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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던 10년 전, 충주의 한 청년은 우연히 현수막 하나를 마주했다. '도시재생 대학생 모집'. 호기심에 시작한 일이었고, 손에 쥐어진 지원금은 고작 200만 원이었다. "동네에서 재미난 '작당'을 한번 해보라"는 다소 막연한 미션. 하지만 이 작은 불씨는 꺼져가던 구도심을 다시 태우는 거대한 횃불이 되었다.

충주 원도심인 '관아골'은 현재 전국의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주목하는 성지다. 한때 공실률 60%에 달하며 '유령 도시'라 불리던 이곳은 이제 빈 점포를 찾기 힘든(공실률 12%) 핫플레이스로 변모했다. 10년 전 국토부 도시재생 사업을 시작으로 행정안전부 로컬 브랜드 사업 등 정부 지원 사업 300억 원 유치, 유동 인구 3.6배 증가라는 놀라운 성과 뒤에는 박진영 보탬플러스 대표 중심의 공동체 정신과 충주 문화재단, 도시재생, 보탬플러스 동료들이 펼쳐온 치열한 시간과 복제할 수 없는 민관 거버넌스가 숨어 있었다.

3일, 협동조합 문화발전소 '공감'이 추진 중인 '동해시어촌활력증진사범사업' 관계자들과 충주 관아골 "인사이트 트립" 현장을 방문했다. 여기서 박 대표를 만났다. 대표는 자신들이 일궈낸 변화를 "핫플(Hot Place)이 아닌 웜플(Warm Place)을 지향한 결과"라고 정의했다. 시작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었다. 박 대표와 친구들은 각자의 취미를 살려 밀크티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라면을 끓였다. '관아골 프리덤'이라는 이름으로 매주 야외 마켓을 열었다. 인근 교통대 학생들이 버스킹으로 흥을 돋우자, 사람들이 하나둘 술잔을 기울이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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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넘게 마켓을 하니까 SNS에서 그야말로 난리가 났어요. 그때 깨달았죠. '아, 여기가 블루오션이구나'. 사람들이 안 오는 게 아니라, 즐길 거리가 없어서 못 오고 있었던 겁니다."

가능성을 확인한 이들은 2018년 5월, 컨설팅 그룹 '보탬플러스'를 설립했다. 박진영 대표를 필두로 전략(김재원), 영업(이상창), 브랜드(유순상) 등 각자의 '본캐(본래 캐릭터)'를 가진 5인의 청년이 의기투합했다. 운영 원칙은 독특했다. '가정의 화목 최우선', 그리고 '조합 통장에 돈을 남기지 말자'. 실제로 그들은 통장에 1천만 원이 모이자 수익금 전액을 들여 싱가포르로 연수를 떠났다. 당장의 이익보다는 경험과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젠트리피케이션, '건물주'가 되어 정면 돌파하다

충주 관아골 소개 현장 충주 관아골 프로잭트를 소개하는 보탬플러스 박진영 대장
충주 관아골 소개 현장충주 관아골 프로잭트를 소개하는 보탬플러스 박진영 대장 ⓒ 조연섭

관아골의 변화는 일회성 축제로 그치지 않았다. 박 대표는 "찾아올 이유가 없는 동네를 '찾아와야만 하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전국의 창작자들을 섭외해 연 '담장마켓'은 참여 셀러가 15팀에서 45팀으로 늘어날 만큼 급성장했다. 하지만 사람이 모이면 임대료가 오르는 법. 이들은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을 피하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바로 '공간 직접 매입'이었다.

"세입자로만 남으면 결국 쫓겨날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번 돈과 대출을 합쳐 빈집과 건물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공무원 관사로 쓰이다 방치된 애물단지 건물들이었죠. 우리가 직접 매입해 리모델링하고, 청년들에게 저렴하게 공간을 내주니 동네 공기부터 바뀌더군요."

보탬플러스는 수년간 비어있던 염소탕집 건물을 매입해 식당, 편집숍, 책방이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 '고티맨션'으로 탈바꿈시켰다. 행정안전부 사업으로 조성한 '관아골 하이라이트' 역시 이들이 운영을 맡아 로컬 브랜딩의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 관아골에는 60개 이상의 로컬 브랜드가 둥지를 틀었다. 충주에서 세계로, 경계를 허무는 확장 관아골의 시선은 이제 국내에서 해외로 향하고 있다. 박 대표는 충청도의 지역성을 재 해석한 브랜드 '에메(EME)'를 소개했다. '에메하다'는 '애매하다'의 충청도 방언이자, 역설적으로 '경계가 없어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뜻한다.

"우리 지역만 바라볼 게 아니라, 해외의 소도시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지 교류하고 싶었어요. 대만, 말레이시아의 로컬 팀들과 협업하고 팝업 스토어를 열었죠. 그러자 현지에서 충주로 답사를 오겠다는 문의가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최근 관내 대학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투어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외국인 방문객도 눈에 띄게 늘었다. '글로벌 담장마켓'을 꿈꾸는 이들의 포부가 단순히 허황된 말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지속 가능한 동네를 위하여 마을 만들기 시간은 순탄치 않았다. 초창기엔 "젊은 놈들이 왜 저렇게 사느냐"는 가족과 지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다. 관공서와의 협업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이 바뀔 때마다 사업 방향이 흔들리는 어려움도 겪었다.

하지만 민간 조직이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버티니, 결국 행정도 그들을 파트너로 인정하고 지원하기 시작했다. 박 대표는 최근 2세대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등장을 가장 큰 보람으로 꼽았다. 타지로 떠났던 충주 청년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창업을 하고, 기존 상인회와 협력하며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반짝하고 사라지는 화려한 '핫플'을 원하지 않아요. 따뜻하게 오래 가는 '웜플'이 목표입니다. 앞으로 10년만 더 치열하게 뛰고, 그 뒤엔 시골로 들어가 우리끼리 재미난 '중년 마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인구 소멸의 불확실성 시대, 충주 관아골은 주민등록상 '정주 인구'에 집착하기보다 머물고 일하며 관계를 맺는 '관계 인구'를 늘리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았다. 스스로 짐을 싸서 내려온 청년들이 낡은 골목에 숨결을 불어넣고 있는 현장. 관아골은 지금, 대한민국 로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충주#관아골#안서아트트립#문화발전소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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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섭 (tbntv) 내방

영동종합방송프로덕션 대표, 동해케이블TV 아나운서, GTI 국제무역 투자박람회 공연 총감독, 묵호등대마을 논골담길,송정막걸리축제, 뮤지컬, 동해의 신선 심동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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