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EDAW2026 특집] 섭식장애와 돌봄의 정치
섭식장애는 개인의 의지 부족이나 미적 기준의 영향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감정, 신체, 관계, 사회 구조, 의료 체계, 기술 환경이 서로 깊게 얽힌 정치적·물질적·제도적 현상입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의 논의는 오랫동안 개인 책임, 가족 문제, 혹은 의학적 진단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섭식장애와 돌봄의 정치>는 이러한 협소한 틀을 넘어, 세계 각지의 연구자·활동가·정책 전문가·당사자 연구자들이 경험과 지식으로 구축해온 더 넓은 정치적 지평을 한국어로 소개하는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이들은 모두 서로 다른 현장에서 일하지만 섭식장애를 이해하고 돌봄을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법, 젠더, 노동, 디지털 기술, 불평등, 거버넌스, 당사자 경험을 함께 다루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이 시리즈는 그들의 목소리를 가능한 한 충실하게 번역해 전하며, 한국의 독자 — 특히 당사자, 활동가, 정책 입안자, 연구자 — 가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다른 길을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 기획·글: 박지니 (작가, 잠수함토끼콜렉티브 활동가)
내가 앨리스 웨인렙에게 처음 이메일을 보낸 것은 2024년 12월이었다. 그 후로 이어진 메일들은 이제 낡은 노트북으로는 로딩에 시간이 걸릴 만큼 길어졌다. 나는 한국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쉼 없이 보냈고, 그는 독일과 미국, 일본의 아카이브 이야기를 덧붙여 답장을 보내왔다.

AD
2026년 2월, 잠수함토끼콜렉티브가 주최하는 네 번째 섭식장애 인식주간(EDAW2026)에서 그는 강연자로 한국 청중을 만난다. 강연 주제를 무엇으로 하면 좋겠느냐는 그의 질문에 나는 그의 연구에 관한 것이면 무엇이든 좋다고 답했다. 솔직히 말해, 섭식장애에 관한 한 한국은 여전히 지적으로 황무지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에서 했던 강연을 언급했다. 홋카이도대학교와 도쿄대학교에서 진행했던, 섭식장애를 '세계사'의 맥락에서 다룬 강연이었다. 나는 그 두 강연을 모두 줌으로 지켜보았다. 그 강연은 "섭식장애가 서구에서 시작되어 아시아를 포함한 비서구권으로 전파되었다"는 기존의 단순한 통설을 정면으로 뒤집는 내용이었다. 강연이 던진 질문은 오히려 이것이었다. 섭식장애라는 진단 범주는 어떻게 전 지구적 정신의학의 언어가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아시아는 어떤 위치와 역할을 차지해 왔는가.

섭식장애와 식사의 역사―정신의학 진단과 일상의 정치. 로욜라 시카고 대학교 역사학과 부교수 앨리스 웨인렙은 일본에서 두 차례의 강연을 통해 ‘섭식장애’와 ‘식사’라는 주제를 서로 다른 역사적 맥락에서 다뤘다. 도쿄대학교 철학센터 특별 강연에서는 섭식장애가 어떻게 서구를 넘어 전 지구적 정신의학 진단 범주로 형성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아시아가 어떤 위치를 차지해 왔는지를 추적했다. 한편 홋카이도대학교 슬라브·유라시아연구센터 세미나에서는 동독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여성의 임금노동과 가사노동, 그리고 ‘주방’이라는 공간이 어떤 방식으로 조직되었는지를 살피며, 식사와 노동, 국가 정책이 일상에 개입하는 방식을 조명했다. 두 강연은 질병과 식사, 돌봄과 통제가 각각의 분리된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정치적 조건 속에서 함께 구성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섭식장애와 식사의 역사―정신의학 진단과 일상의 정치.로욜라 시카고 대학교 역사학과 부교수 앨리스 웨인렙은 일본에서 두 차례의 강연을 통해 ‘섭식장애’와 ‘식사’라는 주제를 서로 다른 역사적 맥락에서 다뤘다. 도쿄대학교 철학센터 특별 강연에서는 섭식장애가 어떻게 서구를 넘어 전 지구적 정신의학 진단 범주로 형성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아시아가 어떤 위치를 차지해 왔는지를 추적했다. 한편 홋카이도대학교 슬라브·유라시아연구센터 세미나에서는 동독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여성의 임금노동과 가사노동, 그리고 ‘주방’이라는 공간이 어떤 방식으로 조직되었는지를 살피며, 식사와 노동, 국가 정책이 일상에 개입하는 방식을 조명했다. 두 강연은 질병과 식사, 돌봄과 통제가 각각의 분리된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정치적 조건 속에서 함께 구성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 Alice Weinreb

굶주림과 음식 분배의 정치

웨인렙은 본래 동·서독의 식문화를 연구해 온 역사학자다. 그의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은 '공공 급식'이었다. 전후 독일에서 음식은 단순한 생존 자원이 아니라, 국가가 시민을 조직하고 젠더 역할과 도덕성을 규율하는 핵심 수단이었다.

동독에서는 국가가 제공하는 급식 체계가 여성의 임금 노동을 가능하게 했고, 사회주의 시민을 양성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반면 서독에서는 가족과 시장 중심의 식사가 강조되었고, '남성 가장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는 여성상이 반복적으로 재현되었다. 즉, 누가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는 철저히 정치적인 문제였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땠을까.

<황금 새장>은 왜 늦게 도착했는가

힐데 브루흐(Hilde Bruch)가 1978년 출간한 <황금 새장(The Golden Cage)>은 미국에서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고, 일본에서는 1979년 곧바로 번역 출간되었다. 그러나 한국어판 <황금 새장 속에 갇힌 소녀>가 출간된 것은 1994년의 일이다. 특이한 점은, 이 책이 상업 출판 시장의 요구로 먼저 나온 번역이 아니라, 광주의 천주의성요한병원과 이를 세운 천주의 성 요한 의료봉사 수도회의 의료·돌봄 실천, 그리고 그들이 연결해 온 국제적 수련·지식 네트워크 속에서 한국어로 옮겨졌다는 점이다.

힐데 브루흐(Hilde Bruch, M.D.). 힐데 브루흐는 거식증을 단순한 식사 이상이나 체중 문제로 보지 않고, 자아정체감, 통제, 인간의 주체성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한 정신과 의사였다.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임상과 연구를 통해 섭식장애 개념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힐데 브루흐(Hilde Bruch, M.D.).힐데 브루흐는 거식증을 단순한 식사 이상이나 체중 문제로 보지 않고, 자아정체감, 통제, 인간의 주체성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한 정신과 의사였다.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임상과 연구를 통해 섭식장애 개념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 TMC McGovern Center

이 책의 역자 이은희는 역자 서문에서 이렇게 쓴다. 책에서처럼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유럽과 미국에서는 흔해졌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드문 병"으로 여겨졌다는 것. 그래서 자신이 아일랜드에서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도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번역을 위해 내용을 따라가며, 그는 이 병을 단순한 식사 문제가 아니라 정체감 형성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복합적 심리 문제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쓴다.

더 나아가 "전문가들마저도" 이를 "먼 나라의 문제"로 치부하는 한국에서, "서구문명이 사회를 지배하는 조건 속에 놓인" 한국의 청소년들 또한 이 책에서 논의되는 문제들로 고통받고 있을 수 있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번역을 진행하던 "최근 몇 달" 사이에 이미 3~4명의 환자가 외래 또는 입원 치료를 받는 것을 보며, 이 문제가 "우리 눈앞의 현실"로 나타나고 있음을 실감했다고 적는다.

이 문장은 1997년 국내에 소개된 프랑스 소설 <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준비에브 브리작, 황금가지)의 역자 후기와도 기묘하게 닮아 있다. 역자는 한국에는 그런 아이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 쉽게 단정했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유럽 친구의 말을 인용한다. 그렇게 거식증은 늘 '아직은 우리 문제가 아닌 것'으로 밀려나 있었다.

이미 존재했던 기록들

그러나 한국에는 이미 기록이 있었다. 1980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논문집에는 <신경성 식욕부진증(Anorexia Nervosa)에 대한 임상적 연구>라는 논문이 실린다. 저자 서광윤은 1971년부터 1979년까지 고려대 병원에 입원했던 거식증 환자 11명을 분석했다. 전원 여성 청소년이었고, 다수는 학업 성취도가 높고 중산층 이상 가정 출신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논문 어디에도 '신경성 식욕부진증'이나 '거식증', '섭식장애'라는 한국어 진단명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로지 'Anorexia Nervosa'라는 영문표기 혹은 '식욕장애'일 뿐이다. 즉, 병은 존재했으나 언어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서광윤은 힐데 브루흐를 비롯해 1960년대 서구 연구자들이 제시한 다양한 거식증 분류 체계를 검토하고, 이를 한국 환자들의 임상 양상과 비교했다. 그 결과는 서구에서 전형으로 상정된 모습과 여러 지점에서 어긋났다. 체중 증가에 대한 공포를 뚜렷이 보인 사례는 소수에 그쳤고, 오히려 소화기 증상과 식욕 감퇴를 주된 문제로 호소하는 환자가 다수를 차지했다. 이러한 관찰은 이후 1990년대 초, 홍콩의 정신과 의사 싱 리(Sing Lee)가 중국인 거식증 환자 중 절반 이상이 '체중 공포가 없는 거식증(non-fat-phobic anorexia)' 양상을 보인다고 보고하며 본격화된, 거식증 진단 기준을 둘러싼 국제적 논의와도 맞닿아 있다.

"쌀 세 알에 보리 한 알"

이 지점에서 나는 다시 1960, 1970년대 한국을 떠올리게 된다. 유신 정권 시기, 국가는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혼분식을 강력히 장려했다. 뉴스에서는 혼분식에 동참하지 않는 시민을 공개적으로 비난했고, 도시락에 쌀밥을 싸 온 아이들은 체벌을 받았다. '무미일(無米日)'에 쌀 음식을 판매한 식당은 영업정지 처분을 감수해야 했다.

무엇을 먹느냐는 곧 어떤 시민이냐의 문제였다. 식사는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국가 정책의 감시 대상이었고, 밥상 위에서조차 도덕성이 요구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청소년들,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음식과 몸은 어떤 의미였을까. 음식을 거부한다는 행위는 단순한 식사 문제가 아니라, 통제와 규율, 책임과 도덕의 언어로 둘러싸인 세계에 대한 신체적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황금 새장 속에 갇힌 소녀 (하나의학사, 1994). 미국에서 1978년 출간됐던 'The Golden Cage'가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것은 1994년의 일이었다. 이는 앨리스 웨인렙이 지적하듯 거식증에 관한 거의 모든 주요 저술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일본에 번역 소개되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The Golden Cage'의 일본어판은 1979년 출간됐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 아카이브 '빅카인즈(BIG KINDS)'에서 '거식증'을 검색해 보면,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검색 결과값이 급격히 상승하는 대목이 포착된다. 특히 1995년은 박철수 감독의 영화 '301, 302'가 개봉하며 대중적 관심을 환기한 해였다. 동시에 서울 반포에 한국 최초의 섭식장애 전문 정신과의원이 개설되어 이른바 'PC통신 상담'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이러한 사건들이 맞물리며 '거식증'이라는 키워드가 미디어와 공적 담론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황금 새장 속에 갇힌 소녀 (하나의학사, 1994).미국에서 1978년 출간됐던 'The Golden Cage'가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것은 1994년의 일이었다. 이는 앨리스 웨인렙이 지적하듯 거식증에 관한 거의 모든 주요 저술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일본에 번역 소개되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The Golden Cage'의 일본어판은 1979년 출간됐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 아카이브 '빅카인즈(BIG KINDS)'에서 '거식증'을 검색해 보면,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검색 결과값이 급격히 상승하는 대목이 포착된다. 특히 1995년은 박철수 감독의 영화 '301, 302'가 개봉하며 대중적 관심을 환기한 해였다. 동시에 서울 반포에 한국 최초의 섭식장애 전문 정신과의원이 개설되어 이른바 'PC통신 상담'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이러한 사건들이 맞물리며 '거식증'이라는 키워드가 미디어와 공적 담론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 하나의학사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며

섭식장애가 이른바 '문화적 질병'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의 고정된 진단명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범주는 시대에 따라 다른 역할을 수행해 왔고, 역사·문화·경제적 조건과 얽히며 형태를 바꿔 왔다. 무엇보다 각 시기의 젊은 세대가 겪는 경험과 감정, 정체성 형성의 조건과 긴밀하게 맞물려 작동해 왔다.

한때는 '급식 장애'로 불리다 20세기 중후반 젊은 여성의 질병으로 변모했던 섭식장애가, 팬데믹 이후 ARFID의 증가와 함께 다시 아동의 고통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동아시아에서 보고되었던 '체중 공포 없는 거식증'이 오늘날 건강음식염려증이라는 이름으로 재등장하는 현상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우리는 새로운 질병을 마주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오래된 범주가 다른 언어와 조건 속에서 다시 작동하는 장면을 보고 있는 것일까.

바로 이 지점에서 앨리스 웨인렙의 역사 연구는 중요해진다. 섭식장애를 하나의 의학적 실체로 전제하기보다, 그 진단 범주가 언제, 어떤 조건 속에서 형성되고 확장되었는지를 추적함으로써, 우리는 이 질병이 늘 같은 방식으로 존재해 온 것이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진단 기준이나 치료 모델을 갱신하는 일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질문들—누가 이 범주를 만들었고, 무엇과 결합하며, 어떤 삶의 국면에 개입해 왔는가—를 다시 꺼내기 위해서다. 섭식장애를 둘러싼 질문이 반복되어 온 이유는, 어쩌면 이 역사적 물음을 충분히 묻지 않은 채 결과만을 다뤄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이 글은 약 2만 자 분량의 원고를 축약한 버전입니다. 전체 글은 잠수함토끼콜렉티브 블로그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원문에 포함된 주요 논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 굶주림과 음식 분배의 정치
○ 힐데 브루흐, 황금 새장, 홀로코스트
○ 1994년, 한국어판 <황금 새장> 출간되다
○ Anorexia Nervosa에 대한 임상적 연구, 1980년
○ "온 국민이 혼분식 운동에 참여하는 가운데 나는 모르쇠로 나가는 국민들이 있으니 한심한 일입니다"
○ '선의'와 병행해 벌어지는, 수백 개의 역할들

▶ 전체 글 보기: https://rabbitsubmarinecol.weebly.com/home/lt-8gt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잠수함토끼콜렉티브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힐데브루흐#거식증#섭식장애#황금새장속에갇힌소녀
댓글
연재

섭식장애와 돌봄의 정치

잠수함토끼콜렉티브는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로 구성된 비영리임의단체로 '섭식장애 인식주간(Eating Disorders Awareness Week)'을 기획하고 진행합니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라는 이름은 '(섭식장애) 환자는 결핍된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위기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