세대가 에너지 전환을 배울 '살아있는 교육 자료'가 된다.

그가 제안하는 '유네스코 세계 유산 등재' 는 관광객을 모으기 위한 '간판'이 아니라 '자존감'을 복원하는 '인류적 장치'라며 가능성을 제시한다.

"유네스코는 이 장소를 '지자체의 부담'에서 '인류 공동의 책임' 영역으로 옮기는 장치입니다. '우리가 실패한 지역에 산다'는 자괴감을 버리고, '우리는 보호받아야 할 역사의 주체'라는 자존감을 회복하는 순간, 관광과 창업, 청년 유입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따라오게 됩니다."

그는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이미 석탄 산업 유산을 세계 유산으로 등재한 선진국들의 사례를 들며, 주민이 직접 해설자와 운영자로 참여하는 '사람 중심'의 재생을 강조했다.

인터뷰 끝에 김 소장은 정부와 주민에게 간곡히 호소했다.

"주민 여러분, 당신의 기억과 삶이 세계 유산의 핵심 자료입니다. 모두 말해주십시오. 기록이 쌓이는 순간 미래는 시작됩니다. 정부는 수몰과 철거를 잠시 멈추고, 기록과 평가라는 원칙부터 세워야 합니다."

현재 그는 강원도사편찬위원회의 '강원도의 탄광' 공동 집필 자로서 탄광촌 생활 문화 원고를 준비하며 현장 가이드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정책이 기억을 지우기 전에, 사회가 기억을 보존하는 체계를 세워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폐광 이후의 강원은 '끝난 지역'이 아니라 '결정해야 하는 지역'이다. 물을 채워 지워버릴 것인가, 기록을 쌓아 다음 세대의 자산으로 남길 것인가. 탄광은 더 이상 석탄을 캐지 않지만, 대한민국 근대화의 역사를 어디에 보관할 것인지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김태수 소장 (사)탄광지역활성화센터 학술 연구소장
김태수 소장(사)탄광지역활성화센터 학술 연구소장 ⓒ 김태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폐광촌의미래#김태수소장#수몰#유네스코등재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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