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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니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그래도 성격이 좋아서 버틴 거지."
처음엔 칭찬처럼 들렸지만, 곱씹을수록 꽤 정확한 진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벌도, 재산도, 운도 분명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언제나 눈에 잘 띄지 않는 어떤 '품성'이었다.
요즘 <60대 인턴일기>를 연재하고 있다. 글을 쓰며 그 사실을 더 또렷하게 깨닫는다. 세상을 살아내는 진짜 힘은 화려하지 않다. SNS에 올리기엔 조금 겸연쩍고, 남들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 삶을 다음 장으로 넘겨주는 힘은 늘 그런 사소한 곳에서 나온다.
첫째, 기분보다 태도를 지키는 힘이다.
기분 좋은 날 성실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문제는 기분이 바닥을 칠 때다. 일이 꼬이고, 사람에게 상처받아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날에도 최소한의 태도를 지키는 일. 약속을 어기지 않고, 말을 아끼며, 묵묵히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 말이다.
이 사소한 반복은 어느새 '신뢰'라는 단단한 안전망이 된다. 인생의 기회는 컨디션이 좋은 날 우연히 찾아오는 선물이 아니라, 어떻게든 버텨낸 날들에 대한 조용한 보상으로 다가온다.
둘째, 틀렸음을 인정하는 유연함이다.
젊을 때는 '옳음'을 증명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 중요한 건 '덜 다치는 법'이라는 걸 알게 된다. 세상은 내가 믿어온 정답을 아랑곳하지 않고 빠르게 변한다. 그때 필요한 것은 꼿꼿한 자존심이 아니라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유연함이다.
"그땐 맞았지만, 지금은 내가 틀릴 수도 있다."
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고집은 나를 지켜주는 성벽 같지만, 결국 나를 고립시키고, 유연함은 끊어진 관계를 잇고 삶의 영토를 넓혀준다.
셋째,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감각이다.
이건 막연한 낙관이 아니다. 근거 없는 긍정도 아니다. 여러 번 넘어져 본 사람만이 갖게 되는 현실적인 믿음이다. 실패해도 삶이 통째로 끝난 건 아니라는 감각, 속도는 느려도 방향만 잃지 않으면 된다는 확신 말이다.
은퇴 후 무너지는 이들을 보며 자주 느낀다. 그 이유는 능력 부족이 아니라, 다시 일어났던 '회복의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한 번이라도 스스로 다시 일어섰던 기억은 인생 후반전을 버티게 하는 가장 든든한 무형 자산이 된다.
이 세 가지 품성은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다. 태도는 연습으로 빚어지고, 유연함은 실패를 통해 배우며, 다시 시작하는 힘은 넘어지는 과정을 통해 축적된다. 결국 '잘 살아온 사람'보다 '다시 살아본 사람'이 더 단단해진다.
그래서 이제 나는 사람을 볼 때 얼마나 잘났는지를 먼저 보지 않는다. 얼마나 자주 다시 일어났는지, 얼마나 덜 상처 주며 자신의 방향을 고쳐온 사람인지를 본다. 각박한 세상이라지만, 이런 품성을 가진 사람 곁에 서면 이상하게도 숨이 트인다.
인생을 버티게 하는 건 거창한 스펙이 아니다. 스펙에는 유통기한이 있지만, 품성은 닳을수록 오히려 날이 선다. 오늘의 내가 기분으로 살았는지, 태도로 살았는지가 내일의 나를 만든다. 60대 인턴인 나는 오늘도 기분 대신 태도를 챙겨 집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